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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22 11: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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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21 1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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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20 14: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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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16 12: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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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15 14: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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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14 11: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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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13 12: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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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웃음이 내 행복이고 너의 기억이 …
- 감 정 을 담 아 가 는 시 간너의 웃음이 내 행복이고 너의 기억이 내 집이야 네가 보는 곳이 내 길인걸. 생일 축하해요. 사랑하는 그대여.비록 말로 하진 못해도 내 맘. 가득 담은 이 노래. ‘커피소년, <생일 축하합니다> 중’? 너에게로 가는 포근한 우리 집몽이가 태어난 겨울에 처음 만난 날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네가 있어 겨울에도 포근한 우리 집.? 네 살 어느 봄날 집 뒷마당에서 클로버와….내 10대의 마지막 겨울에 갓 태어난 지 4주만에 처음 만난 몽이야.그렇게 솜털 같은 몽이를 데려온 지가 벌써 14년이 지났네.몽이가 10살 무렵부터 세 번의 수술을 하는 동안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허리와 다리 신장 멀쩡한 곳이 없는 노견이 되었지만 내겐 여전히 아기 같은 동생이란다. 나의 20대의 전부를 함께 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곁에 있는 너.맘 같아선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지만 네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아. 그래서 이 잡지에 내 맘을 가득 담아 너와 함께 한시간을 기억하려고 해.사랑하는 내 동생 몽아.? 가족사진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의 ‘풀꽃’ 中넌 가까이 봐도 멀리서 봐도 또각또각 걷는 소리마저 예쁘다.네가 내 인생에 조용히 다가와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이미 만개한 너는 쉬이 지질 않고 지친 내 맘에 봄이 되어 자꾸자꾸 피어난다.? “엄마, 내 별은 어디 있어요?”“저기 가장 작고 빛나는 별이 네 별이야.” “엄마, 엄마별은 어디 있어요?”“여기 가장 작고 가장 빛나는 별이 내 별이야.”? ‘평생 내가 지켜 줄 거야’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네이버 감성충전 메인에 소개된 적이 있다. 도윤이는 친한 언니가 5년 만에 얻은 귀한 첫아이로 애지중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다.말은 못 하지만 눈으로 말한다는 말이 이런 걸까? 하고 감동을 했던 사진을 봤다. 저 순간 두 모자의 눈빛을 누가 방해할 수 있었을까.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다. 좋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그림 그리는 날 보며 늘 하는 말이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였다. 나도 모르게 입을 뻥긋거리며 웃고 있었나 보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늘 화가라 적었다.하지만 그림에는 수요가 많지 않기에 자연히 성인이 되어서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못 버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 사이에 늘 괴리를 느끼던 나는 작년 퇴사를 했다.30살이 지나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고 싶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일 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다 보니 그림을 파는 것도 해보고 잡지에 연재도 해보게 되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책에 나오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우리 몽이 덕에.“몽아, 누나 잡지 나왔어!”이제 진짜 내 꿈을 너와 함께 시작해보고자 한다.? CREDIT?글·사진 조연어 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5-22 11: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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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할 수 있는 일
