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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26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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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25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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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6-2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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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6-17 12: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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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6-10 12: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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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20 14: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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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5-16 12: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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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양이를 그리다
- 아 틀 리 에 의 고 양 이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양이를 그리다 화가 김규희 화가 김규희의 작업실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보통 작업실에 고양이가 있다면 작가와 함께 출근한 집고양이이거나 동네 식객 고양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가 고양이와 함께하는 사연은 좀 특별하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한 독립공간으로 작업실을 구한 탓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화가에겐 “고양이와 자기만의 방”이 절실했다. 모냐의 형제자매 고양이들(왼쪽)과 모냐, 멀로의 단독 초상화. 김규희에겐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는 늘 동물들이 있었고, 그런 고양이들을 활달한 필치로 그려내는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레 애묘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반대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세월이 길어지자, 고민 끝에 고양이와 함께 지낼 작업실을 구했다. 입지를 검토할 때도 ‘창밖을 내려다볼 수 있고 동물병원이 가까운 공간’을 1순위로 정할 만큼 고양이 위주로 얻은 작업실이었다. 그러나 입양은 쉽지 않았다. 2015년 초 작업실부터 열고 입양신청서를 여러 통 써서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때부터 작전을 바꾸었다. 집이 아닌 작업실이니, 고양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그 진심에 마음을 열어준 분이 첫째 멀로의 전 반려인이었다. 그분은 고양이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 ‘멀로’라고 지어주었단다. 따끈한 온열 소파에 껴안고 누운 멀로와 모냐의 다정한 모습. 모냐, 멀로와 함께한 김규희 작가의 자화상. 임보냥이 멀로와 길고양이 모냐를 가족으로 맞이하다 임보로 처음 인연을 맺었던 페르시안 친칠라 멀로는 처음부터 낯가림이 없었다.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작업실을 구석구석 탐색했다. ‘음, 여기가 앞으로 살 곳인가?’ 생각하는 듯했다. 컴퓨터를 쓸 때면 키보드 옆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화구 곁에 앉아 계속 쳐다보곤 했다. 전 반려인도 멀로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입양에 동의해줬다.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있지만, 퇴근하면 혼자 남을 멀로가 눈에 밟혀 데려온 동생이 모냐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던 삼색고양이 복길이를 떠올리며, 꼭 삼색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멀로의 이름이 그랬듯, ‘뭐냐’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한 것이 둘째의 이름이 되었다. 생후 2개월 때 처음 온 모냐는 멀로가 친오빠인 양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엔 하악거리던 멀로도 금세 마음을 열었다. 닷새째 되던 날 출근하며 보니, 모냐가 멀로의 배에 기대어 편안히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둘의 입양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개인전 <묘념묘상>을 준비하다가, 그림책 <가족이 된 고양이 모냐와 멀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하면 둘만 있을 게 걱정되어 웹캠을 설치하고 집에서도 때때로 지켜본다. 처음엔 목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어 스피커에 대고 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둘이 당황하며 그를 찾는 모습이 마음 쓰여, 요즘은 부르지는 않고 눈과 마음에 담기만 한다. 보고 있어도 그립고, 못 보면 더 생각나는 고양이들을 수시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림’이란 말의 어원이 그리움에서 나온 거라더군요. 전 항상 고양이가 그리워요. 지나간 고양이, 함께하는 고양이…. 너무 아름답고, 그리워서 저도 모르게 자꾸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해외 고양이 명소에서 마주친 공존의 풍경 고양이로 소문난 해외 여행지를 짬짬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육손 고양이(발가락이 6개인 다지증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헤밍웨이 하우스, 애묘의 나라로 유명한 터키, 일본의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등지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기억은 고스란히 풍경화로 남았다. 