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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2017-10-02 15: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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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10-02 14: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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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10-02 1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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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2017-10-02 00: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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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트 방수포를 열자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털 공'의 정체는?
- 한 남자가 보트를 청소하기 위해 올해 초 봄, 준비를 시작했다. 오래 덮여 있던 방수포를 벗기자 구석에 작은 '털 공' 하나가 보였다. 털 공의 정체는 회색 모피의 작은 새끼 고양이. 아직 몸도 잘 가누지 못해 걸핏하면 쓰러지는 미숙한 존재였다. 남자는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고, 머잖아 이 길고양이가 다른 새끼 고양이와 함께 이웃집 차고에서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웃은 태어난 아기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었지만, 이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고양이 형제 중 한 마리는 도로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고 한 마리는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사라진 고양이가 바로 보트를 청소하던 남자에게 목격된 고양이였다. 남자는 이웃집이 아기 고양이에게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거둬 키우기로 작정했다. 위스커라는 이름을 얻은 고양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배고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어렸을 적부터 심상치 않았던 위스커의 털은 멋진 곱슬모가 되어 그의 장난스런 외형을 강조해 주고 있다. "위스커는 제가 본 고양이들 중에 가장 애교가 넘쳐요. 그의 모터 소리(골골송)는 그치는 법이 없죠." 위스커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그를 구조한 아빠의 어깨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손바닥 크기의 새끼 고양이는 구조 5개월이 지난 지금 포동포동한 소년 고양이가 되어 남자의 엄연한 가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소식은 최근 고양이 전문 매체 '러브뮤'에 소개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됐다. CREDIT에디터 김기웅사진 러브뮤 / Louise Scofield
- NEWS | 2017-10-02 15: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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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BE COMPANIONS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인천 행복한 유기견 세상 사람도 그렇듯 동물에게도 지나온 삶의 행적이 있다.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진 기억. 좋은 기억은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행복을 꿈꾸게 한다. 버려진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안겨주고자 몇몇 사람이 모여 작은 세상을 만들었다. '행복한 유기견 세상'을 꿈꾸는 그들을 찾았다. 버려졌으나 불행하지 않도록2007년에 문을 연 ‘행복한 유기견 세상’, 일명 ‘행유세’는 정부 지원 없이 회원들의 봉사와 후원만으로 보호소를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단체이다. 인천에 위치한 보호소의 이름은 ‘사랑터’, 버려지거나 구조된 40여 마리의 강아지들이 이곳에서 보호되고 있다. 행유세의 주된 활동은 법적 보호기간이 끝난 후 안락사 대기 1순위에 오른 아이들 중 매달 12~15마리의 유기견들을 사랑터로 데려와 보호하면서 입양처를 찾아주는 것이다. 행유세에서는 입양 전에 아이들을 직접 보고 ‘골라서’ 데려가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카페에서 사진을 보고 이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후에 직접 와서 다른 아이로 교체해서 데려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버려진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다 보니 사람이 오고 가는 것에 항상 예민해요. 동구협을 거쳐서 온 아이들이라서 친구들이 죽는 거, 입양 가는 거 다 보기도 했고요. 하림이의 경우는 사람들이 먼저 가면 막 울어요. 애들이 다 알더라고요.” 