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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30 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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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30 12: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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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26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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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25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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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NEWS | 2019-07-09 15: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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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2019-07-08 11: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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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2019-07-02 14: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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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 고양이, 레오
- 고양이를 만난 후 알게 된 사소한 것들 나의 첫 고양이, 레오 대학교 1학년, 어느 찌는 듯한 여름날 오후. 웽웽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지친 선풍기 바람을 가로막으며 누나가 다가왔다. 안 그래도 더운데 선풍기 바람 앞에서 머 뭇거리는 모습을 보니 귀찮은 뭔가 시킬 것 같은 느낌이 들 었으나 그냥 가만히 모른 척했다. 평소에도 필요한 것이 있 으면 이것저것 잘 시키면서 오늘은 뭘 말하려는 건지 사실 조금 걱정이 앞섰다. “사실, 말하려고 하던 게 있어.” “고양이 키워도 돼?” ‘음? 고양이? 돈 필요한 거 아니었어?’라는 속마음이 다소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응 고양이.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니가 싫어할 것 같았어.” “아니 난 괜찮아.” “진짜?” “응. 나도 좋아.”이 말의 대답이 평범한 인간에서 고양이 집사로서의 출발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렇게 ‘레오’라 불리는 네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니코틴, 알코올 그리고 고양이 중독대학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었다며 그동안 못해왔던 모든 것들을 하나둘씩 손대기 시작했다. 그 퀴퀴하고 맛없는 구름과자를 뻐끔대다 보니 어느새 주머니에서 빠지지 않는 기호품이 되었고 하나둘 맛보며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나돌아 다니며 알싸하고 맛있는 술들을 흥청망청 마셔댔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다음날엔 안 좋은 속을 부여잡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다시금 알코올이 나를 불러댔다. 이런 것들에 빠져있을 즈음에 ‘레오’가 어느새 내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야, 나 오늘 늦으니까 레오 밥 니가 줘야 해.” “아 왜!! 좀 많이 주고 가지!!” “니가 가깝잖아 - 그럼 내가 가리? 몰라 나 바쁘니까 끊는다.” 세상에, 이런 귀찮은 일이 따로 없었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자취방까지 15분 거리였다. 정말이지 그때 나도 좋다는 말을 왜 해서 이런 일을 자초한 걸까 하는 후회가 들 즈음에야 집에 도착한다. 덜컥 문소리에 달려 나오며 반기는 ‘레오’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오구오구, 형아 오길 기다렸어?” 야옹 하며 우는 레오를 쓰다듬고 사료가 들어있는 선반으로 다가간다. 밥을 주는 그 짧은 사이에 레오는 내 종아릴 빙글빙글 돌며 나에게 새하얀 털 뭉치를 안겨준다. 에고 테이프로 아침부터 열심히 뜯어냈는데 이게 뭐람. 늘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뭐 여하튼 이렇게 밥을 주기도 하고 감자도 캐면서 낚싯대로 놀아주기를 한 지 2년가량 되자 초보 집사는 겨우 탈출하게 된 것 같다. 이제 레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군대에 가야 할 때가 되었다. 평소와 같이 집에서 레오에게 손 인사하고 훈련소로 향했다. 정말 훈련소에 입소한 순간부터 잠자리 이불을 펴기까지의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웃기지만 훈련소 첫날의 유일한 기억은 잠자리 준비를 하던 중 침낭에 살짝 붙어있는 레오의 털이었다. 떼어도 떼어도 튀어나오는 털을 보고 레오가 생각났고 나도 모르게 그리워졌었다. 힘든 하루였는데도 술, 담배 생각보다 슬며시 다가와 팔베개 를 베는 그 따뜻한 온기가 살짝 고파졌다. 그런데 내 고양이 중독증세는 생각보다 심한 상태였다.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면 괜히 레오가 밥 달라며 바라보는 눈망울이 내 눈에 아른거렸고 바지춤에 겨울 칼바람이 스칠 때면 슬며시 다가와 비벼대는 그 작은 관심이 없어 괜스레 외로웠다. 게다가 선반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큰 소리가 날 때면 도망치고 숨어서 눈치 보는 레오의 아이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밤이 되면 팔을 베고 누워 새근새근 코를 골다 조심스레 반대쪽 손으로 쓰다듬으면 그르렁거리던 그 소리마저도 내 주변을 맴돌았다.