헤밍웨이 하우스에선 고양이들이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여 육손인 줄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노시마에선 둘째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애교 많은 길고양이를 만나러 다녔다. 어렸을 때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둘째 아들은,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세상 모든 고양이가 좋아졌노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길고양이와 사람들의 따뜻한 공존을 볼 수 있었던 터키는 그에게 잊지 못할 나라다. “오래전에 동생이 인터넷으로 전생 테스트를 해봤대요. ‘언니는 전생에 터키의 길고양이였대’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늘 터키 길고양이가 제 맘속에 있었죠.”그는 “모두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삶을 터키에서 보았다”고 했다. 관광지 매표소, 심지어 가로등 밑에도 정갈하게 준비된 사료와 물이 있었다. 터키인이 한국인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즐겨 쓰는데, 동물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는가 싶었단다. 터키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그냥 산책자 같았다. 사람을 꺼리지도 피하지도 않고, 제 갈 길을 가거나 앉아서 쉬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사인. 깃털로 고양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정겹다. ‘고바우 영감’과 고양이 작가, 부녀의 2인전 그리움과 애틋함, 반가움을 담은 김규희의 고양이 그림은 수묵화와 수채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밑그림 없이 낙서하듯 자유롭게 그리고 싶을 때, 빠른 시간에 그릴 수 있어서 좋단다. 가끔은 고양이의 털을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보드라운 퍼 질감의 천을 캔버스에 콜라주하기도 한다. 2018년 5월 광화랑에서 열린 <김성환?김규희 2인전-고바우 작가와 고양이 작가의 고양이 작품전>에서 선보인 고흐의 그림이 그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고흐에게 고양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그림으로 풀어냈는데, 언젠가 헤밍웨이나 프레디 머큐리 등 명사들이 사랑한 고양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고양이 입장에서 반려인을 바라본 시점으로 묘사하게 될 거라고 한다. 특히 작년에 열린 2인전은 시사만평 <고바우 영감> 작가로 유명한 아버지와 처음 함께한 전시라 더욱 뜻깊다. 원래 <애묘유전(愛猫遺傳)>이란 전시명을 쓰려 했을 만큼, 부녀간에 이어져온 고양이 사랑을 담뿍 담은 전시다. “아버지가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셔서,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을 발견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꽁냥꽁냥하며 말을 거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전시에 소개한 그림들은 전부 저희 집에서 키웠던 아이들이죠. 주로 널브러져 자는 고양이들을 수묵으로 그리셨어요. 50년간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셨지만 회화 작업도 꾸준히 하셨는데, 11번의 개인전 모두 회화 작업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마감 스트레스를 회화 작업으로 푸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때론 묵직한 풍경화로, 때로는 낙서처럼 가벼운 그림으로, 가끔 종이컵이나 빈 과자 상자, 오래된 인형 등을 재활용해 만든 수공예품으로 고양이를 그리거나 만드는 김규희 작가. 그는 잔잔한 위로와 만족을 주는 그림책이나, 고양이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수필집을 써보고 싶다고 전했다. 기회가 된다면 평소 좋아했던 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사건 사고 많은 이 세상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하는 잔잔한 그림을 널리 퍼트리고 싶어요. 고양이의 고롱고롱 소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사람만 아는 조용한 울림으로, 온기를 나눠주는 위로 같은 그림을요.” CREDIT글·사진 고경원 자료협조 김규희
- STORY | 2019-09-26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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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
- 추운 밤, 따뜻한 일곱 고양이 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 엄마, 우리 어디 가요?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봄이요?그래. 그곳은 배고픔이 없는 아주 따뜻한 곳이란다. 엄마, 나 배고파요.아가 조금만 참으렴.엄마, 이 고개만 넘어가면 봄이 나오나요?그래. 아가 조금만 참으렴... 엄마, 빨리와요!아가, 먼저 배를 타려무나!나쁜 자동차! 나쁜 사람들!아가, 울지 말렴! 엄마가 곧 따라갈게. 엄마, 여기는 따뜻해요.이곳이 봄인가요?엄마, 어서 일어나세요. 인간, 우리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거라비 오던 어느 날, 우체국 택배 박스 안에서 삐약 거리고 있던 작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늘 어딘가로 정처 없이 날아갔다가 푹 꺼진 가로등 그늘 속으로 숨고만 싶은 제 마음에 그 작은 고양이는 존재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그런 존재... 제가 어둠이라면 고양이는 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그림에는 늘 고양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 동화 속에는 아픈 고양이, 외로운 고양이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들의 과거일 뿐이겠죠.퇴근길,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달님, 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고양이와 함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고양이와 함께 하는 그날까지 고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세요.” CREDIT글·그림 수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9-25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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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묘가정에서 공부해야만 할 것들?