하림이는 하림각 부근에서 개인이 구조하여 오게 된 아이다. 두 번 입양을 갔지만 다시 파양되어 돌아왔다. 일전에 한 일가족의 방문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1차 입양상담을 하고 가족들이 아이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말에 방문을 허락했다. 4명의 가족이 와서 입양을 원했던 아이를 한번 안아보더니 생각보다 크다, 사진과 좀 다르다, 하며 다른 아이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때 다른 아이들은 마치 나를 안아주세요 하듯 모두 그 주변에 몰려있었다. 한번 안았던 아이를 내려놓고 또 다른 아이를 안자 바닥에 내려진 아이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를 또 내려놓고… 함께 왔던 가족들이 한마디씩 이애 저애 할 때마다 사랑터 아이들은 모두 자기를 선택해 달라는 듯 바라보았다. 결국 그 가족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우르르 떠난 후 아이들의 표정을 사랑터 가족은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규칙이었다. 한마리라도 더 입양 보낼 수 있으면 좋다는 것을 그들이라고 모를까. 절차가 간소할수록 더 편한 것도 그들이고, 규칙 하나라도 더 세우면 그로 인한 불편을 매번 겪는 것도 그들의 몫임이 뻔한데. 작은 것 하나라도 사람의 편의보다 동물들이 상처받지 않는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 몇 명이 자비로 작은 보호소를 설립했던 것이 사랑터의 시작이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둘 늘고 후원해주는 곳도 생겨났다. 행유세를 이끌어가는 많은 운영진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원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다. 인터넷 다음카페 '행복한 유기견 세상'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회원들의 새 글이 올라온다. 입양 간 아이들의 소식, 대부대모들의 활동일지, 행유세의 운영일지 등 행유세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어떤 아이들이 들어왔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 보호소와 큰 규모의 커뮤니티를 함께 운영해나가는 어려움을 물었다. “실시간이 아니다보니 답답해하시는 분도 계세요. 카페에서 글로 소통하다보니 오해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병원 가는 사람, 글 올리는 사람 분담이 되어 있다 보니 소식이 조금 늦어지면 빨리 알려 달라 독촉하시기도 하고요.” 힘든 점을 물었는데 한편으로는 자랑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랑터의 아이들은 보호소의 운영진들만이 아닌, 다른 많은 회원들의 보호 아래 있었다. 아이들의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지켜보는 이들이 많은 것은 녀석들에게는 분명 행복한 일일 터였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얼마전 행유세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누군가 사랑터 문 앞에 강아지 세 마리를 박스에 담아 버린 것이다. “뚜껑이 닫혀있어서 처음에는 박스를 버리려고 내놓은 건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한참 지나서 퇴근할 때 정리하려고 열어봤더니 강아지 세 마리가 목줄이 엮인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거예요. 그 좁은 곳에서 배변을 얼마나 참았는지 풀어주니까 샛노란 오줌을 누더라고요.” 그 때 버려진 아이들 중 두 마리가 인터뷰를 하는 우리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이라고 버려진 과거를 잊었을 리 없을 텐데, 행복하고자 인간이 욕심내는 수많은 것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매우 소박한 조건을 지닐 뿐이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서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의욕도 꺾이고 허탈할 것 같았다. 유기동물의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유기동물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변했어요. 옛날에는 잡종이다, 똥개다 하면서 혼종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더 심했는데 요즘은 혼종을 입양하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진 걸 느껴요. 다만 유기견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순종 혼종을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다 같은 생명이잖아요.” 사람의 인생에도 곡선이 있고 갈림이 있듯이, 견생도 마찬가지.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유기견을 돌보며 삶의 보람을 찾은 그녀처럼 우리 앞에 놓인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리라 믿는다. 그들이 유기견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생이 유기견으로 끝나지 않도록 사랑터의 하루는 오늘도 바쁘다. CREDIT?글 김지은 사진 박민성?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4: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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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할 거니까,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 BE COMPANIONS행복할 거니까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1년이 걸렸다. 