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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30 12: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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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30 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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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30 12: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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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26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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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9-25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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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6-2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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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9-06-17 12: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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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에서도 기다려요, 따스한 한국의 …
- 스 위 스 에 사 는 고 양 이 스위스에서도 기다려요, 따스한 한국의 봄 1월, 한국의 길고양이 풍경 추웠던 1월, 3주가량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의 찬바람은 참으로 매서웠다. 오자마자 된통 감기에 걸려 단단히 고생했다. “한국 너무 추워!”하고 외치는 나에게 사람들은 스위스가 한국보다 더 춥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스위스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한국에서 영하 13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지속할 동안, 스위스의 기온은 영상을 웃돌았다. 스위스의 친구들에게 “지금 한국은 영하 13도야.”라고 말하면 한국이 그렇게 추운 나라였냐며 놀랄 정도였다. 난 스위스에서 가벼운 코트만 걸치고 출발했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해 공항 밖을 나서자마자 오들오들 떨며 두꺼운 겉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이렇게 추운 한국의 겨울 거리에서 나의 마음을 무척 시리게 만드는 풍경이 있었다. 바로 도시의 길고양이들이었다. 두툼한 겉옷에 목도리를 두르고 꽁꽁 싸매도 틈새를 파고드는 한기가 느껴지는데, 길에 사는 아이들은 털옷 하나만 입고 이 추운 한국의 겨울을 어떻게 나는 것일까 싶었다. 먹을 것도, 신선하고 깨끗한 물도 찾기 어려운 도심에서 만난 작은 길고양이는 앙상하고 비쩍 말라 있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스위스에 사는 길고양이들 스위스에서도 길 위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대부분은 주인이 있는 산책 고양이들이다. 언제든지 돌아갈 집 있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먹이가 있다. 스위스 동물보호협회가 201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스위스 인구의 30%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며 그중에 무려 70%가 자유롭게 외출하는 산책 고양이들이라고 한다. 한국에 살다가 처음 스위스에 와서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 한 가운데 길게 드러누워 한가로이 해를 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을 경계하거나 도망가지도 않았고, 털에서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라고 보기에는 잘 관리된 티가 났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주인이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우는 고양이라는 남편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산책을 하는 고양이라니! 한국에서 온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물론 스위스에 사는 길고양이라고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이거나 길을 잃어 실종되는 고양이들도 많다. 매년 1만 마리가량의 고양이들이 스위스에서 실종된다고 한다. 나와 남편이 다니는 동네 동물병원에서도 잃어버린 고양이들을 애타게 찾는 공고가 붙어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스위스에서는 잃어버린 고양이들을 위해 마이크로 칩 삽입을 장려하고 있다.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어 있으면, 경찰이나 수의사 혹은 보호소에서 마이크로 칩 리더기를 통해 길고양이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려요, 따스한 한국의 봄 우리가 키우는 남매 고양이 노아와 폼폼은 따뜻한 5월에 스위스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 생애 첫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매서운 추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집 고양이의 삶을 살아간 지 어느덧 8개월째다. 요즘 스위스는 매일 눈이 내리는데, 노아와 폼폼에게는 즐거운 창밖 구경거리가 되어주는 듯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엄마의 나라 한국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힘겨운 삶을 알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복 받은 삶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다. 오늘도 한가로이 창가에 놓인 캣타워에 앉아 눈이 소복이 쌓인 스위스 풍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한국에서 본 비쩍 마른 길고양이의 슬퍼 보였던 눈과는 참으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빨리 한국의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기를, 잔뜩 웅크린 길고양이들에게 따스한 봄이 찾아오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글 사진 이지혜??