- 들 들 자 매 와 숙 녀 네 집 다묘가정에서 공부해야만 할 것들? 해들이와 산들이. 두 자매 고양이는 새로운 집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해들이는 산들이 보다 3일 늦게 온 탓인지 아직 경계심이 많았다. 나는 평소 산들이를 안던 것처럼 해들이를 안았다가 왼쪽 팔뚝에 커다랗고 진한 세 줄의 흉터가 생겨버렸 다. ‘아빠가 해들이 발톱을 아직 안 깎아줬었네.’ 하고 혼잣말이 나왔다. 세 줄의 흉터는 해들이가 이제 잊어버리지 말라며 나에게 남겨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자율급식 보다는 제한급식을 두 자매 고양이에게 임시보호처에서 먹던 사료를 그대로 주었다.해들이가 접시에 코를 박고 먹어치우는 동안, 산들이는 뭔가 좀시큰둥해 보였다. 난 자매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해왔다. 자율급식으로 사료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만약 자율급식으로 사료를 급여했다면, 지금처럼 산들이가 식욕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들이가 남긴 사료를 해들이가 다 먹어치웠다면, 나는 빈 그릇만 보고 산들이가 밥을 잘 먹고 있다고 오판했을 것이다. 사료를 한 번에 많이 부어놓는 자율급식을 금지하는 이유다. 이것은 다묘를 동시에 입양하게 되면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사료 정량을 동시에 주고 녀석들이 사료를 얼마나 남겼는지 밥그릇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 다. 내가 몇 알을 주는지, 녀석들이 몇 알을 남겼는지 사료의 개수 까지 셀 필요는 없다. 그저 고양이들이 평소 먹던 양과 차이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녀석들이 남긴 사료량을 통해 건강이 좋지 않은 고양이를 가려낼 수가 있으며, 반려묘가 큰 병으로 이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산들이의 변은 묽은 상태를 유지했다. 녀석의 꽁무니를 쫓아다니 면서 똥꼬를 닦아주기 바빴지만 내 눈엔 여전히 너무 예쁜 아이 다. 산들이의 식욕과 건강을 위해, 녀석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부드러운 닭 안심살을 삶아서 잘게 잘라주 었더니, 산들이가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변은 더 물러졌다. 식욕부진과 설사로 산들이의 먹는 양이 줄어들다 보니 아무래도 부족한 영양을 더 보충해줘야 했다. 어미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버려진 상태에서 구조된 아이들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고양이용 초유를 구입하여 건사료에 부어줬다. 다행히 산들이가 너무 잘먹어주었다. 이제는 해들이와 먹는 양이 비슷해졌다. 그래 이제잘 먹고 잘 자라야 한다.? 예방 접종 전후로 알아야 할 것들 해들이는 1차 접종을 마친 후 입양했다. 하지만 엄지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산들이는 1kg도 되지 않아 접종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다니던 난 항상 초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밖에서 들어온 아빠가 병균을 산들이에게 옮길까 싶어서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소독제를 온몸에 뿌렸다. 물론 손을 닦는 것도 필수 다. 접종 전의 아기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면 이렇게 유난스러워야 한다.유난스러운 게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그래도 초유에 말아주는 건사료 덕분인지 산들이의 몸무게가 드디어 1kg을 넘겼다. 종합백신 예방접종을 하러 가까운 동물병원에 갔다. 고양이 종합 백신은 대부분 3가지가 기본으로 포함된다. 첫 번째로는 고양이 감기에 해당하는 고양이 전염성 비기관지염. 두 번째로는 사실 가장 무서운 전염병인 범백이라고 불리우는 범백혈구 감소증. 그리고 세 번째로 구내염 등 다양한 병을 유발하는 칼리시 바이러스다. 그 이외에 다양한 백신들이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범백에 걸린 고양이가 입원중이란다. 케이지를 꼬옥 안아들고 ‘다음에 올까요?’라고 물었다. 수의사는 나에게 ‘범백은 호흡기로는 전염되지 않으며, 범백에 걸린 고양이를 치료하는 담당 수의사와 스텝은 다른 고양이와 접촉이 철저히 금지돼요.’라며 안심시켰다. 일단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해들이와 산들이가 주사를 맞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녀석들을 안고 차로 돌아왔다. 차에서는 녀석들에게 바로 간식을 꺼내 주었 다. 아이들에게 병원이 좋은 곳으로 기억되어야 나중에 병원에 다시 와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기특한 녀석들 야옹 소리 한번 안 하고 주사를 잘맞아 주었다.? 집사는 반려묘의 평소 생활 패턴을 알아야 한다 고양이는 아프면 강아지처럼 끙끙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녀석들은 아프면 그저 숨어버리거나 움직임이 둔해진다. 