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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5 10: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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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5 10: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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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2 11: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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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2 10: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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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1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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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1 10: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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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14 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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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령견 이야기 | ② 노령견을 보내는…
- 노령견 이야기② 노령견을 보내는 시간? 날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개들이 뛰놀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녀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그녀의 손에는 허연 종이뭉치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펼치더니 그 안의 것을 허공에 대고 휘휘 흩뿌렸다. 밀가루처럼 흩어지는 골분은 들풀이며 들꽃 그도 아니면 흙바닥 사이사이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정확히 2013년 6월 23일 그녀의 까미가 죽었다. 그로부터 1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조금씩 까미와 이별하고 있는 그녀였다. ? 이제서야 보내줄 수 있구나운전하는 중간 중간네가 뛰어놀기 좋을만한 한적한 곳을 발견하면조금씩조금씩너를 보내준다.까미야잘 지내….- 2014년 5월 10일 그녀의 사진일기 중에서 -?? 개장수에게 잘 키우던 개들 팔아버린 까닭 슈나우저 종의 까미에게 주인은 평생 단 한 명뿐이었다. 꼬박 열다섯 해를 그녀와 같이 했다. 가족 구성원과 그 수가 바뀌어도 둘만은 늘 함께 했다. 그녀가 까미였고, 까미가 그녀였다. 그런 까미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점점 진짜 아이가 돼 갔다. 열한 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오줌발이 시원치 않았다. 방광 부근에 종괴가 생겼다는 진찰결과를 받았다.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정도 받았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3~4년을 버텼으니 꽤 오래 잘 살아줬다. 불운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 순번으로 노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천진난만한 아이일 것 같던 녀석은 그녀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앙상한 몸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참 많이도 울었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늙은 개, 까미가 치매에 걸려 버렸다.? 그녀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낮 시간, 아무도 없는 집에서 까미는 여기저기에 오줌을 누고 똥을 싸고 다녔다. 이것을 질근질근 밟고서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똥 위에 주저앉은 채 누군가 올 때까지 한정 없이 기다리는 일도 허다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도 덩달아 얼이 빠졌다. 이럴 때마다 창문을 열어 냄새를 우선 빼내고 세재를 대야에 풀어 손걸레질을 했다. 말라버린 변은 소독제를 뿌려 뒀다가 철수세미로 닦아냈다. 그리고 돌아서면 또 어느새 까미는 거실 어딘가에 또 한 차례 용변을 봤다. 화장지를 돌돌 말아서 훔쳐내고 소독 스프레이로 닦아냈다. 밤 11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이런 생활을 반년이 훨씬 넘게 반복했다. 그녀는 그 옛날 시골 어르신들이 오래 잘 키우던 개를 늘그막에 개장수에게 팔아버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 끝을 보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은 피하지 않기로 했다. “저 이제 힘들어요…” 2013년 3월의 어느 날.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저녁 무렵 겨우 일어나 걸어 다니는 까미의 그림자가 거실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까미는 아직 식욕이 좋고 용변도 그런대로 봤다. 