- STORY | 2019-09-30 12: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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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 고양이, 레오
- 고양이를 만난 후 알게 된 사소한 것들 나의 첫 고양이, 레오 대학교 1학년, 어느 찌는 듯한 여름날 오후. 웽웽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지친 선풍기 바람을 가로막으며 누나가 다가왔다. 안 그래도 더운데 선풍기 바람 앞에서 머 뭇거리는 모습을 보니 귀찮은 뭔가 시킬 것 같은 느낌이 들 었으나 그냥 가만히 모른 척했다. 평소에도 필요한 것이 있 으면 이것저것 잘 시키면서 오늘은 뭘 말하려는 건지 사실 조금 걱정이 앞섰다. “사실, 말하려고 하던 게 있어.” “고양이 키워도 돼?” ‘음? 고양이? 돈 필요한 거 아니었어?’라는 속마음이 다소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응 고양이.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니가 싫어할 것 같았어.” “아니 난 괜찮아.” “진짜?” “응. 나도 좋아.”이 말의 대답이 평범한 인간에서 고양이 집사로서의 출발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렇게 ‘레오’라 불리는 네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니코틴, 알코올 그리고 고양이 중독대학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었다며 그동안 못해왔던 모든 것들을 하나둘씩 손대기 시작했다. 그 퀴퀴하고 맛없는 구름과자를 뻐끔대다 보니 어느새 주머니에서 빠지지 않는 기호품이 되었고 하나둘 맛보며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나돌아 다니며 알싸하고 맛있는 술들을 흥청망청 마셔댔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다음날엔 안 좋은 속을 부여잡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다시금 알코올이 나를 불러댔다. 이런 것들에 빠져있을 즈음에 ‘레오’가 어느새 내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야, 나 오늘 늦으니까 레오 밥 니가 줘야 해.” “아 왜!! 좀 많이 주고 가지!!” “니가 가깝잖아 - 그럼 내가 가리? 몰라 나 바쁘니까 끊는다.” 세상에, 이런 귀찮은 일이 따로 없었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자취방까지 15분 거리였다. 정말이지 그때 나도 좋다는 말을 왜 해서 이런 일을 자초한 걸까 하는 후회가 들 즈음에야 집에 도착한다. 덜컥 문소리에 달려 나오며 반기는 ‘레오’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오구오구, 형아 오길 기다렸어?” 야옹 하며 우는 레오를 쓰다듬고 사료가 들어있는 선반으로 다가간다. 밥을 주는 그 짧은 사이에 레오는 내 종아릴 빙글빙글 돌며 나에게 새하얀 털 뭉치를 안겨준다. 에고 테이프로 아침부터 열심히 뜯어냈는데 이게 뭐람. 늘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뭐 여하튼 이렇게 밥을 주기도 하고 감자도 캐면서 낚싯대로 놀아주기를 한 지 2년가량 되자 초보 집사는 겨우 탈출하게 된 것 같다. 이제 레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군대에 가야 할 때가 되었다. 평소와 같이 집에서 레오에게 손 인사하고 훈련소로 향했다. 정말 훈련소에 입소한 순간부터 잠자리 이불을 펴기까지의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웃기지만 훈련소 첫날의 유일한 기억은 잠자리 준비를 하던 중 침낭에 살짝 붙어있는 레오의 털이었다. 떼어도 떼어도 튀어나오는 털을 보고 레오가 생각났고 나도 모르게 그리워졌었다. 힘든 하루였는데도 술, 담배 생각보다 슬며시 다가와 팔베개 를 베는 그 따뜻한 온기가 살짝 고파졌다. 그런데 내 고양이 중독증세는 생각보다 심한 상태였다.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면 괜히 레오가 밥 달라며 바라보는 눈망울이 내 눈에 아른거렸고 바지춤에 겨울 칼바람이 스칠 때면 슬며시 다가와 비벼대는 그 작은 관심이 없어 괜스레 외로웠다. 게다가 선반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큰 소리가 날 때면 도망치고 숨어서 눈치 보는 레오의 아이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밤이 되면 팔을 베고 누워 새근새근 코를 골다 조심스레 반대쪽 손으로 쓰다듬으면 그르렁거리던 그 소리마저도 내 주변을 맴돌았다.그 외에도 앙증맞은 분홍색 젤리, 껌벅껌벅 이며 바라보든 파랗고도 노란 눈망울, 까끌까끌한 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들 알 것 같으니 이쯤 해두어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생각나니까. 괜히 또 그립다. 자꾸 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는 나쁜X처럼 레오가 그런 것 같다.어차피 넌 늦었어 분명 후회할 걸 뒤돌아 선 순간 부터 넌 날 그리워 하게 될거야. 넌 날 그리워 하게 될거야.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수 없어 태생인 걸. - 선우정아 [고양이]PS. 그런데 막상 첫 휴가 때 집에 가니 레오는 날 못 알아보더라. 너무해 ㅜㅜ 파블로프의 인간. 그리고 고양이어느덧 레오는 지금 12살이 되었고 나도 그만큼 늙었다. 