나의 첫 고양이였던 보들이가 오래도록 아팠다 보니 버릇처럼 고양이를 관찰하게 됐다. 잠에서 깨어나면 먼저 기지개나 하품을 하고, 스크레쳐로 뚜벅뚜벅 걸어가 긁는다. 그리고 그루밍을 하거나 먹을 걸 달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만약 이 중에 단 하나만 빠져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산들이가 웅크린 자세로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소와 달리 움직임이 둔했다. 이때 집사가 해야 할 일은 체온을 측정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정상체온은 38도에서 39도 사이다. 39.5도는 미열, 40도는 고열에 해당한다. 산들이의 체온은 39.5도 미열. 이때부터는 그무섭다는 범백이 의심스러웠다. 범백은 설사를 동반한다. 일단 고양이 화장실부터 뒤졌다. 다행히 산들이의 변은 설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이상하면 인터넷을 찾는 게 아니라 동물병원을 가야 한다. 그래야 병을 더 키우지 않는다. 바로 산들이를 데리고 갔던 병원으로 이동했 다. 가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종합백신 맞을 때 범백이 걸린 건가? 아니면 길고양이들 밥 주다가 병이 옮은 건가? 아니면 보들이처럼 복막염의 전초증상은 아닐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두 가지 키트검사를 했다. 하나는 범백혈구혈증의 감염여부 검사였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 백혈병과 면역결핍 두 가지를 한꺼번에 판독하는 검사였다. 두 가지 키트검사는 모두 음성이었다. 그렇 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의심 증상은 하나였다. 보들이를 허망하게 별로 보냈던 복막염이었다. 복막염이란 세 글자 만으로도 그 단어가 주는 절망감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복막염을 확인하는 절차는 상당히 많고 복잡하다. 검사 시간도 빠른 검사와 오래 걸리는 검사가 있다.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체크가 가능한 것은 혈액검사를 통해서 알부민과 글로블린 수치의 비율인 A/G ratio로 예측을 하는데 절대 확진은 아니다. 산들이를 검사한 담당 수의사는 큰 문제는 없으니 천천히 경과를 보자고했다. 나는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고 산들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현관문을 여니 해들이와 숙녀가 산들이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건강해진 산들이의 비결 산들이의 건강을 위해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왕초보 집사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시던 호가든네 집사님의 블로그에서 습식에 관한 글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 우리 산들이도 습식 한 번 해보자!’. 집에는 이미 수십 종류의 캔이 있었다. 과거 랜선 이모들이 보들이가 아플 때먹으라고 보내준 것들이 잔뜩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뭐가 이렇게 종류도 많고 성분도 다른지 갑자기 까막눈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중에 제일 만만해 보이는 캔을 하나 집어 들었다. 주성분은 청정 뉴질 랜드 소고기 뉴질랜드 산이라고 하니 뭔가 좀 좋아 보였다. 왠지 몸에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캔을 땄다. 캔을 처음 보는 산들이와 해들이, 둘이 먹기 좋게 그릇에 나눠 담아줬다. 그러나 해들이는 킁킁 냄새만 조금 맡더니 고개를 휙 돌리고 가버렸다. 반면, 산들이는 계속 관심을 보였다. 한참을 냄새를 맡던 산들이가 입을 내더니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녀석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 만, 내가 준 소고기 캔은 집사들 사이에서 고양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기호성 똥망 제품이었다. 괜찮다. 맛은 똥망이어도 영양 성분은 가장 좋았 으니까.습식을 주기 시작하자 산들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물렀던 변은 점점 단단해졌다. 해들이도 습식에 조금씩 익숙해졌긴 했지만, 여전히 건사료를 더 좋아했다. 산들이와 해들이 둘의 몸무게가 차이가 난다 싶으면 건사료와 습식의 비율을 조절하면 된다. 한 배에서 나온 자매 고양이인데도 이렇게 입맛이 다르다는 게 사실 좀 놀랍기는 하다. 약하던두 자매 고양이들의 무게는 어느새 2kg을 훌쩍 넘겼다. 연약해서 엄지공 주라 불렸던 산들이는 이젠 건강한 유치원생쯤 되었다고 할까. 건강하게잘 자라줘서 고마워 얘들아. 아빠에게 와줘서 그리고 둘이 함께 내게 와줘서 고마워.? CREDIT글·사진 보들이아빠에디터 이제원?