- 1 ℃ 마 음 이 따 뜻 해 지 는 그 림 내가 할 수 있는 일 ‘1℃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 은 백수와 다른 바 없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던 때에 애신동산 봉사자 모임에서 보호소 운영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버려진 강아 지가 입양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에 제 마음을 가득 담아 4계절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들은 보호소를 위한 달력에 실렸습니다. 먼저 손 내밀어 주세요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 그 순간에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아 준 적이 몇 번이나 될까요?내가 먼저 손 내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잡아 주겠다는 위안을 하며 애써 외면했던 수많은 순간….이젠 용기를 내어 눈높이를 맞추고 천천히 다가가 내가 먼저 손을 꼬옥 잡아 주고 싶습니다.? 외로운 밤우연히 만난 그날….캄캄한 밤에 버렸던 주인을 찾아 길을 헤매던널 만난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시간이 필요해요한번 버림받아 마음의 상처가 있는 강아지가 마음을 열고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데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상처받은 마음이 다시 아프지 않게, 오후 다섯 시, 활짝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포근한 햇살처럼 한 번 더 안아주려고 합니다.? 가족사진 초롱초롱한 눈 안에서 행복이 모여 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반짝입니다. 작고 보석 같은 행복들이 모여서 커다란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별일 없이 지나가는 오늘, 너희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합니다.? 친구 따라 보호소 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숲속 깊은 곳에 있는 보호소에는 방송에서 보던 보호소와 다르게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 마리의 강아지와 고양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체력이 약했던 나는 산비탈에 미로처럼 만들어진 견사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몸살이 났습니다. 처음이라 충격이 컸던 걸까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두 번째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그 후 저는 보호소 봉사를 가지 않았습니 다.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괜찮을 줄 알았습 니다. 바람도 막아주지 못하는 견사 구석에서 추위에 떨며 두려움 가득찬 눈으로 나를 보던 강아지들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직접 봉사를 하러 가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했습니 다. 백수 같은 프리랜서라 생활비와 월세도 못 버는 달이 많아 통장에 매달 더 높은 숫자가 -(마이너스) 뒤에 찍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변명 같지만, 기부금을 보낼 수 있는 금전적 여유는 나에게 없다고 생각했습니 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봉사자 모임에서 만드는 달력 제작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어왔습니다. 달력의 수익금은 보호소 운영비를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그림을 그리는 내가 할 수 있는 ‘나에게 딱 맞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1℃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CREDIT??글·그림 에이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5-21 1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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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시간은 함께 흐른다?
- 내 고 양 이 는 1 0 살 우리의 시간은 함께 흐른다? 희동이와의 첫만남올해도 나는 남들보다 한 박자 늦게, 이제야 ‘춥다’ 소리가입 밖으로 나온다. 희동이 방석에 코를 박고 자는 것을 보니 정말로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희동이의 10번째 겨울, 희동 이와 함께 맞는 9번째 겨울이다. 가만히 자고만 있어도 애틋한 내 고양이와의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흐르다니. 희동이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09 년 3월, 우연히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양이 분양 글을 통해서였다.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나는 터키 곳곳을 여행 하며 많은 고양이를 만나고, 막연히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 보는 참이었다.그렇다고 딱 마음을 먹거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는데 이미 입양된 고양이가 다시 가족을 찾는다는 글이 호기심을 동하게 했다. 요약하자면 둘째 고양이로 입양되었던 희동이가 눈치도 없이 첫째 고양이를 신나게 두들겨 패는 바람에 재입양을 보 낸다는 내용이었는데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던 내 눈에도 녀석의 처치가 참 애매해 보였다. 