레오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철저한 제한 급식 주의자로 울고 떼쓰고 보채도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한번은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서 급히 해야 할 것이 있어 잠깐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더니 ‘레오’는 키보드로 올라와 나의 손길을 보챘다.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나보다 하고 쓰다듬어주었더니 자연스레 내 손을 빠져나가 봉지를 핥으며 살살 내 눈치를 본다. “엄마, 얘 밥 안 줬어요?” “얘 두 시간 전에 먹었다.” “배고픈가?” “정 주고 싶으면 간식 주든가.” 그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움직이니 졸졸 따라온다. 내가 간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는 건 어찌 아는지 먼저 앞서간다. 왠지 내 생각을 읽고 움직인 것 같은 괘씸한 느낌이 들어 방향을 휙 하고 바꿔 냉장고로 향해 물만 마시고 다시 책상머리에 앉았다. 다시 키보드 앞에 앉으니 어김없이 다가와 애꿎은 키보드를 꾹꾹 눌러대다 봉지로 다가가 핥는다. 자세히 보니 씹는 것도 아니고 먹는 시늉을 하며 내 눈치를 살살 본다. 그래도 그 조그만 두 눈망울에 되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간식 주려다가 불현듯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때는 바야흐로 레오를 데려온 지 두 달이 지났을 때였는데, 초보 집사들에게는 레오가 하는 모든 것들은 관찰의 대상이었다. 밥은 모자라서 배고파하지는 않는지, 너무 좁은 집에서 답답해하진 않는지, 놀 거리가 부족해서 외롭진 않은지, 우리가 싫어서 피하며 도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렇다. 나의 손이 레오에게 잘못 닿으면 까마득한 어둠이 될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투명한 비닐을 씹고 있는 레오를 보았다. “누나!!! 얘 봉지 먹어!!!” ‘레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던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초비상사태로 선포하고 누나랑 나는 봉지와 레오의 사이를 갈라내고 대책회의를 했다. 이러다 집에 있는 모든 봉지를 다 뜯어먹는 거 아닌가? 그러다 아프면 어떡하지? 우린 걱정에 휩싸였다.“쟤가 지금 7.8킬로야… 제한 급식해야 하는데.” “그래도 누나, 이상한 거 먹어서 몸 상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그렇다고 자꾸 먹이면 안 된다고! 우선은 최대한 우리 제한 급식 해보자. 얘 더 살찌면 안 돼!” “난 봉지 먹어도 몰라.”다음날, 레오는 어김없이 봉지를 신나게 가지고 놀다 이내 깨물고 물어뜯어 버렸다. 우리는 먹는 양이 모자란 것으로 생각해서 조금 더 먹을 수 있도록 사료를 챙겨줬다. 그러나 씹고 뜯고 맛보는 행동이 이전보다 자주 보였고, 이런 사달이 나면 누나랑 나는 고민하다가 레오의 봉지 사랑을 어떻게든 떨쳐내고자 사료를 조금씩 더 챙겨줬다. 결국, 누나는 제한 급식을 포기했고, 레오는 당당하게 자율급식을 쟁취했다. 사실 제한 급식보다 자율급식을 하면 사료를 더욱 적게 먹을 것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린 글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이리하여 레오와 봉지의 애증 관계는 자연스럽게 없어졌고 사료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통에 몸무게는 8키로를 넘겨버렸다. 아직 한 살 조금 지날 때라 언제든 나는 젊은 레오가 살을 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장기하와 얼굴 들이 부릅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레오는 현재 6.8kg으로 다소 양호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배고프니 밥을 주세요’라는 신호가 아니라 먹을게 먹고 싶어 봉지를 핥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날 대상으로 시험을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앞에서 ‘봉지를 씹으면 조건반사처럼 먹을게 뙇’하고 나와주는 매직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다음에도 그리고 또 다음에도 날 타겟으로 잡았고, 언제나 먹을 걸 쟁취했다. 그렇게 레오에게 나는 호구 집사였다.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고양이의 종족특성을 따져볼 때 12살 레오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글을 쓰면서 무릎에 한기가 돌아 무릎담요를 찾아 덮었다. 레오가 슬며시 무릎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또아리를 튼다. 쓰다듬다가 이내 컴퓨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한기는 온데간데없다. 그르렁그르렁 모터소리를 내는 다소 가벼워진 6.8kg의 작은 코타츠가 제 몫을 하기 때문이다. 잠깐 움직여 잠을 깨운 게 되면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고양이 간식으로 손이 간다. 그래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겨울 동안은 뜨뜻하게 형의 무릎담요 해주다 여름엔 빼는 거다~ 레오야! 글 사진 이재민