- STORY | 2019-06-2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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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 너 희 들 을 기 억 하 는 방…
- 내 가 너 희 들 을 기 억 하 는 방 법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여러분은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특정 사물, 혹은 공간 아니면 그날의 온도 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순간을 떠올 리며 기억하는 방법이 다를 겁니다. 저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기억합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그 기억들을 하나씩 써 나가 보려 합니다.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저와 초등학생이던 여동생은 길가에서 어미를 잃은 길고양이를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작은 시골 마을의 길고양이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양이들은제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때론 친구, 때로는 자식 같은 아이들이 되어주었습니다. 저와 고양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를 보살피고 보내면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모두 소중한 존재였으나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 다. 아주 오래전 보살피던 아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하나둘씩 잊어갔습니다.그런 제가 밉기도 하고 고양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 으로 아이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눈이 많이 내렸던 날.캣초딩 시절의 듀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하얗게 눈이 쌓인 마당을 뛰어놀았 습니다. 눈 뭉치를 멀리 던지면 호기심에 달려가 냄새를 맡지만 금세 눈이란 걸 눈치채고 저에게 다시 뛰어옵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지난겨울인데 언젠가는 잊힐 걸 알기에 그 순간을 렌즈를 통해 보고 카메라로 찍으며 하드디 스크에 저장합니다.? ‘다시 봄은 올까요?’봄은 다시 옵니다.하지만 그 자리에 사진 속의 고양이 블루는 돌아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누군가가 놓은 농약을 마시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어쩌면 블루에게는 겨울보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춥게 느껴 졌을 거 같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이 생각나는 겨울입니다.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보단 가장 낮은 곳으로 내리는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려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CREDIT?글·사진 안진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6-17 12: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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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는 작지만 내 마음 속커다란 존재에…
- 나 의 작 은 고 양 이 m o n p e t i t c h a t 덩치는 작지만 내 마음 속커다란 존재에 대한 이야기 모든 게 힘들게 느껴졌던 그 날….내게 고양이가 조용히 다가와 궁둥이를 붙이고 털썩 누웠다. 팔에 닿은 고양이의 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간지러운 온기를 느끼며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속삭이는 표정으로 몸과 발을 그루밍한다.내가 돌봐 주어야 하는 작은 고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느새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되어있었다.? ?프레디와 가지 그녀보다 작고 어렸지만, 이제는 그녀보다 나이 든 고양이 프레디와 뚱냥이 (싸)가지.똥꼬발랄 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따뜻한 해가 드는 창가에 조용히 모여서 광합성을 한다.그녀는 빨리 꽃 피는 따뜻한 봄이 오길 바라며 창밖을 본다. 두 고양이는 나갈 일도 없으면서도 몸단장하기 바쁘다.나도 그녀와 함께 기도한다. 내년에도 그다음 봄에도 오늘 같은 날이 계속되길….? 다로두 여자와 함께 사는 멋진 턱시도 고양이.특기는 날벌레 사냥이고, 반짝이는 빵끈을 좋아한다.기분 좋을 때 부르는 골골송으로 두 자매를 행복하게 해준다.그녀들처럼 나도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귀 기울여 본다.그르릉~ 그르릉~? 꾸꾸오래전 대학로 골목길에서 우리를 보고 발라당 눕던 집 나온 고양이가 있었다.“냐아아옹~” 겨우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가 길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우리 집에서 두 달 정도 임시보호 후에 지인이 입양했다.꾸꾸는 새 동거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쑥쑥 컸다. (옆으로) 구석에 누워있으면 벗어놓은 털 실내화 같았는데, 어느 사이 소파 위의 쿠션같이 커졌다.복실복실한게 만지고 싶게 생겼다. 통통한 찹쌀떡 같은 발을 조물조물 만졌다가, 곧게 뻗은 수염도 살짝 당겨본다.깃털 부채 같은 꼬리가 살랑~ 바람을 일으킨다.? 모키 통통한 꼬리와 짧고 두툼한 발 그리고 커다란 얼굴을 가진 고양이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집을 나와 방황하는 걸까? 한동안 수소문했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카페모카를 좋아하는 그녀. 모키라는 이름으로 고양이를 부르기 시작했다.모키는 여전히 골목길을 누비며 길고양이들과 골목대장 놀이를 한다.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커다랗고 귀여운 고양이가 된다.? 설기씨 2008년 어느 가을, 바싹 마른 길고양이가 친구의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푸석한 얼굴에 분홍 코가 반짝였다. 흰털 위에 까만 콩 몇 개를 올려놓은 모양이 백설기 떡 같았다.백설기, 설기라고 이름을 지었다.그 날 이후 우린 서로 의지하며 10년을 같이 살고 있다.? CREDIT?글·사진 에이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6-10 12: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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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시간은 함께 흐른다?