그러나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녀의 시선은 계속 까미를 쫓고 있었지만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종괴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둘은 너무 힘들어 참 많이도 괴로워했다. 그녀의 입에서 이제는 떠나도 된다는 말이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저리 누워 달게 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또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녀였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속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까미는 지금 자신이 죽더라도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덜 받도록 시간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반려동물과의 ‘사랑’이란 남녀간의 ‘사랑’과는 달라 시간이 더해질수록 깊어진다는 것을. 그로부터 5일이 흘렀다. 까미는 구강출혈까지 보였다. 동생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집에 들어와 보니 이불은 피범벅이 돼 있었다. 일단 출혈이 멈춰서 까미가 좋아하는 목욕을 시키고 재웠지만 그날 저녁 한 차례의 출혈이 더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 반 통을 쓰고서야 피는 멈췄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어떠한 통증으로 푸닥거리를 하고 이제는 용변마저 누워서 보는 까미를 씻기며 그녀는 10년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간간히 봐온 그 표정을 읽고야 말았다.“저 이제 힘들어요….”? 너무 울지 마세요 15년을 함께한 그들,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결정은 빨랐다. 날은 결심이 선 그 주의 일요일로 정해졌다. 하루 종일 파닥거리며 괴로워하던 까미는 안락사를 위해 떠나기 전날 오후부터 내내 잠만 잤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목욕시키고 발톱을 잘라 줄 때도 잠만 잤다. 곤히 잠든 까미를 안고 집을 나섰고, 그녀의 동생이 언니와 까미의 마지막 모습을 2층에서 사진기에 담았다. 까미는 그렇게 그녀의 품에서 자는 듯 떠났다. “까미야 언니가 미안해….”하나를 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어야 할까. 며칠은 멍하니 보내더니 갑자기 미친 것처럼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네 달이 지나도록 까미를 생각하면 왈칵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까미가 떠나며 걱정하지 않게끔 살아주는 것이 그녀가 떠나보내야만 했던 까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마음으로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 어김없이 가을이면 떠나는 제주여행길에 까미를 데려가기로 했다. 까미가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기에. 그렇지만 그럴만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외면했던 것인지 그녀는 그 이듬해 봄날에 제주도 곳곳에다 까미를 보냈다. 아무래도 한 군데 정도는 까미가 머물고 있길 바랐는지 마지막은 감귤나무 아래에다가 조금 묻는 그녀였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질풍과도 같았던 1년이 지금은 다시 겪고 싶은 추억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짐스럽게 느껴지며 부담으로 다가오는 노령견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세요. 그 아이가 어렸을 때 잘 성장할 수 있게끔 돌봐 줬던 것처럼, 그들이 또 잘 떠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랍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너무 울지 않기로 해요.”? ? 노령견 이야기 ① 마침내 해피엔딩 ③넌 여전히 최고의 개야, 도로시? CREDIT글 장영남 원문 사진 밤식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5 10: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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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령견 이야기 | ① 마침내 해피엔딩
- 노령견 이야기?① 마침내 해피엔딩? 주인을 잃은 노령견 오순이와 노견을 떠나보낸 정윤 씨는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가족이 됐다. 열 살 노견을 입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 공고번호 130412-003번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죽어 버렸다. 남겨진 개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그 개가 노령견이었기에. 공고번호 130412-003 말티즈 암컷. 열 살의 나이에 시위탁보호소에 들어갔다. 같이 살던 네 마리 개들도 보호소 행이었다. 열 살, 여덟 살, 일곱 살, 세 살. 그들도 어리지 않았다. 늙은 개는 차가운 철장 안에서 잔뜩 움츠렸다. 작디작은 몸이 더 쭈그러들었다. 보호소에서 주어진 기한은 열흘. 그 안에 새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였다. 그렇지만 어린 강아지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노견은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낡고 초라한 존재였다. 결국 개들은 차례차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가장 젊었던 세 살짜리마저도. 