그 외에도 앙증맞은 분홍색 젤리, 껌벅껌벅 이며 바라보든 파랗고도 노란 눈망울, 까끌까끌한 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들 알 것 같으니 이쯤 해두어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생각나니까. 괜히 또 그립다. 자꾸 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는 나쁜X처럼 레오가 그런 것 같다.어차피 넌 늦었어 분명 후회할 걸 뒤돌아 선 순간 부터 넌 날 그리워 하게 될거야. 넌 날 그리워 하게 될거야.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수 없어 태생인 걸. - 선우정아 [고양이]PS. 그런데 막상 첫 휴가 때 집에 가니 레오는 날 못 알아보더라. 너무해 ㅜㅜ 파블로프의 인간. 그리고 고양이어느덧 레오는 지금 12살이 되었고 나도 그만큼 늙었다. 레오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철저한 제한 급식 주의자로 울고 떼쓰고 보채도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한번은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서 급히 해야 할 것이 있어 잠깐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더니 ‘레오’는 키보드로 올라와 나의 손길을 보챘다.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나보다 하고 쓰다듬어주었더니 자연스레 내 손을 빠져나가 봉지를 핥으며 살살 내 눈치를 본다. “엄마, 얘 밥 안 줬어요?” “얘 두 시간 전에 먹었다.” “배고픈가?” “정 주고 싶으면 간식 주든가.” 그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움직이니 졸졸 따라온다. 내가 간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는 건 어찌 아는지 먼저 앞서간다. 왠지 내 생각을 읽고 움직인 것 같은 괘씸한 느낌이 들어 방향을 휙 하고 바꿔 냉장고로 향해 물만 마시고 다시 책상머리에 앉았다. 다시 키보드 앞에 앉으니 어김없이 다가와 애꿎은 키보드를 꾹꾹 눌러대다 봉지로 다가가 핥는다. 자세히 보니 씹는 것도 아니고 먹는 시늉을 하며 내 눈치를 살살 본다. 그래도 그 조그만 두 눈망울에 되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간식 주려다가 불현듯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때는 바야흐로 레오를 데려온 지 두 달이 지났을 때였는데, 초보 집사들에게는 레오가 하는 모든 것들은 관찰의 대상이었다. 밥은 모자라서 배고파하지는 않는지, 너무 좁은 집에서 답답해하진 않는지, 놀 거리가 부족해서 외롭진 않은지, 우리가 싫어서 피하며 도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렇다. 나의 손이 레오에게 잘못 닿으면 까마득한 어둠이 될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투명한 비닐을 씹고 있는 레오를 보았다. “누나!!! 얘 봉지 먹어!!!” ‘레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던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초비상사태로 선포하고 누나랑 나는 봉지와 레오의 사이를 갈라내고 대책회의를 했다. 이러다 집에 있는 모든 봉지를 다 뜯어먹는 거 아닌가? 그러다 아프면 어떡하지? 우린 걱정에 휩싸였다.“쟤가 지금 7.8킬로야… 제한 급식해야 하는데.” “그래도 누나, 이상한 거 먹어서 몸 상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그렇다고 자꾸 먹이면 안 된다고! 우선은 최대한 우리 제한 급식 해보자. 얘 더 살찌면 안 돼!” “난 봉지 먹어도 몰라.”다음날, 레오는 어김없이 봉지를 신나게 가지고 놀다 이내 깨물고 물어뜯어 버렸다. 우리는 먹는 양이 모자란 것으로 생각해서 조금 더 먹을 수 있도록 사료를 챙겨줬다. 그러나 씹고 뜯고 맛보는 행동이 이전보다 자주 보였고, 이런 사달이 나면 누나랑 나는 고민하다가 레오의 봉지 사랑을 어떻게든 떨쳐내고자 사료를 조금씩 더 챙겨줬다. 결국, 누나는 제한 급식을 포기했고, 레오는 당당하게 자율급식을 쟁취했다. 사실 제한 급식보다 자율급식을 하면 사료를 더욱 적게 먹을 것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린 글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이리하여 레오와 봉지의 애증 관계는 자연스럽게 없어졌고 사료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통에 몸무게는 8키로를 넘겨버렸다. 아직 한 살 조금 지날 때라 언제든 나는 젊은 레오가 살을 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장기하와 얼굴 들이 부릅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레오는 현재 6.8kg으로 다소 양호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배고프니 밥을 주세요’라는 신호가 아니라 먹을게 먹고 싶어 봉지를 핥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날 대상으로 시험을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앞에서 ‘봉지를 씹으면 조건반사처럼 먹을게 뙇’하고 나와주는 매직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다음에도 그리고 또 다음에도 날 타겟으로 잡았고, 언제나 먹을 걸 쟁취했다. 그렇게 레오에게 나는 호구 집사였다.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고양이의 종족특성을 따져볼 때 12살 레오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글을 쓰면서 무릎에 한기가 돌아 무릎담요를 찾아 덮었다. 레오가 슬며시 무릎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또아리를 튼다. 쓰다듬다가 이내 컴퓨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한기는 온데간데없다. 그르렁그르렁 모터소리를 내는 다소 가벼워진 6.8kg의 작은 코타츠가 제 몫을 하기 때문이다. 잠깐 움직여 잠을 깨운 게 되면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고양이 간식으로 손이 간다. 그래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겨울 동안은 뜨뜻하게 형의 무릎담요 해주다 여름엔 빼는 거다~ 레오야! 글 사진 이재민