- 내 고 양 이 는 1 0 살 우리의 시간은 함께 흐른다? 희동이와의 첫만남올해도 나는 남들보다 한 박자 늦게, 이제야 ‘춥다’ 소리가입 밖으로 나온다. 희동이 방석에 코를 박고 자는 것을 보니 정말로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희동이의 10번째 겨울, 희동 이와 함께 맞는 9번째 겨울이다. 가만히 자고만 있어도 애틋한 내 고양이와의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흐르다니. 희동이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09 년 3월, 우연히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양이 분양 글을 통해서였다.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나는 터키 곳곳을 여행 하며 많은 고양이를 만나고, 막연히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 보는 참이었다.그렇다고 딱 마음을 먹거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는데 이미 입양된 고양이가 다시 가족을 찾는다는 글이 호기심을 동하게 했다. 요약하자면 둘째 고양이로 입양되었던 희동이가 눈치도 없이 첫째 고양이를 신나게 두들겨 패는 바람에 재입양을 보 낸다는 내용이었는데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던 내 눈에도 녀석의 처치가 참 애매해 보였다. 그래서 마침 자취방에 놀러 와 있던 엄마를 앞세워 고양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할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반대하던 엄마가 흔쾌히 따라나선 것부터가 평소랑은 조금 다른 날이 었다. 처음 만난 희동이는 눈처럼 하얀 털에 푸른 눈이 참말 예쁘 면서도 어쩐지 구석구석 다부지고 똘망한 느낌이 드는 고양 이었다. 서슴없이 나와 엄마에게 다가와 다리 사이로 몸을 비비면서도 중간중간 우리를 관찰하고, 상황을 판단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6kg의 고양이는 사진에서보다 훨씬 더 컸고,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신중함과 장난스러움, 불안함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없이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양을 보낸 사람도, 입양한 나도 큰 모험을 했지 싶은데 다행히도 나에게는 약간의 책임 감과 옳은 소리를 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희동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청소 강박이 있는 나는 반쯤 정신을 놓고 하루 종일 돌돌이와 박스 테이프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깨질 것이 많은 부엌엔안 갔으면 싶어서 급한 대로 이리저리 막아 보았지만 한창 흥이 오를 대로 오른 한 살 난 고양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희동이 새벽에 ‘우다다’를 하는 것에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지 고, 잠자는 내 발가락을 핥고 도망을 가는 통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곤 했다. 희동이는 집 안에 있는 나무 계단을 하루에 열두 번씩 뛰어오르고, 계단 아래를 향해 작은 물건들을 쉴새 없이 떨어뜨 리며 놀았다. 거기다 왜 이리 창문 앞에서 밤낮없이 앙앙 울어 대는지, 이러다 자취방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가슴을 졸였다.그렇게 2주쯤 지나고 ‘고양이랑 같이 살기 너무 힘들다’며 친구 에게 푸념하는데 어지간하면 내 편을 들어 주던 친구가 그날따라 입바른 소리를 하는 거다. 그렇게 고양이랑 같이 살고 싶다고 노래를 했으면서 고작 며칠 만에 이러기냐고, 딱 그 정도의 잔소 리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네’ 하고 마음으로 수긍이 갔다. 이 녀석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낯선 사람 곁에서 매일 살아내느라 제 딴에는 열심히 눈치를 보고 있겠구나 싶으면서 보는 눈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잠결에 어묵 꼬치를 흔들고 있었다. (집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집 주인아주머니는 희동이가 옥상에 널어 놓은 고추를 비둘기로부터 지키는 모습에 마음이 빼앗겼다)가만 생각해 보면 희동이는 제 살 궁리를 참 잘하는, 운도 좋고 똑똑한 고양이구나 싶다. 일곱 번의 이사, 그렇게 10년자취 생활을 접고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고는 또 새로운 갈등에, 이런저런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혀 두어 번 정도는 소리를 높이기도 했는데 고양이 문제로 부모님에게 맞서는 대신 나란히 그 보호 아래로 들어가는, 본래의 가족 질서에 맞서지 않는 액션을 취하며 일단락되었다. 말하자면 ‘그놈의 고양이, 갖다 버려라’ 식의 화법에 무조건 분노 하는 대신 문제가 되는 상황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허락을 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거다. 중요한 건 눈앞의 고양이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여러 가지 감정과 이슈들, 내가 여전히 상대 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정과 공감이니까. 희동이와 함께 살며 나는 그런 ‘관계의 민낯’도 조금은 배우게 되었다.그동안 희동이와 나는 총 일곱 번의 이사를 했고, 스물세 살의 대학생이던 나는 서른셋의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갓 한 살을 넘긴, 아직은 어린 고양이었던 희동이는 내년이면 어느새 11살의 ‘묘르신’이 될 참이다.