그리고 130412-003번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안락사가 예정됐던 그날, 어디선가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130412-003번의 철장 안이었다. 갓 태어난 새끼 두 마리가 케이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워낙 작고 말라 노견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안락사 당일에 새끼를 낳은 개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어미는 새끼들과 함께 보호소 직원 숙소로 옮겨졌고 130412-003번에서 ‘행운이’가 됐다. 병약했던 새끼 하나가 죽어 남겨진 한 마리만 ‘행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보호소 직원들은 말티즈 모녀 행운이와 행복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 누군가 귀여운 새끼 강아지와 함께 가여운 노견 어미까지 입양해주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렇지만 극적인 사연 앞에서도 열 살의 나이는 여전히 부담이었다. 응원의 목소리만 간간히 이어졌다.? 열한 살 예삐는 가고 예삐는 3일 전부터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수의사는 예삐의 위장이 멈췄다고 했다. 주사를 놔주며 “계속 토하면 수액을 맞자”고도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 같은 건 분명 없었다. “정윤아,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예삐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액이라도 맞춰라.” “이따 점심시간에 와서 하면 돼. 갔다 올게.” 집에 돌아오니 늘 방안에만 있던 예삐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며 집안을 헤매다 베란다에서 예삐를 발견했다. 창가 바로 앞이었다. 바람은 불고 나무 잎사귀는 떨리는데 예삐만 혼자 ‘정지’ 상태였다. ‘죽은 거구나.’ 정윤 씨는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안아 올렸다. 몸이 살짝 따듯한 것 같기도 했다. 오줌이 흘러내렸다. 정말 끝이었다. 열한 살 요크셔톄리어 예삐는 정윤 씨가 고3이었을 때 처음 만나 서른이 될 때까지 같이 나이를 먹어간 개였다. 1년 전부터 결석으로 고생해 안쓰럽기도 했지만 자주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니 귀찮을 때도 많았다. 언젠간 이별이 올 거라 짐작은 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잘 가라’, ‘사랑했다’ 흔한 작별 인사 한 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아침에 병원에 데려갔다면, 출근하지 않았더라면, 30분만 일찍 왔다면. 정윤 씨는 고장 난 기계처럼 그날의 기억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며 후회했다. 매일 성가시게 해도 좋으니 다시 돌아와 달라고 중얼거렸지만 예삐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예삐 없는 1년이 흘렀다. 예삐가 빠져나가서 휭 하니 뚫린 구멍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고 그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마음도 집안도 늘 썰렁했다. 보드라운 따스함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그 무렵 정윤 씨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예삐와 같은 종인 요크셔테리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너 살짜리 개를 입양하면 10년 정도는 같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열 살 노령견과 갓 태어난 새끼가 시위탁 보호소에서 정윤 씨가 다니는 보호소로 옮겨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금 행복하기 주인을 잃은 노령견 행운이와 노견을 떠나보낸 정윤 씨는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가족이 됐다. 행운이의 딸도 함께였다. 열 살 노견을 키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행운이가 안락사 당일 새끼를 낳아 목숨을 건진 것도, 계속 가족을 만나지 못하다가 하필 정윤 씨가 다니던 보호소로 들어온 것도, 예삐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행운이가 유난히 가여워 보였던 것도. 인연이라 느낀 순간 나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행운이는 ‘오순이’로, 행복이는 ‘도순이’로 개명해 이름 그대로 정윤 씨와 오순도순 살게 됐다. 마침내 해피엔딩이었다. 그 후 1년의 시간이 지나 오순이는 이제 11살이 됐다. 떠난 예삐의 마지막 나이였다. 처음에 오순이를 입양했을 때는 한두 해라도 편히 지내다 가게 해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건강하고 발랄한 오순이를 보며 정윤 씨는 그 시간을 늘리고 싶어졌다. 노령견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잊혀졌다. 물론 어린 도순이에 비해 오순이는 잠도 많고 쉽게 피곤해 했다. 조만간 백내장이 올 것 같다는 수의사의 말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순이에게 한 약속을 매일매일 지킬 뿐이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맛있는 음식 주기. 걸을 수 있을 때 같이 산책하기. 지금 곁에 있을 때 후회 없이 행복하기.’? ? 노령견 이야기 ?② 노령견을 보내는 시간 ③넌 여전히 최고의 개야, 도로시? CREDIT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배정윤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5 10: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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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길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 PICK UP마사유키 오키의 인스타 네코?