- STORY | 2019-09-30 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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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중심 -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 …
- S H E L T E R 세상의 중심-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 - 한참을 걷고 또 걸어야 나오는 한산한 주택가의 이층집. 그곳의 한 층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린 한 쉼터가 있다. 대전에도 고양이 쉼터가 있어요 대한민국 중심을 자처하는 대전에는 매니저인 미연 씨와 부매니저인 선화 씨가 단단히 받치고 있는 ‘가온누리’라는 이름의 유기묘 쉼터가 있다. 유기묘 쉼터를 운영한다고 하면, 태생적으로 대단한 애묘인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사실 미연 씨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꺼리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밥을 챙긴 것은 쓰레기봉지를 뜯어 연명하는 삶이 딱했고, 밥을 주면 그런 행동이 덜하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실제 해보니 꽤 효과가 있어 그 일이 길어졌고, 시간이 정을 만들어냈다. 평소와 같았던 2013년 늦가을의 어느 날, 돌보던 고양이 둘이 보이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것들이라 더 애타게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동물보호소에 닿았다. 유기견 임시보호와 릴레이 이동봉사를 오래 해왔던 미연 씨에게 보호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문 안쪽, 고양이 장이 겹겹이 쌓인 곳에 발을 내딛으면서 그 모든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충격과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노견 넷을 부양하는 고양이무식자 캣맘. 찾던 아이 둘만 안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둘을 치료 후 안정시킨 뒤 제자리 방사하는 것으로 그 기억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둘은 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순화되어버린 뒤였다. 답이 나와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답을 선택해도 모두 틀릴 것 같기도 모두 옳을 것 같기도 했다. 안 해도 된다면 안 하고 싶었던 일, 그러나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시작하는 것으로 지독히 고민했지만, 결심 후 실행하고부터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쉼터가 문을 열고 6개월 만에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손을 들고 떠났지만, 보호소에서 두 고양이를 안고 나왔던 미연 씨의 발걸음은 지금까지 대전?세종?아산?천안을 비롯해 인근 군 단위의 동물보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단체나 쉼터를 크게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구조 역시 많이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2마리로 시작한 쉼터는 1년 만에 17마리가 되었고, 방이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수는 2배로 불어 30마리가 되었고, 다시 방 4개가 있는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했다. 이 기간 동안 미연 씨와 쉼터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구조활동가나 봉사자, 애호가 사이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후원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몸과 마음, 지갑까지 모두 바짝 마를 정도로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라고 미연 씨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래도 알음알음 찾아와서 손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1년 이상 된 정기 봉사자들과 부매니저인 선화 씨가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사양합니다 뱀과 싸우던 어린 고양이를 발견해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고양이 돌봄의 세계에 들어선 선화 씨는 현재 쉼터에 꼭 필요한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작은 봉사자였다. 가온누리 쉼터의 봉사자가 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정해진 시간과 요일에 쉼터로 와서 서너 시간 정도 걸리는 청소와 정리, 투약 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 일주일에 하루, 30일 중에 많아야 5일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실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라, 지원자는 많아야 1년에 3명 정도. 일주일을 봉사자로만 채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미연 씨와 선화 씨가 최소 하루씩을 맡는데, 두 사람이 이틀씩 맡을 때도 있다. 그래도 호기심 섞인 방문이나 일회성 봉사, 캣카페로 착각한 방문 요청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쉼터 아이들이 구경거리도 아닐뿐더러, 사람과 고양이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기 봉사자로 확정된 후에도 운영진과 함께 2차에 걸친 OT를 하며 고양이의 성격이나 특징, 시설물 등 여러 가지를 알려준다. 