그래서 마침 자취방에 놀러 와 있던 엄마를 앞세워 고양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할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반대하던 엄마가 흔쾌히 따라나선 것부터가 평소랑은 조금 다른 날이 었다. 처음 만난 희동이는 눈처럼 하얀 털에 푸른 눈이 참말 예쁘 면서도 어쩐지 구석구석 다부지고 똘망한 느낌이 드는 고양 이었다. 서슴없이 나와 엄마에게 다가와 다리 사이로 몸을 비비면서도 중간중간 우리를 관찰하고, 상황을 판단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6kg의 고양이는 사진에서보다 훨씬 더 컸고,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신중함과 장난스러움, 불안함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없이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양을 보낸 사람도, 입양한 나도 큰 모험을 했지 싶은데 다행히도 나에게는 약간의 책임 감과 옳은 소리를 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희동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청소 강박이 있는 나는 반쯤 정신을 놓고 하루 종일 돌돌이와 박스 테이프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깨질 것이 많은 부엌엔안 갔으면 싶어서 급한 대로 이리저리 막아 보았지만 한창 흥이 오를 대로 오른 한 살 난 고양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희동이 새벽에 ‘우다다’를 하는 것에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지 고, 잠자는 내 발가락을 핥고 도망을 가는 통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곤 했다. 희동이는 집 안에 있는 나무 계단을 하루에 열두 번씩 뛰어오르고, 계단 아래를 향해 작은 물건들을 쉴새 없이 떨어뜨 리며 놀았다. 거기다 왜 이리 창문 앞에서 밤낮없이 앙앙 울어 대는지, 이러다 자취방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가슴을 졸였다.그렇게 2주쯤 지나고 ‘고양이랑 같이 살기 너무 힘들다’며 친구 에게 푸념하는데 어지간하면 내 편을 들어 주던 친구가 그날따라 입바른 소리를 하는 거다. 그렇게 고양이랑 같이 살고 싶다고 노래를 했으면서 고작 며칠 만에 이러기냐고, 딱 그 정도의 잔소 리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네’ 하고 마음으로 수긍이 갔다. 이 녀석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낯선 사람 곁에서 매일 살아내느라 제 딴에는 열심히 눈치를 보고 있겠구나 싶으면서 보는 눈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잠결에 어묵 꼬치를 흔들고 있었다. (집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집 주인아주머니는 희동이가 옥상에 널어 놓은 고추를 비둘기로부터 지키는 모습에 마음이 빼앗겼다)가만 생각해 보면 희동이는 제 살 궁리를 참 잘하는, 운도 좋고 똑똑한 고양이구나 싶다. 일곱 번의 이사, 그렇게 10년자취 생활을 접고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고는 또 새로운 갈등에, 이런저런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혀 두어 번 정도는 소리를 높이기도 했는데 고양이 문제로 부모님에게 맞서는 대신 나란히 그 보호 아래로 들어가는, 본래의 가족 질서에 맞서지 않는 액션을 취하며 일단락되었다. 말하자면 ‘그놈의 고양이, 갖다 버려라’ 식의 화법에 무조건 분노 하는 대신 문제가 되는 상황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허락을 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거다. 중요한 건 눈앞의 고양이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여러 가지 감정과 이슈들, 내가 여전히 상대 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정과 공감이니까. 희동이와 함께 살며 나는 그런 ‘관계의 민낯’도 조금은 배우게 되었다.그동안 희동이와 나는 총 일곱 번의 이사를 했고, 스물세 살의 대학생이던 나는 서른셋의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갓 한 살을 넘긴, 아직은 어린 고양이었던 희동이는 내년이면 어느새 11살의 ‘묘르신’이 될 참이다.우리의 시간이 ‘같이’ 흐른다는 것 내가 직장에 들어가고, 이직하고, 결혼하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니며 바쁘고도 즐겁게 지내는 동안 내 고양이는 열심히 나이만 먹었나 싶어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나라는 사람 안에 이렇게 사랑이 많았나 싶을 만큼 참 넘치게 사랑해 왔음에도 그렇다.작년 겨울, 희동이 건강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부 터는 바짝 마음이 더 타기 시작해 집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사실 이것도 마음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닌데, 희동이 참 복이 많은가 보다.예전에는 희동이 나이 먹는 게 그렇게 아깝고 속상했는데 어느 시점엔 가부터 나이에 대해 종종 잊어버리게 된다. 중요한 건 우리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것 아닐까?중요한 건 상자를 열면 매번 달려오는 희동이, 이불 안으로 파고 들었다가 금세 튀어나가는 희동이, 젖은 머리를 보면 너무 좋아 하는 희동이, 칫솔을 들면 도망가는 희동이, 지금 내 곁에서 10 년의 세월이 담긴 얼굴로 낮잠을 자는 희동이니까. 함께 하는 매일을, 순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간다.? CREDIT?