- STORY | 2019-09-30 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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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중심 -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 …
- S H E L T E R 세상의 중심-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 - 한참을 걷고 또 걸어야 나오는 한산한 주택가의 이층집. 그곳의 한 층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린 한 쉼터가 있다. 대전에도 고양이 쉼터가 있어요 대한민국 중심을 자처하는 대전에는 매니저인 미연 씨와 부매니저인 선화 씨가 단단히 받치고 있는 ‘가온누리’라는 이름의 유기묘 쉼터가 있다. 유기묘 쉼터를 운영한다고 하면, 태생적으로 대단한 애묘인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사실 미연 씨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꺼리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밥을 챙긴 것은 쓰레기봉지를 뜯어 연명하는 삶이 딱했고, 밥을 주면 그런 행동이 덜하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실제 해보니 꽤 효과가 있어 그 일이 길어졌고, 시간이 정을 만들어냈다. 평소와 같았던 2013년 늦가을의 어느 날, 돌보던 고양이 둘이 보이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것들이라 더 애타게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동물보호소에 닿았다. 유기견 임시보호와 릴레이 이동봉사를 오래 해왔던 미연 씨에게 보호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문 안쪽, 고양이 장이 겹겹이 쌓인 곳에 발을 내딛으면서 그 모든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충격과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노견 넷을 부양하는 고양이무식자 캣맘. 찾던 아이 둘만 안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둘을 치료 후 안정시킨 뒤 제자리 방사하는 것으로 그 기억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둘은 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순화되어버린 뒤였다. 답이 나와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답을 선택해도 모두 틀릴 것 같기도 모두 옳을 것 같기도 했다. 안 해도 된다면 안 하고 싶었던 일, 그러나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시작하는 것으로 지독히 고민했지만, 결심 후 실행하고부터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쉼터가 문을 열고 6개월 만에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손을 들고 떠났지만, 보호소에서 두 고양이를 안고 나왔던 미연 씨의 발걸음은 지금까지 대전?세종?아산?천안을 비롯해 인근 군 단위의 동물보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단체나 쉼터를 크게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구조 역시 많이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2마리로 시작한 쉼터는 1년 만에 17마리가 되었고, 방이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수는 2배로 불어 30마리가 되었고, 다시 방 4개가 있는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했다. 이 기간 동안 미연 씨와 쉼터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구조활동가나 봉사자, 애호가 사이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후원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몸과 마음, 지갑까지 모두 바짝 마를 정도로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라고 미연 씨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래도 알음알음 찾아와서 손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1년 이상 된 정기 봉사자들과 부매니저인 선화 씨가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사양합니다 뱀과 싸우던 어린 고양이를 발견해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고양이 돌봄의 세계에 들어선 선화 씨는 현재 쉼터에 꼭 필요한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작은 봉사자였다. 가온누리 쉼터의 봉사자가 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정해진 시간과 요일에 쉼터로 와서 서너 시간 정도 걸리는 청소와 정리, 투약 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 일주일에 하루, 30일 중에 많아야 5일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실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라, 지원자는 많아야 1년에 3명 정도. 