일본 길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일본 길고양이들의 여름은 어땠을까? 사진 작가 마사유키 오키가 후쿠오카의 고양이 섬, 도쿄의 거리에서 고양이들의 나른한 여름 나기를 포착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한 열 장의 사진을 옮겨왔다.??? | 읏차~ 유연성을 한껏 뽐내는 풀숲의 노란 고양이 | 더위를 먹고 숙취처럼 헤롱헤롱. 너, 괜찮은 거 맞지? | 갑자기 졸음이 찾아왔는지 발을 든 채로 낮잠 중~ | 기분 좋게 기지개를 쭉 켜고! 하루를 준비하는 체조랍니다. | 제대로 찍고 있는 거야? 원하는 설정이 까다롭군요. |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근성! | 카메라 앞인데 나른해진 걸까요? 여유만만 길고양이 | 같이 먹을래? 조금 친해졌더니 수상한 사냥감을 선물하네요. | 서늘한 곳을 겨우 찾아냈더니 어느새 만원이 됐어요. | 사람의 괴롭힘이 없어 자유로운, 고양이 섬의 고양이들 CREDIT글 사진 마사유키 오키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2 11: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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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길 위의 오냐들
- 아빠는 육묘 중5화 길 위의 오냐들오냐와 같이 살면서부터 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고양이들이 오냐같이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가던 길을 멈추게 되고, 눈 한 번 더 맞추고, 말 한 번 더 던지게 된다. 때때로 외출하다말고 집에 다시 들어가 오냐 몰래 오냐의 밥을 들고 나와 나눠주기도 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동네 친구가 된다.? 고양이의 도시 길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마치 그 길의 터줏대감인양 골목을 지키는 길고양이들을 으레 만나기 마련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제법 큰 야생 포유동물이 아닐까. 덕분에 이 도시가 사람들만의 도시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만큼은 서울도 ‘고양이의 도시'일 뿐이며, 아스팔트와 시멘트 냄새 물씬 풍기는 잿빛 골목이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대물리며 사람들과의 공존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다. 골목의 주인 우리 가족은 만나는 길고양이마다 제각각 이름을 붙여준다. 대개 그 첫인상으로 이름을 짓는데, 이를테면 식빵을 잘 굽는다고 식빵이, 형제끼리 똑같이 생겼다고 쌍디, 검은색·흰색·갈색이 섞여있다고 삼색이, 몸집이 우람하고 남다른 포스가 느껴져서 호동이, 고등어무늬라고 고등어. 이런 식이다. 그러면 이 동네는 식빵이의 동네, 저 골목은 쌍디의 골목, 저 길은 삼색이의 길이 되어 각 동네를 지키는 골목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골목들의 주인들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못되게 구는 사람들은 없었는지, 간밤의 폭우는 어찌 잘 피했는지, 어제의 혹한은 잘 견뎌냈는지, 밤새 새끼들을 찾아 울던 어미는 결국 새끼들을 다 찾았는지 항상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제인이와 해일이 역시 유치원 등하원길 혹은 집 주변에서 심심찮게 길고양이들을 만나고,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담장 너머의 고양이를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둘이서 까치발 경쟁을 한다. 마치 고양이를 처음 보는 아이들처럼. 특히 새끼고양이들을 만나면 발을 동동 구르며, 귀엽다면서 난리 법석을 떤다. 오늘의 운세는 어떨까 길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오냐 같고, 오냐의 친구(오냐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같은 생각이 들지만 오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서는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운수에 맡기기가 일쑤다. 운수 좋은 날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며칠을 쫄쫄 굶기도 한다. 굶는 것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방금 주워 먹은 것이 독약이었을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 돌멩이나 비비탄이 날아올 지도 모르고, 한겨울밤에는 꼼짝없이 영하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로드킬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오냐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여유는 사치를 넘어 꿈일 뿐이다. 삶이 곧 생존이며 생존이 곧 삶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되자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소 차이는 있고,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길고양이와 사람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시시때때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빚어내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가 맞고 틀리며 다른지를 떠나, 금수보다 못한 행위들은 하루빨리 없어지고 최소한의 상식만큼은 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사람을 만나면 피해야하고 도망부터 가야한다고 후천적으로 학습되었지만, 본디 사람을 좋아하는 DNA와 사람들과 가까워지길 원하는 고양이의 본성은 명백하다. 오냐만 봐도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우리 주변을 늘 맴도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분명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CREDIT글 사진 우지욱 에디터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2 10: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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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비야 사랑…