우리의 시간이 ‘같이’ 흐른다는 것 내가 직장에 들어가고, 이직하고, 결혼하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니며 바쁘고도 즐겁게 지내는 동안 내 고양이는 열심히 나이만 먹었나 싶어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나라는 사람 안에 이렇게 사랑이 많았나 싶을 만큼 참 넘치게 사랑해 왔음에도 그렇다.작년 겨울, 희동이 건강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부 터는 바짝 마음이 더 타기 시작해 집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사실 이것도 마음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닌데, 희동이 참 복이 많은가 보다.예전에는 희동이 나이 먹는 게 그렇게 아깝고 속상했는데 어느 시점엔 가부터 나이에 대해 종종 잊어버리게 된다. 중요한 건 우리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것 아닐까?중요한 건 상자를 열면 매번 달려오는 희동이, 이불 안으로 파고 들었다가 금세 튀어나가는 희동이, 젖은 머리를 보면 너무 좋아 하는 희동이, 칫솔을 들면 도망가는 희동이, 지금 내 곁에서 10 년의 세월이 담긴 얼굴로 낮잠을 자는 희동이니까. 함께 하는 매일을, 순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간다.? CREDIT?글·그림 박초롱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5-20 14: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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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고양이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 E P I S O D E 나의 고양이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이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고 몽롱한 상태로 치워도 별 수 없는 원룸을 이리 저리 치우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곧 고양이를 임보 하고 계신 분의 연락이 왔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고양이는 길었다. 장모의 하얀 터키쉬 앙고라 믹스. 나에게는 너무 공주 같은 모습이었다. 한 눈에 반한 아이유기견, 유기묘 홈페이지 중 가장 큰 곳에 올라온 녀석의 사진을 보고 난 한 순간에 반했다. 화질이 낮은 사진이었지만 왕실의 품격(?)이 느껴졌다, 랄까. 고양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 나오는 엘프의 모습. 드디어 그 고양이가 온다니.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의 제일 어린 공주처럼 녀석의 눈빛은 애수에 가득차 있었고 작고 연약했다. 긴 여행과 몹쓸 세상에 많이 지쳐온 몸은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하얗고 긴 털은 여기저기 잘려 땜빵처럼 보였다. 고양이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쥐 파먹은 모양새였다고나 할까. 임보 하신 분이 녀석의 긴 은둔생활을 증명하듯 엉키고 엉킨 털을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잘라주셨다고 했다. 숱이 지나치게 없어 핑크빛 살이 언뜻언뜻 비쳤다. 생각보다 고양이의 몸이 길고 땜빵 난 모습이었다. 이런 낯섦 때문에 0.1초 정도는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임보 하신 분은 남자 분이셨는데 길가에 하얀 고양이가 꼭 죽음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 길가에서는 고양이들의 텃세도 지나치게 셌고 싸움도 많이 나는 곳인데 녀석은 그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죽을 것처럼 아무 의지가 없는 상태여서 오히려 살아남았다니, 뭔가 이 녀석은 나와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 분은 이미 고양이를 몇 마리 키우고 계신 상태라 녀석을 막내로 들이려고 하셨나보다. 하지만 싸움을 매우 못하는 비폭력주의자인 하얀 고양이는 그 곳에서더 스트레스를 받아하며 남자분도 매우 무서워하여 경계했다. 동물은 사람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이 더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드셨나보다. 집에 여자친구 분이 오셨을 때 녀석은 여자친구에게 좀 더 경계를 풀었나 보다. 그래서 녀석은 남자 분의 집에서 여자친구 분의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발톱도 깎을 수 있었고 털도 자를 수 있었던 거다. 게시판에서 녀석에 대한 설명 중 여자 분이 집사를 맡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고양 이는 여자친구 분 무릎에 안겨 있었고 나는 집사로서의 자격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녀석이 남자분과 눈이 마주칠 때는 매우 경계하여 남자 분은 서운한 투로 고양이를 조금 나무라기도 하였다. 이미 녀석과 함께 할 생각이내 마음 깊이 새겨져서 인지 나무라는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방어적인 마음이 샘솟았다.너는 침대 아래, 나는 침대 위에두 분이 떠나고 나와 고양이만 남았다. 하루 종일 조용하게 녀석이 적응하도록 기다리는 일만이 이제 내가 할 일이었다. 고맙게도 두 분은 고급 캣 스프레이와 화장실 등 용품을 한 아름 주고 가셨다. 녀석이 쓰던 것이라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이제 녀석과 나 사이에 침묵만이 남아있자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낮은 포복 후에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사이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지 의문이었지만 고양이는 액체라는 설이 있으니, 녀석만 평온하다면 나는 괜찮았다. 