일주일을 봉사자로만 채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미연 씨와 선화 씨가 최소 하루씩을 맡는데, 두 사람이 이틀씩 맡을 때도 있다. 그래도 호기심 섞인 방문이나 일회성 봉사, 캣카페로 착각한 방문 요청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쉼터 아이들이 구경거리도 아닐뿐더러, 사람과 고양이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기 봉사자로 확정된 후에도 운영진과 함께 2차에 걸친 OT를 하며 고양이의 성격이나 특징, 시설물 등 여러 가지를 알려준다. 세상의 중심에서 너와 함께 미연 씨는 청주 거주민이다. 쉼터를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대전 거주민이라 스스로 원거리 이동을 자처한 것이 올해로 4년째 대전 출퇴근을 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부매니저 선화 씨는 주말 대부분을 쉼터에서 보낸다. 이렇게 일상의 큰 부분을 내놓고 있지만, 상근운영자가 있는 곳에 비하면 쉼터 관리나 고양이 돌봄이 부족하다. 쉼터 관리와 상근 운영자 이야기를 하던 중 미연 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숨을 고르고는 “저도 제 삶이 있어야죠.”라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쉼터 운영과 같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에 전심전력하기를 기대한다. 아니, 기대가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 역시 사람이고, 그들 역시 지치거나 소진될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처럼 일상과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유기동물이나 길 위의 생명들에 쉬이 측은지심을 가지면서도 구조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개개인은 모두 답을 가지고 있다. 집이 좁아서, 알러지가 있어서, 벌이가 적어서, 가족이 싫어해서, 고양이를 몰라서, 집의 반려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지금은 상황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쉼터 운영자와 활동가 역시 같은 상황에 있고,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나간다. 우리 모두가 직접 구조를 하거나 쉼터를 운영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버리지 않는 것, 동물을 구매하지 않는 것, 번식시키기 전에 그 자녀 세대와 그다음, 그 다음다음까지 유기되거나 도축되거나 학대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지 숙고해보는 것, 활동가나 쉼터를 후원하거나 그들의 물품을 구매하는 것, 동물권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임시보호자가 되어주는 것,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것, 입양글이나 후원글을 공유하거나 홍보해주는 것, 쉼터나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 등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영향력은 클 수 있다. 2019년 현재, 가온누리 쉼터가 관리하는 아이들은 총 40여 마리. 15마리는 장기 임보처에 나가 있고, 30여 마리가 쉼터에 머물고 있다. 구조되는 것과 입양 가는 것의 비율은 5대 1정도다. 소수의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은 물론 쉼터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만, 직접 재료를 사서 가공하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것으로도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한다. 구조나 입양 활동은 물론이고 각종 회계 관련 자료도 게시판에 공지하여 회원들과 나눈다. 그리고 구조와 병원 이동, 쉼터 관리, 고양이 케어라는 커다란 부분이 또 있다. 이 모든 일들 사이에 두 사람의 생업과 삶이 있다. 그들이 생업과 삶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정기 봉사자와 후원자, 서포터즈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이곳,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중심에 쉼터와 구조를 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 삶의 작은 부분을 나눠주어도 좋지 않을까?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https://cafe.naver.com/lovedogncat CREDIT글 김바다사진 가온누리 고양이 강선화 제공
- STORY | 2019-09-30 12: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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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양이를 그리다