- SHELTER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비야 사랑해 ? ‘(사)나비야사랑해’는 2007년 설립된 중견 동물구조단체이다. 서울시 안에 두 곳의 보호소와 한 곳의 입양센터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중하지만 활발하게 구조와 입양을 진행한다. 매년 2회의 바자회를 열어 보호소 고양이들이 잊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10년이 흘렀다. 고양이로 따지면 중년을 넘어선 나이다. ‘(사)나비야사랑해’는 그 10년의 세월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활발해진 개인들의 참여 ‘(사)나비야사랑해’의 대표인 유주연 씨가 고양이를 구조하기 시작한 때나 지금이나 동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지난해와 올해만 해도 등에 심각한 교상을 입은 채 오래 방치된 고양이 둘을 각각 다른 지역에서 구조했고, 다리가 심하게 괴사된 개와 고양이를 구조했다. 호더 사건의 피해 고양이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사건은 여전히 발생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만 해도 동물 구조는 아주 특별한 일이었고, 별난 사람이나 하는 일이었다. 주연 씨가 처음 개인 쉼터를 열었을 때도 그런 별난 사람끼리 돕자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별나지 않은 사람도 길의 고양이에게 밥이나 물을 주고, 아픈 동물이 보이면 외면하거나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도우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 동물 보호 단체로서의 ‘나비야 사랑해’ 개인의 참여는 후원이나 모금에서도 늘어났다. 포털 사이트의 후원 프로젝트나 SNS를 통한 모금 등이 가능해지면서, 개인들은 심각한 외상을 입은 동물의 구조에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2014년부터 진행해왔던 ‘(사)나비야사랑해’의 대표 프로젝트인 ‘희망이 프로젝트’도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외상 정도가 심각하고, 의료 낙후 지역에서 발생한 사례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개인과 다양한 커뮤니티, 소그룹의 역량이 커지고, 각 지역에 쉼터나 사설 보호소가 활발하게 등장하면서 고민도 시작되었다. 구조하고 치료해서 입양 보내는 일은 동물보호활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지만, 개인도 이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10년 사이 ‘(사)나비야사랑해’는 덩치만 커진 개인구조자가 되어버렸는지도 몰랐다. ? 어른이 되어가는 중 2015년과 2016년은 ‘(사)나비야사랑해’나 그 대표인 유주연 씨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2015년에는 용산 가족공원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서울시과 함께 설치했다. TNR이나 사료 급여, 현장 관리, 그와 관련된 비용 등은 모두 ‘(사)나비야사랑해’의 몫으로 남았지만, 공유지에 설치된 급식소의 의미는 남달랐다. 2017년에는 그 사업을 용산구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용산구 캣맘 모임, 용산구청과 함께 논의 중이다. 2016년에는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 아래 여러 수의사 협회와 동물보호단체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동물보호유관단체 협의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5월 24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되는 ‘동물 생명권 존중’ 집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개 고양이 유기 학대 도살 금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 집회에 참석하기 전까지, 주연 씨는 현장에서 열심히 구조하고 있으니 굳이 이런 행사에 참여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내심 있었다. 그러나 ‘(사)나비야사랑해’ 10년을 앞두고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지난 10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은 입양 보낸 500여 마리의 고양이와 보호소에 있는 130여 마리의 고양이였다. 한 해에만 버려지는 동물의 수가 8만에서 10만 마리라고 하니, 10년을 노력했어도 한 해 유기동물의 1퍼센트도 구조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 깨달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주연 씨는 지난 10년 동안 한 일이 큰 강물에서 물 몇 바가지를 떠낸 것일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년 동안 시간과 자산을 동물 구조에 모두 던져 넣었는데 말이다. 그 충격이 이제까지 해왔던 조용히 소소하게 하는 동물 구조라는 틀을 깼다. 물길 자체를 바꾸는 데 참여해보기로 한 것이다. 