글·그림 박초롱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5-20 14: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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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고양이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 E P I S O D E 나의 고양이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이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고 몽롱한 상태로 치워도 별 수 없는 원룸을 이리 저리 치우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곧 고양이를 임보 하고 계신 분의 연락이 왔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고양이는 길었다. 장모의 하얀 터키쉬 앙고라 믹스. 나에게는 너무 공주 같은 모습이었다. 한 눈에 반한 아이유기견, 유기묘 홈페이지 중 가장 큰 곳에 올라온 녀석의 사진을 보고 난 한 순간에 반했다. 화질이 낮은 사진이었지만 왕실의 품격(?)이 느껴졌다, 랄까. 고양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 나오는 엘프의 모습. 드디어 그 고양이가 온다니.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의 제일 어린 공주처럼 녀석의 눈빛은 애수에 가득차 있었고 작고 연약했다. 긴 여행과 몹쓸 세상에 많이 지쳐온 몸은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하얗고 긴 털은 여기저기 잘려 땜빵처럼 보였다. 고양이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쥐 파먹은 모양새였다고나 할까. 임보 하신 분이 녀석의 긴 은둔생활을 증명하듯 엉키고 엉킨 털을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잘라주셨다고 했다. 숱이 지나치게 없어 핑크빛 살이 언뜻언뜻 비쳤다. 생각보다 고양이의 몸이 길고 땜빵 난 모습이었다. 이런 낯섦 때문에 0.1초 정도는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임보 하신 분은 남자 분이셨는데 길가에 하얀 고양이가 꼭 죽음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 길가에서는 고양이들의 텃세도 지나치게 셌고 싸움도 많이 나는 곳인데 녀석은 그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죽을 것처럼 아무 의지가 없는 상태여서 오히려 살아남았다니, 뭔가 이 녀석은 나와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 분은 이미 고양이를 몇 마리 키우고 계신 상태라 녀석을 막내로 들이려고 하셨나보다. 하지만 싸움을 매우 못하는 비폭력주의자인 하얀 고양이는 그 곳에서더 스트레스를 받아하며 남자분도 매우 무서워하여 경계했다. 동물은 사람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이 더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드셨나보다. 집에 여자친구 분이 오셨을 때 녀석은 여자친구에게 좀 더 경계를 풀었나 보다. 그래서 녀석은 남자 분의 집에서 여자친구 분의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발톱도 깎을 수 있었고 털도 자를 수 있었던 거다. 게시판에서 녀석에 대한 설명 중 여자 분이 집사를 맡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고양 이는 여자친구 분 무릎에 안겨 있었고 나는 집사로서의 자격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녀석이 남자분과 눈이 마주칠 때는 매우 경계하여 남자 분은 서운한 투로 고양이를 조금 나무라기도 하였다. 이미 녀석과 함께 할 생각이내 마음 깊이 새겨져서 인지 나무라는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방어적인 마음이 샘솟았다.너는 침대 아래, 나는 침대 위에두 분이 떠나고 나와 고양이만 남았다. 하루 종일 조용하게 녀석이 적응하도록 기다리는 일만이 이제 내가 할 일이었다. 고맙게도 두 분은 고급 캣 스프레이와 화장실 등 용품을 한 아름 주고 가셨다. 녀석이 쓰던 것이라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이제 녀석과 나 사이에 침묵만이 남아있자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낮은 포복 후에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사이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지 의문이었지만 고양이는 액체라는 설이 있으니, 녀석만 평온하다면 나는 괜찮았다. 난 주말을 침대 위에서 녀석과 보냈고 침대 서랍을 꺼내 침대 밑에 얼굴을 넣고 녀석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멀어지기만 했지만. 나는 침대 위 녀석은 침대 아래. 같이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고양이는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녀석이 나와 화장실을 가려고 할 때 우연히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몇초간 일시 정지로 우리 둘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살살 돌아다니며 침묵의 발자국을 내 공간 곳곳에 남기던 녀석은곧 창문 위에도 올라가고 침대 위에도 올라왔다. 고양이에게? 무신경하려 애쓰며 잠을 청했다. 자다가 잠결에 옆을 보니 하얀 덩어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려온 여자 분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 옆에서 자는 걸 좋아해요.’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뼘의 공간을 두고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자는 모습이 확인되자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다. 감격 비슷한 뭉클함과 애수 어린 눈빛이 주는 작은 아픔이었다. 조금 마음이 아팠다. 아릿아릿했 다. 어떤 감각으로 아는지 몰라도 녀석은 한 동안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고 얼떨결에 내 배 위에 두 앞발을 올린 녀석을 꼭 껴안고 나는 맹세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다시 길거리에서 두려움에 떨고 또 움직 이는 내 발을 무서워하는 네가 겪었을 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다시 겪게 하지 않고 널 지키겠노라고.