세상의 중심에서 너와 함께 미연 씨는 청주 거주민이다. 쉼터를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대전 거주민이라 스스로 원거리 이동을 자처한 것이 올해로 4년째 대전 출퇴근을 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부매니저 선화 씨는 주말 대부분을 쉼터에서 보낸다. 이렇게 일상의 큰 부분을 내놓고 있지만, 상근운영자가 있는 곳에 비하면 쉼터 관리나 고양이 돌봄이 부족하다. 쉼터 관리와 상근 운영자 이야기를 하던 중 미연 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숨을 고르고는 “저도 제 삶이 있어야죠.”라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쉼터 운영과 같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에 전심전력하기를 기대한다. 아니, 기대가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 역시 사람이고, 그들 역시 지치거나 소진될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처럼 일상과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유기동물이나 길 위의 생명들에 쉬이 측은지심을 가지면서도 구조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개개인은 모두 답을 가지고 있다. 집이 좁아서, 알러지가 있어서, 벌이가 적어서, 가족이 싫어해서, 고양이를 몰라서, 집의 반려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지금은 상황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쉼터 운영자와 활동가 역시 같은 상황에 있고,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나간다. 우리 모두가 직접 구조를 하거나 쉼터를 운영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버리지 않는 것, 동물을 구매하지 않는 것, 번식시키기 전에 그 자녀 세대와 그다음, 그 다음다음까지 유기되거나 도축되거나 학대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지 숙고해보는 것, 활동가나 쉼터를 후원하거나 그들의 물품을 구매하는 것, 동물권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임시보호자가 되어주는 것,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것, 입양글이나 후원글을 공유하거나 홍보해주는 것, 쉼터나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 등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영향력은 클 수 있다. 2019년 현재, 가온누리 쉼터가 관리하는 아이들은 총 40여 마리. 15마리는 장기 임보처에 나가 있고, 30여 마리가 쉼터에 머물고 있다. 구조되는 것과 입양 가는 것의 비율은 5대 1정도다. 소수의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은 물론 쉼터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만, 직접 재료를 사서 가공하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것으로도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한다. 구조나 입양 활동은 물론이고 각종 회계 관련 자료도 게시판에 공지하여 회원들과 나눈다. 그리고 구조와 병원 이동, 쉼터 관리, 고양이 케어라는 커다란 부분이 또 있다. 이 모든 일들 사이에 두 사람의 생업과 삶이 있다. 그들이 생업과 삶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정기 봉사자와 후원자, 서포터즈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이곳,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중심에 쉼터와 구조를 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 삶의 작은 부분을 나눠주어도 좋지 않을까?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https://cafe.naver.com/lovedogncat CREDIT글 김바다사진 가온누리 고양이 강선화 제공
- STORY | 2019-09-30 12: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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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양이를 그리다
- 아 틀 리 에 의 고 양 이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양이를 그리다 화가 김규희 화가 김규희의 작업실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보통 작업실에 고양이가 있다면 작가와 함께 출근한 집고양이이거나 동네 식객 고양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가 고양이와 함께하는 사연은 좀 특별하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한 독립공간으로 작업실을 구한 탓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화가에겐 “고양이와 자기만의 방”이 절실했다. 모냐의 형제자매 고양이들(왼쪽)과 모냐, 멀로의 단독 초상화. 김규희에겐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는 늘 동물들이 있었고, 그런 고양이들을 활달한 필치로 그려내는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레 애묘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반대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세월이 길어지자, 고민 끝에 고양이와 함께 지낼 작업실을 구했다. 입지를 검토할 때도 ‘창밖을 내려다볼 수 있고 동물병원이 가까운 공간’을 1순위로 정할 만큼 고양이 위주로 얻은 작업실이었다. 그러나 입양은 쉽지 않았다. 2015년 초 작업실부터 열고 입양신청서를 여러 통 써서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때부터 작전을 바꾸었다. 집이 아닌 작업실이니, 고양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그 진심에 마음을 열어준 분이 첫째 멀로의 전 반려인이었다. 