동물의 생산과 소비 방식 자체의 교체, 법과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들 우리끼리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기 시위 등을 통해 대중과 입법기관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동물 반려 인구가 1,000만인 데 비해 참여가 저조하지만, 지치지 않고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10년이 남긴 것 그럼에도 ‘(사)나비야사랑해’의 근본은 여전히 동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완성하는 것은 새 가족이다. 지금 13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 완성을 기다리며 ‘(사)나비야사랑해’의 보호소에 있다.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평균 연령은 비교적 높다. 제2 보호소 고양이의 평균 연령 6세, 어렵지 않게 8세나 10세의 고양이도 찾아볼 수 있다. 털에서 기름이 빠져나가 푸석한 아이, 구내염 때문에 입가가 침으로 축축한 아이, 재채기를 하는 아이 등, 서로 데려가고 싶을 만한 조건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친구들이야말로 안정적인 환경과 집중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절반을 넘어섰고,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친 고양이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예전이라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이런 중년에 접어든 고양이들도 입양을 간다고 한다. 어디서 천사 같은 사람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활력 넘치는 아기 고양이가 부담스럽거나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성묘를 선호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보호소와 구조 활동가가 나이를 먹고 고양이들도 세월을 거치듯, 반려인과 반려동물 문화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주연 씨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한 일이 너무 작고 하찮았던 것 같다 했지만, 주연 씨처럼 그 시간을 버티며 아픈 동물을 안아들어 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변화가 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늘도 어디인가에서는 동물 유기나 학대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돌은 느리게 굴러가고 있다. 10년 후에는 좀 더 나은 곳에서 우리 모두 만날 수 있기를. 지치지 않게 서로를 다독이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더 가까이서 만나는 ‘나비야사랑해’ cafe.naver.com/kittenshelter? CREDIT글 사진 김바다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1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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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 시장의 장난꾸러기 삼남매 달님이,…
- 묘생 2막수산 시장의 장난꾸러기 삼남매달님이, 호동이, 행복이 세로로 두 뼘, 가로로 1미터쯤 되는 수산 시장의 작은 평상. 그곳은 상인이 잠깐씩 앉는 휴식처이자 생후 2개월 된 달님이, 호동이, 행복이의 놀이터, 그리고 집이었다. 쓰레기장에서 들리는 가냘픈 소리 이제 노량진 시장을 떠올리며 정겨운 비린내와 온기 섞인 습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래 전 기억은 현대식으로 건설된 대형 도매 시장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45년 만에 들어선 신축 건물이란다. 9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온 전통 재래시장, 우리 기억 속의 고즈넉한 점포들은 수협 측의 현대화 사업에 의해 하나둘씩 건물 내로 들어가고 있다. 더 깨끗한 시설, 안전한 수산물로 소비자를 맞겠다는 수협의 의지지만 아직 적지 않은 점포들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여기서 그들의 갈등을 짚으려는 건 아니다. 다만 달님이, 호동이, 행복이는 길 위를 지키던 상인의 손에 구조됐다. 모든 점포가 일찌감치 신식 건물 내로 들어갔다면, 그리고 구 점포들이 정리됐다면 아이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까.? 상인은 어느 아침 고가 주차장 아래 작은 쓰레기장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작고 가냘픈 소리에 미심쩍어 다가가니 고양이는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는 확신은 서너 시간 뒤 그를 다시 같은 곳으로 이끌었다. 더 작고 약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갓 걸음마를 뗀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상인의 손에 구조됐다. 고양이는 눈병이 심해 한 쪽 눈을 아예 뜨지 못하고 있었다. 어미가 있는 아이라 믿고 지나칠 수도 있었으나, 반쪽 시야에 잘 먹지 못해 비틀거리는 작은 생명을 내버려두고 갈 만큼 상인은 무심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길고양이 중 보기 드문 샴 종이었다. 물론 상인은 고양이의 품종 따윈 알지 못한다. 구조하자마자 한 일은 동물병원에서 안약을 처방받아 아이의 눈에 넣어준 일이다. 어떤 이름들은 희망을 내포한다. 상인은 아이를 행복이라 불렀다. ? 모두가 행복할 순 없는 거리의 삶??행복이의 눈은 점점 호전되어 갔다. 엄청 잘 먹고 까부는 아기 고양이는 손님이 줄어가는 재래시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재롱둥이가 됐다. 행복이의 사연이 퍼지자 시장 근처에서 구조된 같은 또래의 길고양이 세 마리가 상인의 점포로 왔다. 