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상한 소리가 났다.그 때는 그게 ‘골골송’인 지도 몰랐다.그리고 나는 아이를 ‘라라’라고 이름 지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아날로그 전화기를 들면 ‘뚜-----’ 하고 소리가 났다. 그 음이 ‘도레미파솔라 시도’의 ‘라’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음이 이어지고 미지의 혹은 미래의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는 주파수는 ‘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녀석과 나를 이어주는 음성은 ‘라라’라고.풀네임, 오로르 라라 리라러시아 마지막 공주 같은 녀석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사실 ‘라라’라는 이름을 짓기 전에 나는 ‘오로르’라는 이름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오로 르는 쇼팽의 연인이기도 했고 또 여러 예술가의 연인이면서도 자기 자신도 예술가였던 조르주 상드의 본명이었다.조르주는 George로 남자 이름이다. 남장을 하고 다니고 자유연애를 하던 숨겨진 본명. 신비롭기도 한 오로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부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오로르 라라’라고 이 름 지었다고 하니 고양이 이름으로는 매우 거창하다고. 게다가 라라라는 이름은 여기저기 겹치는 이름이었다. 나는 힘들게 생각했지만 비슷하게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이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리라라는 이름을 생각해냈지만 이미 아이는 내가 ‘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고 부르면 나를 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녀석의 풀 네임은 ‘오로르 라라 리라’가 되었다. 이를 들은 지인 중 한 명이 고양이가 이름 듣다가 정신이 분열되겠 다고 놀렸다.하지만 너는 나의 첫 고양이이자, 러시아에서 망명한 공주(근거 없음) 이자, 친구이자, 아기였기 때문에 금방 나와 라라는 친해졌고 누워있는 내몸 위에 올라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봤다. 정복했다는 뜻의 미소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료도 아주 마구 마구 먹었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힘이 세져서 품안에 안고 있으면 잘도 빠져나갔다. 아이를 임보 하시던 분들은 고양이가 아직 맥아 리가 없어서 계속 안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그리고 입이 고급이라 사료 중에 비싼 축에 속하는 사료만 먹는다고 했다. 그래도 먹는 양이 워낙 작으니 많이 부담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랑 시간을 보내면서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닌 셈이 되어 버렸 다.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그리고 애수에 어린 눈빛에도 힘이 점점 들어가 아주 도도한 눈빛을 지닌 왕비가 되어가고 있었고 하얀 털도 풍성해져 분홍빛 살도 털 사이로 비치지 않았다. 내 품에서 잘 빠져나가고 눈빛이 도도해질수록 내 마음은 행복으로 차올랐다.그리고 들었던 말은 ‘너랑 닮았다.’ 물론 내가 러시아 공주처럼 생겼다는건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서 묘하게 고양이와 나는 닮아 있었다. 꼭 사람 얼굴 같은 녀석의 얼굴 탓이기도 했지만 난 녀석과 운명이라고 믿는다.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CREDIT??????글·사진 최유나에디터 윤태리
- STORY | 2019-05-16 12: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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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고양이를 구조한 캣맘의 기도
- 길 위 의 천 사 들아기 고양이를 구조한 캣맘의 기도? 무언가에 홀리듯 평소에 자주 가지 않던 서울의 외딴곳.평소와 다른 과정을 거쳐 아슬아슬한 시간차로 그렇게 인연의톱니바퀴가 맞아가듯 얽히고설켜살 운명을 타고난 아기 고양이를 구조하게 되었다. 길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압박과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사료와 물통을 나는 오늘도 지고 길을 나섰다.그때 그렇게 갑자기 만난 애처로운 눈빛으로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간절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고양이.이대로는 살아남기 힘든 환경에 방치되어있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 결국, 간신히 구조해서 잡았는데 탈수 상태에 뼈만 앙상하다.그래 니가 살려고 그렇게 나에게 잡혀줬구나. 너무 순하고 착해서 마구 만지고 쓰다듬어도 발톱 하나 안 세우고 나에게 안겨있구나.난 구조 할 때 아이들 눈빛에 마음이 늘 시리다.도망 다니다가도 정작 딱 잡아 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본다. 그래 니가 살려고 그렇게 나에게 잡혀줬구나. 너무 순하고 착해서 마구 만지고 쓰다듬어도 발톱 하나 안 세우고 나에게 안겨있구나.난 구조 할 때 아이들 눈빛에 마음이 늘 시리다.도망 다니다가도 정작 딱 잡아 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내 눈빛이 순해지고 몸을 맡기는 게 느껴진다.일주일을 그 자리에서 배고파 울고 있었다지.큰 아이들이 봉지 밥을 다 물어가 버려서 어미 없이 홀로 남겨진 아가는 내내 굶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제 넌 길에 홀로 남겨진 아기 고양이가 아닌내 품 안에 천 번의 뽀뽀를 감수해야 할 예쁜 고양이가 되었단다.