가까스로 야옹이를 구출해서 협력병원으로 가는 차 안엔 침묵이 흘렀다. 그 보드랍고 긴 털이 갑옷처럼 딱딱하게 엉켜버린 것처럼, 기쁨과 슬픔, 미안함과 노여움, 삶의 회한 같은 감정들로 마음이 뒤엉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짙은 잿빛의 야옹이는 소위 말하는 A급 페르시안이다. 9년 전 100만원을 주고 사왔다며 내심 자랑하듯 말하던 야옹이 주인의 면상이 떠올랐다. 주인은 작년부터 야옹이를 놓고 우리와 실랑이를 벌였다. 야옹이가 아프다며 연락은 계속 해오는데 보낼 듯 말 듯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구조 건을 두고 ‘실갱이 건’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아픈 고양이를 위해 돈까지 써가며 치료해 줄 마음은 없지만 고양이가 다시 건강해지면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야옹이의 주인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Don’t touch me처음 마주한 야옹이는 집 지키는 개처럼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자기만의 세계에서 철옹성 같은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고 몸은 비쩍 마른데다 털은 갑옷처럼 딱딱하게 뒤엉켜 있었다. 나를 보더니 여느 길고양이들보다 더 경계하며 화를 냈다. 완벽하게 인간을 거부하고 있었다. 주인은 비싼 돈 주고 사왔는데 애교도 없고 경계만 하는 야옹이를 나쁜 고양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람을 잘 따르도록 성격까지 개량된 페르시안이 이토록 경계가 심한 경우는 대부분 환경 탓인데 말이다. 야옹이가 움직이는 시간은 하루 한 번 식사 때였다.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주린 배린 채우기 위해 걸어 나오는 모습은 꼭 다리가 처음 생긴 인어공주의 걸음걸이와도 같았다. 고통스러움 그 자체였다. 야옹이는 한 때 성행했던 발톱제거수술을 받았다. 사람으로 치면 손발가락의 끝마디를 절단하는 것과 같다는 발톱제거수술을…….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처 발톱이 제거되지 않은 발가락에는 늘 염증이 차 있었다. 주인은 야옹이가 컨디션이 나빠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마다 협회로 연락했다. 고양이가 죽을 것 같다고……. “애도 못 낳는 병신 고양이”주인은 또 야옹이가 발정이 날 때마다 동네 전봇대에 묶어뒀다. 야옹이를 살 때 낸 돈의 절반도 안 되는 중성화 비용이 아까워서였을까. 야옹이의 발정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인은 동네 길고양이와의 교미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때마다 생김새가 다른 야옹이는 길고양이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야옹이는 단 한 번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이런 야옹이를 주인은 “애도 낳지 못하는 병신 고양이”라며 거칠게 다뤘다. 주인의 폭언과 폭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비쩍 마른 야옹이가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야옹이는 이런 식으로 9년을 버텨왔다. 이번에 다시 가서 보니 전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었다. 더 이상 광범위하고도 애매모호한 동물현행법만 따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주인에게 강경히 대응하기로 했다. 먼저 협회 차원에서 법적으로 대응 가능한 법률자문을 구한 후 주인을 설득했다. 방치는 학대의 전형적인 유형이니 야옹이가 남은 묘생이라도 편히 쉴 수 있게 소유권을 포기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말에 주인은 야옹이를 떠넘기듯 우리에게 주었다. 행복이 기다리고 있어1년 동안 인내를 삼키며 온갖 설득 끝에 데려온 야옹이의 눈빛은 꺼져가는 불빛처럼 흐렸다. 병원에서 도착해 기본검사 후 발톱제거수술 부작에 대해 상담했지만, 담당 수의사는 중성화 수술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극심한 탈수와 빈혈 그리고 자궁축농증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저체중이라서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면 통증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야옹이를 나는 진심으로 위로했다. “야옹아, 사람이 싫지? 왜 모두가 너를 괴롭히고 힘들게 할까 생각했지? 사람으로서 미안해. 내가 대신 다 사과할게. 야옹아…….”야옹이는 말하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친 야옹이는 현재 협회 회원의 기부로 개별 룸서비스가 제공되는 고양이 호텔에 묵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차가운 바닥이 아닌 따뜻하고 폭신한 이불에서 자고, 개 사료가 아닌 맛난 고양이 사료와 캔을 공급받으며. 또한 폭언과 폭력이 아닌 상냥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로 보살핌을 받으면서 말이다.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의 손을 극도로 싫어하는 야옹이를 보며 나는 다시금 희망을 품는다. “야옹아. 우리 한번 해보자. 너에게 꼭 행복감을 맛보게 해 줄 테니, 너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힘을 내 줘.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행복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널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CREDIT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박선미? 본 기사는 <매거진C> 과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2: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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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w me the country