행복이가 안과 치료를 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이 녀석들도 도와주라는 지인의 요청을 상인은 꿀꺽 받아들였다. 지인과 상인, 주변 사람들은 비슷한 체구와 질병을 갖고 있는 고양이들이 모두 한배에서 나았을 거라고 추측했다. 확실히 알 길은 없으나 정말 그런 것처럼 고양이들은 보자마자 작은 평상 위에서 레슬링에 돌입했다. 이후 온 고양이들은 햇님이, 달님이, 호동이라는 든든한 이름을 얻었는데 그 중 건강이 유독 좋지 못했던 햇님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머지않아 별님이 됐다. 갑자기 던져진 고양이의 더욱 갑작스런 죽음이었지만, 상인은 오랜 친구가 세상을 뜬 것처럼 깊이 슬퍼했다. 그래도 검은 고양이 달님이와 고등어 무늬의 호동이, 하늘색 눈의 행복이가 빠르게 건강을 되찾으며 상인의 마음을 달랬다. ? 시장에서 만난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책상만 한 평상 위에서 쉴 새 없이 달리고 구르며 운동량을 뽐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평상 한 쪽에 놓인 철장 안에서 서로의 몸을 베개 삼아 엉켜 잠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아직 눈병은 깔끔히 낫지 못했고, 셋 중 누군가의 귀에 들어온 진드기가 다른 아이들에게 옮겨 붙어 이따금 귀를 거칠게 긁긴 하지만 세 남매는 좁다는 투정 없이 하루 서너 번 주는 사료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그런데 이를 보는 상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대로 세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까. 커가는 아이들은 점점 공간이 비좁을 테고, 생계가 달린 점포 문제도 연일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상인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마다 입양의 뜻이 있는지 물었다. 넓고 쾌적한 곳에서 금방 멈추지 않고 오래 달리길 바라면서 말이다. 깊이 고민하는 사람까진 있었지만 실제 아이들을 입양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행복이의 입양, 그리고 남은 형제들??취재를 마친 후, 반려묘 입양을 고심하고 있었던 에디터는 상인과 논의 끝에 행복이를 입양했다. 에너지가 넘쳐 슬슬 평상 밖을 궁금해 하던 아이였다. 에디터의 집으로 건너 온 행복이는 가까이서 보니 더 말랐고 눈엔 부종이 있어 마치 경기를 치르고 난 권투 선수처럼 보였다. 어디서든 씩씩하라는 바람까지 더해 ‘알리’라는 새 이름을 붙여줬다. 병원 검사를 하니 귓속은 진드기 떼의 둥지였다. 귀 청소를 몇 차례 하고 구충제를 발라줬다. 글을 적는 지금까지도 집에서 가루약을 복용 중이다. 다행히 사료에 솔솔 뿌려주면 양념인 양 맛있게 먹어주고, 떼꾼했던 눈의 붓기는 거의 가라앉은 상태다. 그리고 아직 시장에 남아있는 달님이와 호동이. ‘매거진C’의 온라인 사이트 ‘펫찌’를 통해 알리의 남아 있는 형제들을 소개하며 입양 공고를 올렸다. 아직 적극적인 문의는 들어오진 않았다. 이 글을 독자들이 보는 즈음엔 달님이와 호동이에게도 좀 더 따뜻한 집이 생겼길 바라며, 혹여 입양을 바라는 독자가 있으면 아래의 이메일로 문의해 주시라. ? *달님이와 호동이 입양에 관심이 있다면 edit@petzzi.com CREDIT에디터 김기웅사진 곽성경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1 10: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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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묘 육성 육탄전 | 5화 오프라 윈프…
- 육묘 육성 육탄전5화 오프라 윈프리처럼 봄이 지나고 슬슬 초여름의 더위가 한차례씩 등짝을 후끈하게 달구던 정오였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에어컨을 사야겠다며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언니…… 카페 가던 고냥이가 어푸푸 어부 어부. 고으양이 아프 아프 다쳐서리. 새끼, 크헉 크흐윽 어떠…… 어떠해요~?” 학대 받은 고양이? 후배가 울먹이며 말하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번역해 보니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에 가끔 우유나 빵을 주던 새끼고양이가 있는데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죽게 생겼다며 어찌해야 하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난감했다. 내가 고양이 구조대도 아닌데 요즘은 주변에서 길냥이가 다치거나 버려진 것을 발견하면 대뜸 내게 전화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 그 흔한 동물 단체나 협회 등에 한 군데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저 반려묘를 키우는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조합 형태의 모임에 속해, 다친 고양이들을 발견하면 치료비로 쓰자고 한 달에 만 원 정도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의를 받으면 딱 잘라 거절하거나 외면하기가 어렵다. 모른 척하고 알아서 잘하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결국 택시를 타고 그 카페가 있는 곳으로 친구와 함께 달려갔다. 여러 증인들의 카더라 통신에 가까운 내용을 조합해 보면, 그 동네 주변에 길고양이를 증오하는 할머니가 있고 꽤 위협적인 태도로 고양이들을 학대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루머 속 할머니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쌍한 고양이는 발견 당시 얼굴과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거기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협업으로 코너에 몰린 녀석을 잡아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내 내 팔뚝과 손을 물어뜯고 발버둥을 쳤는데 다른 길고양이들과 달리 너무 사납고 겁에 질려 있어서 정말이지 심한 학대를 받은 것은 아닌가 안쓰러웠다.? 