난 주말을 침대 위에서 녀석과 보냈고 침대 서랍을 꺼내 침대 밑에 얼굴을 넣고 녀석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멀어지기만 했지만. 나는 침대 위 녀석은 침대 아래. 같이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고양이는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녀석이 나와 화장실을 가려고 할 때 우연히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몇초간 일시 정지로 우리 둘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살살 돌아다니며 침묵의 발자국을 내 공간 곳곳에 남기던 녀석은곧 창문 위에도 올라가고 침대 위에도 올라왔다. 고양이에게? 무신경하려 애쓰며 잠을 청했다. 자다가 잠결에 옆을 보니 하얀 덩어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려온 여자 분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 옆에서 자는 걸 좋아해요.’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뼘의 공간을 두고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자는 모습이 확인되자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다. 감격 비슷한 뭉클함과 애수 어린 눈빛이 주는 작은 아픔이었다. 조금 마음이 아팠다. 아릿아릿했 다. 어떤 감각으로 아는지 몰라도 녀석은 한 동안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고 얼떨결에 내 배 위에 두 앞발을 올린 녀석을 꼭 껴안고 나는 맹세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다시 길거리에서 두려움에 떨고 또 움직 이는 내 발을 무서워하는 네가 겪었을 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다시 겪게 하지 않고 널 지키겠노라고.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상한 소리가 났다.그 때는 그게 ‘골골송’인 지도 몰랐다.그리고 나는 아이를 ‘라라’라고 이름 지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아날로그 전화기를 들면 ‘뚜-----’ 하고 소리가 났다. 그 음이 ‘도레미파솔라 시도’의 ‘라’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음이 이어지고 미지의 혹은 미래의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는 주파수는 ‘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녀석과 나를 이어주는 음성은 ‘라라’라고.풀네임, 오로르 라라 리라러시아 마지막 공주 같은 녀석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사실 ‘라라’라는 이름을 짓기 전에 나는 ‘오로르’라는 이름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오로 르는 쇼팽의 연인이기도 했고 또 여러 예술가의 연인이면서도 자기 자신도 예술가였던 조르주 상드의 본명이었다.조르주는 George로 남자 이름이다. 남장을 하고 다니고 자유연애를 하던 숨겨진 본명. 신비롭기도 한 오로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부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오로르 라라’라고 이 름 지었다고 하니 고양이 이름으로는 매우 거창하다고. 게다가 라라라는 이름은 여기저기 겹치는 이름이었다. 나는 힘들게 생각했지만 비슷하게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이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리라라는 이름을 생각해냈지만 이미 아이는 내가 ‘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고 부르면 나를 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녀석의 풀 네임은 ‘오로르 라라 리라’가 되었다. 이를 들은 지인 중 한 명이 고양이가 이름 듣다가 정신이 분열되겠 다고 놀렸다.하지만 너는 나의 첫 고양이이자, 러시아에서 망명한 공주(근거 없음) 이자, 친구이자, 아기였기 때문에 금방 나와 라라는 친해졌고 누워있는 내몸 위에 올라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봤다. 정복했다는 뜻의 미소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료도 아주 마구 마구 먹었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힘이 세져서 품안에 안고 있으면 잘도 빠져나갔다. 아이를 임보 하시던 분들은 고양이가 아직 맥아 리가 없어서 계속 안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그리고 입이 고급이라 사료 중에 비싼 축에 속하는 사료만 먹는다고 했다. 그래도 먹는 양이 워낙 작으니 많이 부담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랑 시간을 보내면서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닌 셈이 되어 버렸 다.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그리고 애수에 어린 눈빛에도 힘이 점점 들어가 아주 도도한 눈빛을 지닌 왕비가 되어가고 있었고 하얀 털도 풍성해져 분홍빛 살도 털 사이로 비치지 않았다. 내 품에서 잘 빠져나가고 눈빛이 도도해질수록 내 마음은 행복으로 차올랐다.그리고 들었던 말은 ‘너랑 닮았다.’ 물론 내가 러시아 공주처럼 생겼다는건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서 묘하게 고양이와 나는 닮아 있었다. 꼭 사람 얼굴 같은 녀석의 얼굴 탓이기도 했지만 난 녀석과 운명이라고 믿는다.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CREDIT??????글·사진 최유나에디터 윤태리
- STORY | 2019-05-16 12: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