- ESSAY Show me the country 시골, 만능단어인가요 키우는 개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만능 단어는 ‘시골’이다. 그들은 먼저 개를 떠나보내는 이유를 잠깐 웅얼거린 뒤 ? 대체로 짖어서, 털이 날려서, 산책을 시킬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까 대략 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습성이 해당된다 ? 상대가 무언가 말하기 전에 황급히 시골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그래서 공기 좋고 뛰어 놀기 좋은 시골에 보냈어. 마침표. 시골이라는 단어가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show me the money’ 치트키라도 되는 양,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나는 하루에 버스가 다섯 대 오가는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바다와 들, 야트막한 동산이 어우러진 마을이었다. 봄이면 신작로에 뱀이 한 마리씩 발견되곤 했다. 그러니까 정말 ‘쌩시골’이 었다는 소리다. 우리 마을에도 도시에서 유배 보내온 개들이 적잖게 있었다. 말티즈부터 치와와, 믹스견까지 견종도 다양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성정을 타고나 동네 개란 개들에게 지분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귀하고 담벼락이 없는 촌에서 남의 집 개는 좋은 친구였다. 개와 뒹굴다 걸리면 개벼룩 옮는다고 야단을 들었지만 그 때뿐이었다. 시골 개와 즐기는 놀이는 끝이 없었다. 사람이 고팠던 이웃집 개는 개집을 질질 끌고 나를 반기러 오고는 했다. 오수를 즐기는 그 애의 뒤통수에서는 햇빛 냄새가 났다. ?시골 바이 시골 어느 날엔가 동네 파란 철문집 할머니에게 도시의 아들네가 보냈다는 새초롬한 말티즈가 왔다. 새하얀 털이 자르르하게 길어 꼭 공주님 같았다. 손녀가 무어라고 이름을 알려줬다지만, 할머니는 개가 개지 무슨 이름이냐고 혀를 찼다. 말티즈는 그 집에서 딱 한 달을 보내자 머리를 풀어헤친 추노꾼이 되었다. 추노꾼 바로 옆 집에는 밤이고 낮이고 목줄에 묶인 개가 있었다. 그 개는 초인종 역할만 하다가 어느 날 개장수에 의해 종적을 감췄다. 초인종 강아지(편의상 이렇게 부르겠다)는 멍멍이보다 멍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개였다. 믹스견이었고, 유순한 얼굴에 단추같 이 까맣고 반질반질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정말 좋아했다. 그 집 할머니가 밥을 주러 지근거리에 가면 환희에 가득 차 오줌을 싼 나머지 욕을 먹고는 했다. 나는 오줌 테러를 당하는 것이 무서워 거리를 재면서 조심조심 그 애를 쓰다듬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개가 목줄에서 풀려난 것은 개장수가 훔쳐갔을 때, 오직 그 때뿐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물론 그 중에는 터럭에 윤기가 흐르고, 때 되면 목줄을 풀어주는 주인을 만나 천수를 다한 녀석도 있었다. 나는 단지 시골이 개를 보내는 ‘만능키’처럼 여겨지는 것이 염려스럽다. 도시의 모든 개가 세심하게 관리 받는 것이 아니듯, 시골의 모든 개가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마을 개들은 대체로 묶여있었다. 할머니들은 사방팔방 다니며 배변을 하거나, ‘저지레’를 벌이지 못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시골에 보냈다는 한 마디로 개가 자유롭게, 초원을 누빌 것이라고 편리하게 생각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다시 개를 시골에 보내는 사람 앞으로 돌아와서, 나는 ‘공기 좋고 뛰어 놀기 좋은 시골로 보냈다’는 얘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화제를 돌린다. 어쩌겠는가. 보내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개는 보내졌고, 내 앞의 이 이는 벌써 딴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저 그 개가 인심 넉넉한 주인을 만나 맛있는 밥이나 많이 먹을 수 있기를. 어쩌다 한번 뒷산에라도 데려가주기를. 그리고 동물을 좋아하는 심심한 어린아이가 근처에 있기를 바랄 수밖에. ? CREDIT에디터 이은혜 그림 권예원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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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없는 마을 지킴이들의 겨울