해처럼 밝고 소나무처럼 바르게 살아야 한다.너의 이름은 그래서 이제부터는 ‘해솔’이란다. 해솔아~ 예쁘게 바르게 키워서 좋은 평생 엄마 아빠 꼭 만나게 해줄게~그 후 해솔이는 캣맘 품에 건강하게 잘 자라 평생을 반려할 엄마 아빠와예쁜 10살 7살 따님 둘이 계시는 따뜻한 가정에 입양되어 행복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CREDIT?????글·사진 미카엘라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5-15 14: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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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다 거짓말인 줄 알…
- 이 제 나 도 고 양 이 있 어 , 모 리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다 거짓말인 줄 알았지?‘내 고양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워!’ 세상 모든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사람이 그렇듯이 자기의 고양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명한 사실일 것이다. 세상의 고양이 수만큼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자신의 고양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에는 그 사람의 애정 어린 시선과 함께 해온 시간과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운명적인 ‘첫 만남’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2011.8.21. ‘첫눈에 반함’ 당하다 모리가 언제 우리랑 같이 왔더라? 여름이었나? 가을이었나?아니야 여름이었어. 어디서 데려왔더라? 정육점 옆집에서 왔나? 아니야 방앗간 옆옆 집 할머니한테 얻어왔어. 그때 할머 니가 모리를 그냥 멸치 박스에 담아줘서 깜짝 놀랐잖아.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니? 그냥 알지.잦은 전학과 이사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오면서 친구들과몇 학년에 만났는지 헷갈리지만, 내가 단 하나, 한 가지 정확 하게 기억하는 날 중 하나가 바로 모리를 만난 날짜인 2011 년 8월 21일이다.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냐는 말에 날짜까지 말을 했다간 팔불출 딱지를 한 장 더 얹을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나는 네가 오던 날의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친구와 함께 먹었던 정말 맛있는 당근 케이크가 언제 먹었던 건진 생각이 나지 않아도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나는 그날 모리에게 ‘첫눈에 반함’을 당했으 니까. 모든 걸 다 가진 고양이 어릴 적 고양이 파트너와 함께 지구를 구하던 만화영화를 보고 자라난 나는 언젠간 나만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꼭 고양이를 키워야지. 하는 소원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난 그게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시장가는 길에 만날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도 못했다. ‘치즈태비, 고등어, 카오스, 얼룩이.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를 몸으로 보여주는 듯한 고양이. 반짝이는 초록색과 노란색이 섞인 눈과 너구리처럼 줄무늬 있는 꼬리를 가진 흰 양말을 신은 고양 이. 거기에 그렇게 작은 고양이가 앉아서 나를 쳐다보았다.그 작은 고양이를 보자마자 나는 급격하게 안절부절 해졌다.이 고양이를 놓치면 안 돼! 머릿속에서 온통 그렇게 경보가 울리는 듯 했다. 그 길로 달려가 허락을 받고 바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평소에 꾸준히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어필을 해둔 탓에 일은 순조로웠다. 녀석이 갑작스럽게 옮겨진 거주지에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것도 잠시, 곧이어 씩씩하게 이곳저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놀라지 않게 지나친 관심을 주면 안된다고 했지만 모래와 사료를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나였다.‘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고양이 방을 만들고 있을 때 발등에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한 작고 따끈한 발이 내 발등 위에 겹쳐졌다. 그게 우리의 첫 악수였다.? 첫 만남은 단단히 닻을 내렸다사랑하는 것은 능동형을 사용하지만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수동형을 사용한다. 큐피드의 화살이나 붉은 실 이야기 같은 형태를 보면 항상 운명은 의지 전혀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첫눈에 반함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첫눈에 반함’이라는 인생의 대사건은 곧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고정하는 단단한 닻이 되어 나의 인생에서 단단하게 뿌 리를 내렸다. 방앗간 옆옆 집 할머니가 시장에 데려다 놓은 그고양이.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몸을 누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하게 앉아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과, 조심스럽게 손에 닿던 그 작고 촉촉한 코의 감촉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 는가. 나에게 온몸을 던져 몸을 부비던 따끈한 옆구리도, 발목을 간질이는 콧수염도, 내 손을 베고 자며 느른하게 늘어진 눈으로 눈 키스를 하던 그 순간도 그 첫 만남을 닻 삼아 자라났 는데. 지금의 모든 순간이 그 첫 만남으로 자라났다.? CREDIT????글·사진 심야버스라디오에디터 윤태리