결국엔 또 우리 집 하지만 동물병원에 도착해 원장님의 소견을 들어 보니 고양이의 상처는 사악한 할머니의 만행도, 또 다른 누군가가 학대한 흔적도 아니었다. 큰 고양이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고 염증이 심해진 상태라고 했다. 길고양이의 천적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먹이가 귀한 도심에서 고양이들끼리의 영역싸움도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실명이 되진 않을 거란 진단을 받았고 그 길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시간 동안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고양이는 목소리가 다 쉬고 온 몸에서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퇴원 후 또 한 번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제보를 한 후배는 이 녀석을 맡을 수 없는 상태였다. 곧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철에 그냥 방사할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싫었다. 집엔 이미 네 마리의 고양이들이 있어 포화 상태였고 이렇게 순화가 안 된 녀석을 매일매일 간호할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불쌍하다고 구조는 하는데 그 다음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급하면 무조건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게 맞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 대책이 없다 싶어 화가 났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녀석이 우리 집 거실에 떡하니 똥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전쟁이었다. 수술 부위 소독을 위해 잡을 때마다 야생 그 자체인 녀석은 엄청난 반항을 했고 내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응급실과 외과에 두 번이나 뛰어가야 했고 그때 생긴 상처는 아직까지도 팔뚝과 허벅지에 길게 남아 있다. 다행히 녀석은 엄청난 식탐 덕분에 캔에 약을 섞어 줘도 잘 먹어서 빠르게 회복했다. 거의 다 나았기에 입양을 보낼까 했으나 성격이 너무 난폭하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해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수술을 받으러 갔는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작고 어린 녀석이 임신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중성화 수술이 진행된 상태였고 그동안의 의료 조치 때문에 그 미생의 새끼들은 태어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새끼가 새끼를 배고 있었다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여러 가지로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방사를 하려고 처음에 구조되었던 장소 근처에 갔으나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된 어린 고양이를 영역싸움으로 잔뼈 굵은 성묘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원망 대신 감사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이 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섯 번째 길냥이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임신과 폭행 그리고 유산까지…… 유명한 흑인 배우 ‘오프라 윈프리’가 떠올랐고 나중에 그 여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오프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프라는 여전히 사람을 경계하고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 빼고는 나를 아는 척도 안 하는데 최근엔 염치없는 태도 때문에 그냥 ‘염치’라고 부른다. 가끔 ‘염치야~’하고 부르면 모른 척 하다가 ‘오프라야~’하고 부를 땐 살짝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린다. 역시 웃기는 녀석이다. 오프라는 다른 고양이들과 장난을 치는 말괄량이가 되어 심하게 발랄하고 쾌활하게 살고 있다. 처음엔 이 녀석을 불쌍하다고 구조만 하고는 맡을 형편이 안 된다던 후배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오프라의 병원비를 모아 준 동네 길냥이 모임 친구들, 중성화 수술을 도와준 길고양이 구조 계의 대모, 새벽부터 물어뜯긴 상처를 정성스레 치료해 준 동네 외과 원장님과 간호사들까지 모두가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원망보다는 고마움의 눈물을 더 많이 흘린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고양이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끝내 외면할 수 없다면,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도움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고양이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염치’녀석은 여전히 고양이 친구들만 좋아하고 나는 그저 밥 나르는 아줌마일 뿐이다. 집에서 키우는 진정한 길고양이다. 그래도 가끔 내 침대로 올라와 은근슬쩍 궁둥이를 들이밀며 누울 때는 정말 사랑스럽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다섯 마리 고양이들과의 삶이 또 시작되었다. CREDIT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14 1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