- ON SITE이름 없는 마을 지킴이들의 겨울 시골 길 위의 초라한 강아지들에게 깨끗한 물 한 번 제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이 부부는 이름 모르는 시골 개들을 위해 믿기 힘든 정성을 쏟았다. 부부가 남긴 기록을 정리했다?.2016년 가을일요일은 시댁에서 가을 묘사를 지내는 날이었는데 몸이 아파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몸이 불편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답답해 오후에 시골집과 밭에 들렀다.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워진 시골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담고 싶어 둑길을 따라 걸었다. 콩을 베어낸 논둑길 위에서, 이 아이를 만났다. 지저분한 털로 힘없이 서 있는 한 마리의 개였다. 보자마자 마음 한 편이 쓰려왔다. 주인은 누구일까.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을까.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는 경계하지 않고 살갑게 꼬리를 흔들어댔지만 단단히 굳어버린 꼬리는 잘 흔들리지 않았다. 철갑으로 온 몸을 중무장한 것 같은 털옷. 이 작은 아이는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까. 물그릇은 새파랗게 이끼가 끼여 있는데 아이는 이 물을 마시며 혼자 무서운 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손을 내미니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를 보니 다행히 건강해 보인다. 좁은 둑길을 타고 경운기 한 대가 달려온다. 개 옆에 잠깐 멈추더니 갑자기 물그릇을 던져버렸다. 그리곤 개를 안전한 곳에 옮기지도 않고 아슬아슬하게 개집 옆을 경운기를 몰며 지나갔다. 개 주인은 아닌 것 같다. 수소문 끝에 아이의 주인을 알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어느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집에 안 계셔 찾아보니 이웃집에서 김장을 하고 계셨다. 내가 가니 반가워하시며 노란 배추 속살을 떼어 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인정은 많으신 분 같은데 왜 강아지는 저렇게 기르시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강아지는 할머니를 보자 손을 내어 주며 장난을 치고 애교를 부리는데 마음이 울컥했네. 그래도 주인이라고… 할머니 연세는 65세였고, 집에서 혼자 강아지 둘과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계셨다. 동물을 좋아서 기르는 건 아니란다. 딸이 기르다 놓고 가는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기르고 있다고 하셨다. 물그릇을 던지고 간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이 강아지가 할머니 집으로 온 지는 3년 되었다. 다른 사람이 기르던 강아지였는데 콩밭을 지키게 하려고 부탁해 데리고 왔다고 한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이름 없어, 나는 주인도 아니여.” 재차 묻자, “귀찮어, 귀찮어.” 손을 내저으신다. 정말 아이에게 이름은 없었다. 우리가 주인은 아니지만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콩밭에서 만난 인연이라 ‘콩이’라 부르기로 했다. 할머니는 아이 털을 깎아 주고 싶지만 가위를 들면 아이가 도망을 가서 저런 모습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 이유인진 알 수 없었다. 마침 우리 아이들 털 깎아주던 기계가 있어 콩이의 털을 깎아 주는 걸 허락받고 간단한 털 정리를 해줬다. 콩이의 털은 떡처럼 엉겨 붙어 있어서 한 번에 시원하게 정리해주긴 어려웠다. 앞으로 올 때마다 조금씩 더 깎아주기로 했다. 헤어지는 시간, 콩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콩이야, 너를 꼭 기억할게. 가끔 널 만나러 올 거야. 건강해야 한다. 2016년 겨울이후로 종종 콩이를 찾아갔다. 콩이는 여전히 콩밭을 지키는 중이다. 콩이를 만난 이후로 일상 중에서도 이따금 이 아이의 생각에 빠져든다. 비록 콩밭을 지키던 시골의 이름 없는 개였지만 나는 이 아이가 보물같이 느껴진다. 한파가 심해졌을 땐 집에 있는 아이들이 입던 옷을 가져가 입히고 박스들을 가져가 콩이 집에 넣어주기도 했다. 콩이 주인 할머니도 혼자 사시니 이따금 선물을 들고 방문해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찾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반겨 주시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할머니에게 허락을 구하고 우리 부부는 콩이와 놀고 목욕을 시키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콩이에게 콩밭을 지키게 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키울 수 없다고 맡기고 가는 아이들을 거절하지 않고 거두시는 인정 많은 분이셨다. 그 나이면 자기 몸도 귀찮아질 나이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콩이를 만나러 시골을 찾던 중 콩이 이웃에 사는 다른 강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됐다. 한 강아지가 비닐하우스에서 강아지 여섯 마리를 순산했고, 우리도 오가며 이 꼬물이들을 이뻐라 지켜보고 있었는데 추운 어느 날 꼬물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미 개는 미친 듯이 날뛰며 울부짖고 있었다. 어미 개는 이때 처음 보았는데 바싹 말라 갈비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콩이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꼬물이들은 한파에 모두 얼어 죽어 한 녀석만 살아남았단다. 비닐하우스 안에 아이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줄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미는 흔히 말하는 짬밥도 못 먹은 채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개가 아니었다. 