- STORY | 2019-05-14 11: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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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에서 만난 나의 아이들, 노아와 …
- 스 위 스 에 사 는 고 양 이스위스에서 만난 나의 아이들, 노아와 폼폼? 고양이를 입양할 계획은 있었지만 인연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남편도 나도 낯설 었던 나라 스위스에 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스위스에서 집을 구하고, 가구를 들이고, 거주증과 의료보험 등 각종 행정 처리를 마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한숨 돌릴까 하던 차에 남편이 인터넷에서 새끼고양이 남매 입양 공고를 발견한 것이다. 스위스의 풍경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한국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고양이 입양 홍보글을 보면 예쁘게 찍은 고화질의 사진이 여러 장 첨부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는 스위스다. 아이들 얼굴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감도 안 오는 저화질의 사진 딱 한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다행히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떨어진 곳이어서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직접 보러 가기로 했다. 산이 많은 스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높은 산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분양자의 집 역시 구불구불한 도로를 아찔하게 운전해서 가야하는 산 중턱에 있었다. 멀미가 날것 같은 운전 끝에 도착한 그곳은 산들로 둘러싸여 아름 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기 좋고 풍경 좋 은 곳에서 아기고양이들이 태어났구나 싶었다. 차에서 내리니 분양자의 어린 아들이 맨발로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아이를 따라 도착한 집 안에는 성묘 세 마리와, 뛰어다니다 못해 거의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주 활발한 새끼고양이 남매 두 마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고양이 남매를 직접 보고 돌아온 뒤 대략 한 시간 후 우리는 전화를 걸어 두 마리 모두 우리가 입양하겠 다고 입양의사를 밝혔다. 일주일 후 우리는 이동장을 들고 새로운 가족을 데리러 갔다. 그동안 검은빛 고양이는 노아, 노란빛 고양이는 폼폼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노아와 폼폼은 착하게도 스스로 이동장 안에 얌전히 들어가 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태어난 곳을 떠나 새로운 가족인 우리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가게 되었다.? 조금은 힘겨웠던 첫 만남… 하지만집에 도착해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장을 열었다. 낯선 곳에 도착한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노아가 먼저 이동장에서 나와 준비해 둔 사료와 물을 먹고 집안 여기저 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민한 성격의 폼폼은 좀처럼 이동장 안을 벗어나질 못했다. 우리는 안달이 났다. 그 와중에 노아는 준비해둔 화장실 대신 이불 위에 실례를 하기까지 했다. 급히 이불을 빠는 동안 폼폼이 겨우 이동장 에서 나와 조심스레 집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노아가 예전 집에서 하던 것처럼 폼폼에게 장난을 거는데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둘만 두면 다칠까 걱정이 되어 결국 첫날밤은 내가 폼폼과 안방에서 함께 자고, 남편은 거실에서 노아와 잤다. 생각보다 매우 지치는 첫 만남이었다. 이튿날이 되어도 폼폼은 하루종일 구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료와 물을 가져다주어도 먹지 않아 남편과 나는 애가 탔다. 습식 캔을 스푼으로 덜어서 입에 대어주니 그제 야 조금 먹었다. 새로이 가족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어렵구나 싶었다. 폼폼이 새로운 집과 새로운 가족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 위안으로 스며들다 다행히 삼일 째부터 밥도 먹고 다시 노아와 장난도 치며 조금씩 경계를 풀어갔다. 반면 노아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신나게 집안을 탐색하고 캣타워에도 올라가고 아주 신이 났다. 놀다 지치면 거실 바닥 한가운데 철푸덕 드러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첫 만남은 살짝 어려웠지만 시간과 함께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스위스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가족으로 다가와준 노아와 폼폼 덕분에 나는 이제야 이곳이 ‘내 집’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주는 유일한 존재다. 아이들은 나의 일상에 큰 위안이 되어 주었 다. 우리의 가족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 노아와 폼폼.? CREDIT???글·사진 이지혜에디터 윤태리
- STORY | 2019-05-13 12:4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