그분은 고양이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 ‘멀로’라고 지어주었단다. 따끈한 온열 소파에 껴안고 누운 멀로와 모냐의 다정한 모습. 모냐, 멀로와 함께한 김규희 작가의 자화상. 임보냥이 멀로와 길고양이 모냐를 가족으로 맞이하다 임보로 처음 인연을 맺었던 페르시안 친칠라 멀로는 처음부터 낯가림이 없었다.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작업실을 구석구석 탐색했다. ‘음, 여기가 앞으로 살 곳인가?’ 생각하는 듯했다. 컴퓨터를 쓸 때면 키보드 옆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화구 곁에 앉아 계속 쳐다보곤 했다. 전 반려인도 멀로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입양에 동의해줬다.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있지만, 퇴근하면 혼자 남을 멀로가 눈에 밟혀 데려온 동생이 모냐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던 삼색고양이 복길이를 떠올리며, 꼭 삼색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멀로의 이름이 그랬듯, ‘뭐냐’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한 것이 둘째의 이름이 되었다. 생후 2개월 때 처음 온 모냐는 멀로가 친오빠인 양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엔 하악거리던 멀로도 금세 마음을 열었다. 닷새째 되던 날 출근하며 보니, 모냐가 멀로의 배에 기대어 편안히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둘의 입양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개인전 <묘념묘상>을 준비하다가, 그림책 <가족이 된 고양이 모냐와 멀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하면 둘만 있을 게 걱정되어 웹캠을 설치하고 집에서도 때때로 지켜본다. 처음엔 목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어 스피커에 대고 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둘이 당황하며 그를 찾는 모습이 마음 쓰여, 요즘은 부르지는 않고 눈과 마음에 담기만 한다. 보고 있어도 그립고, 못 보면 더 생각나는 고양이들을 수시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림’이란 말의 어원이 그리움에서 나온 거라더군요. 전 항상 고양이가 그리워요. 지나간 고양이, 함께하는 고양이…. 너무 아름답고, 그리워서 저도 모르게 자꾸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해외 고양이 명소에서 마주친 공존의 풍경 고양이로 소문난 해외 여행지를 짬짬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육손 고양이(발가락이 6개인 다지증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헤밍웨이 하우스, 애묘의 나라로 유명한 터키, 일본의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등지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기억은 고스란히 풍경화로 남았다. 헤밍웨이 하우스에선 고양이들이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여 육손인 줄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노시마에선 둘째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애교 많은 길고양이를 만나러 다녔다. 어렸을 때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둘째 아들은,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세상 모든 고양이가 좋아졌노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길고양이와 사람들의 따뜻한 공존을 볼 수 있었던 터키는 그에게 잊지 못할 나라다. “오래전에 동생이 인터넷으로 전생 테스트를 해봤대요. ‘언니는 전생에 터키의 길고양이였대’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늘 터키 길고양이가 제 맘속에 있었죠.”그는 “모두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삶을 터키에서 보았다”고 했다. 관광지 매표소, 심지어 가로등 밑에도 정갈하게 준비된 사료와 물이 있었다. 터키인이 한국인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즐겨 쓰는데, 동물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는가 싶었단다. 터키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그냥 산책자 같았다. 사람을 꺼리지도 피하지도 않고, 제 갈 길을 가거나 앉아서 쉬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사인. 깃털로 고양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정겹다. ‘고바우 영감’과 고양이 작가, 부녀의 2인전 그리움과 애틋함, 반가움을 담은 김규희의 고양이 그림은 수묵화와 수채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밑그림 없이 낙서하듯 자유롭게 그리고 싶을 때, 빠른 시간에 그릴 수 있어서 좋단다. 가끔은 고양이의 털을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보드라운 퍼 질감의 천을 캔버스에 콜라주하기도 한다. 2018년 5월 광화랑에서 열린 <김성환?김규희 2인전-고바우 작가와 고양이 작가의 고양이 작품전>에서 선보인 고흐의 그림이 그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고흐에게 고양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그림으로 풀어냈는데, 언젠가 헤밍웨이나 프레디 머큐리 등 명사들이 사랑한 고양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고양이 입장에서 반려인을 바라본 시점으로 묘사하게 될 거라고 한다. 특히 작년에 열린 2인전은 시사만평 <고바우 영감> 작가로 유명한 아버지와 처음 함께한 전시라 더욱 뜻깊다. 