마을에서도 지독한 영감탱이라고 소문이 난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는데 쌀겨를 푼 물을 가끔 가져다주는 게 관리의 전부였다. 그대로 돌아설 수 없었다. 가지고 간 것 중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다행히 양념이 되지 않은 빵이 조금 남아 있었다. 빵을 내려놓자 어미와 새끼는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은 정말 배고파서 그러는 거란 걸 나는 안다. 남은 부스러기 하나마저 남김없이 먹기 위해 어미와 새끼는 몸부림을 쳤다. 그 옆엔 얼어 죽은 다른 새끼의 털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후 우리 부부는 콩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따금 꼬물이 가족도 챙겼다. 만날 때마다 사료와 따뜻한 물을 채워줬다. 견주 할아버지를 만나 강아지를 팔기 위해 기르는 건지 물었더니 또 아니란다. 밭을 망가뜨리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쫓아내려고 기른다고 했다. 견주는 마을 소문과 달리 순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단지 동물에 대한 개념이 없고 자신에게도 야박하리만치 돈을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이 개 역시 이름 같은 건 없었다. 남편과 상의 후에 어미 개를 ‘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 블로그에 순이 가족의 사연을 게재했고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순이 가족도 매서운 겨울의 한파를 이겨냈다. 2017년 봄봄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3월, 한 쉼터에서 순이의 소식을 알고 강아지들을 구조하자는 제안이 왔다. 나도 처음에는 순이를 빨리 구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움 주시겠다는 분과 한참을 통화했다. 도움을 준다는데 왜 마음이 이상한 걸까. 사람들은 강아지가 구조되면 병원에서 치료받고, 사람들에게 모금을 받으며, 쉼터에 머물다가, 누군가에게 입양되는 수순을 어렵지 않게 밟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건 강아지들에게 힘겹게 넘어야 할 과정들이다. 만약 끝내 입양이 되지 않는다면 콩이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몹시 괴로워졌다. *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바람님의 이현동 시골 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Naverblog / bluemount337)CREDIT글·사진 바람 에디터 김기웅?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1: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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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런 시골 개, 천방지축 뿌꾸 이야…
- DOGHOOD사랑스런 시골 개 천방지축 뿌꾸 이야기 뿌꾸의 시골 입성 작년 늦은 봄, 아파트에 사시던 부모님은 그토록 바라던 시골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잔디를 깐 마당과 마당 한 모퉁이 자리 잡은 작은 텃밭, 그리고 문 앞에 나무 데크가 있는 집. 두 딸을 서울로 보내고 김해 시골의 주택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신 부모님은, 이제 고향집 으로 내려가려면 대중교통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딸들의 성화에 생후 두 달된 조그마한 진돗개 한 마리를 얻어 오셨다. 새 식구가 될 강아지 사진을 보냈다는 엄마의 말에, 우리 자매는 신이 나서 역시 사람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 속에는 아주 조그맣고, 토실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갈색 진돗개 새끼가 있었다. 특히 오른쪽 앞발 부분만 발목까지 하얀 털로 덮여 있어, 한 쪽만 흰 양말을 신고 온 것 마냥 귀여웠다. 이렇게 예쁜 막내 동생이 생겼는데 이름을 뭐로 한담. 산들이, 초롱이, 체리 등 강아지가 생긴다면 붙여 주고 싶었던 앙증맞은 이름들을 두고 고심 끝에 결정한 이름은 ‘뿌꾸’.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니까 모두 찬성했다. 이렇게 온 가족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랄 뿌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겁쟁이 순둥이 뿌꾸 우리 뿌꾸는 태어난 지 두 달 남짓할 때 우리 집으로 왔다. 어린 나이에 엄마, 형제들과 헤어져서 얼마나 슬펐을까.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 애가 너무나 얌전해서, 엄마 아빠는 뿌꾸가 겁이 엄청 많구나 싶으셨단다. 마당에서 집 지키라고 데려온 애인데 짖지도 않고 그저 멀뚱멀 뚱. 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 곧장 적응해서 엄마 아빠가 마당을 걸어 다니면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시골 주택으로 이사 가고 처음에는 무슨 강아지냐며 핀잔 을주셨던 부모님이, 서로 뿌꾸 밥그릇을 사 오는 바람에 뿌꾸에겐 큰 철제 밥그릇이 두 개나 생겼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뿌꾸가 집 안에 갇혀 지내지 않고 잔디밭에서 맘껏 뛰놀 수 있다는 것. 아빠가 마당에서 일을 하실 때면 뿌꾸가 옆에서 어물쩍거리며 따라다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박스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던 뿌꾸에게 아빠는 직접 집을 만들어 선물하셨고 뿌꾸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손수 주인이 지은, 창문 딸린 넓은 집을 선물 받은 부유한 개가 되었다. 폭풍성장! 하루가 다르게 커 가다 뿌꾸는 하루하루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컸다. 처음 부모님 댁에 온 날 사진들을 보면 조그만 게 바람에 날아갈까, 행여 누가 데려갈까 걱정됐는데, 3개월쯤 더 지나니 키도 크고 얼굴도 길쭉해지면서 동네 꼬마들이 마주치면 흠칫 놀랄 크기로 커버렸다. 덩치에 비례해 사고의 스케일이 커지고 머리도 좋아졌다. 텃밭 야채를 몽땅 밟아놔서 엄마를 놀라게 하는가 하면, 낮에 몰래 목줄을 풀어서 마당과 창고를 뒤지고 잔디를 캐면서 놀다가 아빠 퇴근시간에 맞춰 자기 집 앞에 가서 목줄을 맨 척 능청스럽게 앉아서 인사를 하고는 했다. 꽃 옆에 붙은 벌을 먹으려다 벌에 쏘여서 오른쪽 얼굴만 탱탱 부었을 때는 온가족이 병원에 전화를 걸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갈이를 할 땐 이가 너무 간지러운지 개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보이는 건 다 물어 뜯어버리는 바람에, 신발이나 장갑을 뿌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뿌꾸 입에 한 번 들어가면 인형은 솜이 다 터지고 털장갑은 올이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물건을 안 뺏기려 애쓰고 뿌꾸는 달라고 떼쓰는 꼴이 지켜보는 다른 사람에게는 재밌는 놀이로 보였을지 모르나, 뿌꾸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마당에서 뿌꾸에 밀려 늘 휘청거렸다. 털갈이를 할 때는 마당 여기저기 솜뭉치가 흩어져 있고, 공기 중에도 털이 둥둥 떠다녔다. 빗질을 해줄 때마다 잔뜩 묻어나오는 털을 보며 이것이 진짜 개 한 마리에게서 나오는 털이 맞을까, 혹시 탈모는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중대 결정, 뿌꾸의 중성화 수술 뿌꾸가 커 갈수록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바로 중성화 수술. 강아지도 강아지 나름의 가족계획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새끼를 가지게 할 생각이 없다면 암컷이든 수컷이든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는 것이 강아지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님은 뿌꾸 하나의 활동량에도 종종 버거워하시고, 가뜩이나 열려있는 마당에서 크는 뿌꾸가 걱정되었던 우리 가족은 뿌꾸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것이 최선의 결정일거라 믿으면서. 뿌꾸가 병원 안에 들어와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수술 후 마취가 깨는 시간까지 7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다. 거대한 깔때기 모양 넥카라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뿌꾸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초조한 기다림 끝에 수술이 잘 끝났다는 병원의 연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에 데리러 갔더니 뿌꾸는 아직 마취가 약간 덜 깼는지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이쁜 뿌꾸 고생했어, 하며 강아지용 소고기 간식을 병원에서 잔뜩 사 줬다. 여전히 보드라운 뿌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뿌꾸는 맑은 눈으로 나 잘했지 하고 올려다 봐주어서 또 한 번 뭉클했다. 상처를 핥아서 덧나게 하면 안 되기에 일주일 정도는 더 넥카라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익숙지 않았던 뿌꾸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마을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뿌꾸를 보고 어디 아팠냐, 병원을 다녀온 거냐 하며 걱정하는 눈빛으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셨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 살면 이런 따뜻함이 좋다니까 하는 생각과 함께, 수술을 받아 한동안 넥카라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해 드리니 깔때기를 해도 잘생겼네, 허허 하고 지나가셨다. 어른이 되어가는 뿌꾸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 멈춰 서서 뿌꾸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조그마했던 강아지가 어느덧 커서 15킬로그램이 넘어서고,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다니니 눈에 워낙 잘 띄는 데다, 능청스레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곤 해서 가까운 동네 사람들은 우리 뿌꾸를 다들 알고 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실 때는 옆집에서 뿌꾸 밥을 챙겨주시기도 한다. 사교성도 늘어 이웃집에서 키우는 3살짜리 보더콜리와도 친구가 되었고, 근처 공장에서 키우는 흰 개 두 마리는 종종 우리 집에 찾아와서 뿌꾸와 놀다 간다. 강아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귀여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제 뿌꾸는 한 살이 되었다고 동네 주민 아닌 낯선 사람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면 짖어서 경계한다. 