원래 <애묘유전(愛猫遺傳)>이란 전시명을 쓰려 했을 만큼, 부녀간에 이어져온 고양이 사랑을 담뿍 담은 전시다. “아버지가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셔서,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을 발견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꽁냥꽁냥하며 말을 거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전시에 소개한 그림들은 전부 저희 집에서 키웠던 아이들이죠. 주로 널브러져 자는 고양이들을 수묵으로 그리셨어요. 50년간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셨지만 회화 작업도 꾸준히 하셨는데, 11번의 개인전 모두 회화 작업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마감 스트레스를 회화 작업으로 푸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때론 묵직한 풍경화로, 때로는 낙서처럼 가벼운 그림으로, 가끔 종이컵이나 빈 과자 상자, 오래된 인형 등을 재활용해 만든 수공예품으로 고양이를 그리거나 만드는 김규희 작가. 그는 잔잔한 위로와 만족을 주는 그림책이나, 고양이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수필집을 써보고 싶다고 전했다. 기회가 된다면 평소 좋아했던 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사건 사고 많은 이 세상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하는 잔잔한 그림을 널리 퍼트리고 싶어요. 고양이의 고롱고롱 소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사람만 아는 조용한 울림으로, 온기를 나눠주는 위로 같은 그림을요.” CREDIT글·사진 고경원 자료협조 김규희
- STORY | 2019-09-26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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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
- 추운 밤, 따뜻한 일곱 고양이 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 엄마, 우리 어디 가요?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봄이요?그래. 그곳은 배고픔이 없는 아주 따뜻한 곳이란다. 엄마, 나 배고파요.아가 조금만 참으렴.엄마, 이 고개만 넘어가면 봄이 나오나요?그래. 아가 조금만 참으렴... 엄마, 빨리와요!아가, 먼저 배를 타려무나!나쁜 자동차! 나쁜 사람들!아가, 울지 말렴! 엄마가 곧 따라갈게. 엄마, 여기는 따뜻해요.이곳이 봄인가요?엄마, 어서 일어나세요. 인간, 우리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거라비 오던 어느 날, 우체국 택배 박스 안에서 삐약 거리고 있던 작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늘 어딘가로 정처 없이 날아갔다가 푹 꺼진 가로등 그늘 속으로 숨고만 싶은 제 마음에 그 작은 고양이는 존재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그런 존재... 제가 어둠이라면 고양이는 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그림에는 늘 고양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 동화 속에는 아픈 고양이, 외로운 고양이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들의 과거일 뿐이겠죠.퇴근길,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달님, 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고양이와 함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고양이와 함께 하는 그날까지 고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세요.” CREDIT글·그림 수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9-25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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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한 도구 vs 인간의 권리' 새의 접근을 예방하는 스파이크
- 안티 버드 스파이크(Anti Bird Spike)라고 아시나요? 이 날카로운 가시 바늘은 새가 둥지를 틀거나 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죠. 사람들은 이 장치를 주로 난간이나 담벼락에 설치해 새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최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카툼바에서 이 도구에 대한 윤리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리 한가운데 안티 버드 스파이크 여러 개가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앵무새 한 마리가 건물 창가에 앚아있었습니다. 앵무새는 화가 난듯 난간에 설치된 스파이크를 하나하나 거칠게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던 시민 한 명이 이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아 SNS에 올렸고, 영상을 본 사람들은 대체로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동물의 권리를 잔인하게 훼손하는 도구'라는 의견과 '사람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등의 의견으로 나뉘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죠. 에디터는 새똥이나 소음으로 고생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스파이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Credit에디터출처 Bored Panda
- NEWS | 2019-07-09 15: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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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왜 버려졌을까요?' 보호소 직원들도 눈물 흘렸다