조금씩 눈치도 늘고 아기 때처럼 막무가내로 소란을 떨지는 않는 것 같아 자주 목줄을 풀어서 전보다 더 자유롭게 마당에서 뛰놀게 하고 있는데, 숨겨놓은 축구공이니 슬리퍼를 찾아내서 노는 게 또 어찌나 영특한지. 잔병치레 없이 주말이면 같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귀여운 막내 동생으로 잘 커준 것 같아 언니로서 뿌듯하다. 뿌꾸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부터, 우 리 가족은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뿌꾸는 이제 겨우 한 살. 사랑하는 나의 막내 동생 뿌꾸와 오래도록 건강하게 마당에서 뛰어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CREDIT글 사진 박샛별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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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하고 조금 큰 '고양이 가족'이 놀러왔다
-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 출신의 팀 뉴턴(Tim Newton)이 최근 스라소니 가족을 만났다. 아주 이른 아침, 새벽 때 일어난 일이었다. 뉴턴은 그의 갑판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잠에서 깼다. 고양이나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매우 빠르고 이상한 발소리가 났던 것이다. 의문에 차서 갑판 쪽 문 앞으로 간 그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갑판 위에서 커다란 고양이들이 잔뜩 모여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들이 그냥 덩치가 굉장히 큰 고양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창문에 더 가까이 붙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귀에 매달린 긴 털을 발견했다. 그 털에 잠이 확 깼다. 그는 그 큰 고양이들의 커다란 발과 묘한 털 무늬를 눈여겨봤다. 그들은 덩치가 좀 큰 고양이가 아니라 새끼 스라소니였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지내는 동안 스라소니를 몇 번 보지 못했다. 그 중에서는 단 몇 초만 스라소니를 보고 놓친 적도 있었다. 그런 그 앞에 스라소니들이 8마리나 모여 놀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추어 조경 사진 작가로 일하던 팀은 자신의 카메라를 챙겼다. 그리고 집의 남쪽으로 가 창문을 열고 슬그머니 새끼 스라소니들을 촬영했다. 스라소니들은 그의 집 갑판 위에서 생기발랄한 에너지로 날다시피 뛰다가 북쪽으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운을 다 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수풀 뒤에서 몇 마디씩 들려오는 소리를 귀에 담을 수 있었다. 새끼 스라소니들의 어미의 목소리였다. 고양이 소리와는 색다른 억양이였다. 어미는 짧게 ‘마우’, 혹은 길게 ‘마우’ 하고 말하며 새끼들을 불렀다. 곧 수풀이 바스락거렸다. 수풀에 숨어있던 새끼 스라소니들이 어미에게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곧 새끼 스라소니들은 다시 팀의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곧 스라소니들은 창문 너머에 서 있는 팀의 존재를 감지했다. 어미도 팀에게 관심이 갔는지 갑판 위로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들과 팀은 고작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어미는 간간히 팀을 바라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 어미는 이 곳에 위험이 없다고 결론 지은 모양이였다. 그들은 다시 갑판 위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팀은 갑판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다가갔다. 스라소니는 예민하고 위험한 동물이라 대단히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지만, 일단 그는 갑판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족의 평화를 깨지 않길 요구하면서 조용히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한 새끼 고양이가 팀에게 호기심을 갖고 접근했다. 정확히 말하면 팀이 가지고 있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상자, 카메라를 궁금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새끼 스라소니는 겁도 없이 팀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팀은 사진을 찍고, 그리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스라소니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몇 분 후 새끼들은 갑판 위에서의 파티를 끝내고 어미에게로 갔다. 그들은 곧 돌아서서 언덕쪽으로 걸어 사라졌다. 팀 뉴튼은 페이스북에 스라소니 가족의 사진을 게재하며 그 아름답고 신비한 순간을 공유했다. 누리꾼들은 ‘정말 신기한 만남이다’, ‘평생 한 번도 없을 수 있었던 경험’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CREDIT글 김나연 객원기자사진 facebook / Tim Newton?
- NEWS | 2017-10-02 00:5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