- 해밀턴 카운티에 있는 동물보호소의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자신이 왜 버려졌는지 한참을 고민하는 듯한 슬픈 개의 사진이었죠. 녀석의 이름은 리터. 리터의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리터의 가족은 개인적인 사유로 리터를 더는 돌볼 수가 없다며 보호소에 녀석을 맡기고 갔습니다. 리터는 꼬리를 말고 불안한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보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죠. 보호자가 떠나자 리터는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깨달은 듯 모든 걸 포기하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리터가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동물보호소 직원들은 리터가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리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리터를 돌보던 한 보호소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개들은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어요. 근데 리터는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슬퍼했어요. 리터를 보는 직원들이 전부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거든요." 리터에게 가족을 찾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보호소는 페이스북에 주인에게 버려진 자신을 자책하는 리터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리터의 사진은 순식간에 3천 번 이상 공유되었고, 보호소는 얼마 안 되어 리터를 입양하고 싶다는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소피 씨는 리터의 사진을 보자마자 '녀석을 평생 돌봐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반려견을 입양하기 위해 평소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던 사람으로 보호소의 서류심사를 무난하게 합격하였죠.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리터가 이전 주인을 잊지 못하는 걸 아닐까. 나를 거부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호소로 찾아간 소피 씨는 조심스럽게 리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 리터는 소피 씨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고 눈동자를 굴려 소피 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소피 씨는 리터를 꼬옥 안으며 보호소 관계자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바로 입양 서류를 작성할게요."? 소피 씨는 리터를 걱정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소감을 밝혔습니다. "소피가 남은 날 동안 항상 행복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제 모든 걸 쏟아부을 거예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울렸던 리터의 슬픈 표정이 하루빨리 밝은 모습으로 바뀌길 바라며, 많은 사람이 걱정했던 만큼 더욱 행복한 삶을 살기를 응원합니다! Credit에디터 이제원출처 The Dodo?
- NEWS | 2019-07-08 11: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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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을 내요! 버지니아의 아기 고양이 '에스미'
- 버지니아에서 발견된 작은 아기 고양이 에스미는 태어나자마자 어미 고양이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너무 여리고 약한 녀석을 어미 고양이가 거절한 것이죠. 버지니아 알링턴 지역 동물구조대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에스미를 곧장 가까운 고양이 전문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수의사 엘렌 씨는 에스미의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따뜻하고 아늑한 인큐베이터에 눕힌 후, 녀석의 곁을 24시간 지키며 튜브로 영양분을 보충해주었습니다. 에스미가 살아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엘렌 씨가 할 수 있는 건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수밖에 없었죠. 정성이 통한 걸까요. 오랜 보살핌 끝에 에스미가 작은 눈을 가까스로 뜨고는 우렁차게 울어댔습니다. 엘렌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배고프다고 외치는 힘찬 목소리네요! 호호!" 조금씩 건강해진 에스미는 인큐베이터를 떠나 엘렌 씨의 어깨로 자리를 옮겨갔습니다. 인큐베이터보다 전망이 좋아 보였던 것이죠! 엘렌 씨는 에스미를 데리고 집과 직장을 오가며 에스미와 하루를 온전히 공유했습니다. 에스미는 집에 있을 땐 사나운 맹수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냥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는 엘렌 씨의 어깨 위에서 낮잠을 자죠. 잠에서 깨면 엘렌 씨가 흔드는 고양이 낚싯대 장난감을 따라 앞발을 파파팍! 흔들었습니다. 엘렌 씨는 에스미가 건강해졌을 때, 에스미와 사정이 비슷한 아기 고양이 모르트를 추가로 돌보았습니다. 물론, 모르트도 에스미 선배님의 가르침에 따라 용맹하고 건강한 고양이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에스미와 모르트는 말랑말랑한 냥냥펀치를 힘차게 주고받으며 힘자랑을 하고 있죠. 엘렌 씨는 두 고양이를 보며 외쳤습니다. "이제 비실거리던 아기 고양이들은 없어요. 저 에너지 넘치는 고양이들을 보세요!" CREDIT에디터 이제원출처 LOVE MEOW?
- NEWS | 2019-07-02 14:3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