- 아 틀 리 에 의 고 양 이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고양이를 그리다 화가 김규희 화가 김규희의 작업실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보통 작업실에 고양이가 있다면 작가와 함께 출근한 집고양이이거나 동네 식객 고양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가 고양이와 함께하는 사연은 좀 특별하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한 독립공간으로 작업실을 구한 탓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화가에겐 “고양이와 자기만의 방”이 절실했다. 모냐의 형제자매 고양이들(왼쪽)과 모냐, 멀로의 단독 초상화. 김규희에겐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는 늘 동물들이 있었고, 그런 고양이들을 활달한 필치로 그려내는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레 애묘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반대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세월이 길어지자, 고민 끝에 고양이와 함께 지낼 작업실을 구했다. 입지를 검토할 때도 ‘창밖을 내려다볼 수 있고 동물병원이 가까운 공간’을 1순위로 정할 만큼 고양이 위주로 얻은 작업실이었다. 그러나 입양은 쉽지 않았다. 2015년 초 작업실부터 열고 입양신청서를 여러 통 써서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때부터 작전을 바꾸었다. 집이 아닌 작업실이니, 고양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그 진심에 마음을 열어준 분이 첫째 멀로의 전 반려인이었다. 그분은 고양이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 ‘멀로’라고 지어주었단다. 따끈한 온열 소파에 껴안고 누운 멀로와 모냐의 다정한 모습. 모냐, 멀로와 함께한 김규희 작가의 자화상. 임보냥이 멀로와 길고양이 모냐를 가족으로 맞이하다 임보로 처음 인연을 맺었던 페르시안 친칠라 멀로는 처음부터 낯가림이 없었다.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작업실을 구석구석 탐색했다. ‘음, 여기가 앞으로 살 곳인가?’ 생각하는 듯했다. 컴퓨터를 쓸 때면 키보드 옆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화구 곁에 앉아 계속 쳐다보곤 했다. 전 반려인도 멀로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입양에 동의해줬다.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있지만, 퇴근하면 혼자 남을 멀로가 눈에 밟혀 데려온 동생이 모냐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던 삼색고양이 복길이를 떠올리며, 꼭 삼색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멀로의 이름이 그랬듯, ‘뭐냐’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한 것이 둘째의 이름이 되었다. 생후 2개월 때 처음 온 모냐는 멀로가 친오빠인 양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엔 하악거리던 멀로도 금세 마음을 열었다. 닷새째 되던 날 출근하며 보니, 모냐가 멀로의 배에 기대어 편안히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둘의 입양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개인전 <묘념묘상>을 준비하다가, 그림책 <가족이 된 고양이 모냐와 멀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하면 둘만 있을 게 걱정되어 웹캠을 설치하고 집에서도 때때로 지켜본다. 처음엔 목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어 스피커에 대고 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둘이 당황하며 그를 찾는 모습이 마음 쓰여, 요즘은 부르지는 않고 눈과 마음에 담기만 한다. 보고 있어도 그립고, 못 보면 더 생각나는 고양이들을 수시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림’이란 말의 어원이 그리움에서 나온 거라더군요. 전 항상 고양이가 그리워요. 지나간 고양이, 함께하는 고양이…. 너무 아름답고, 그리워서 저도 모르게 자꾸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해외 고양이 명소에서 마주친 공존의 풍경 고양이로 소문난 해외 여행지를 짬짬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육손 고양이(발가락이 6개인 다지증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헤밍웨이 하우스, 애묘의 나라로 유명한 터키, 일본의 고양이 섬 아이노시마 등지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기억은 고스란히 풍경화로 남았다. 헤밍웨이 하우스에선 고양이들이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여 육손인 줄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노시마에선 둘째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애교 많은 길고양이를 만나러 다녔다. 어렸을 때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둘째 아들은,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세상 모든 고양이가 좋아졌노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길고양이와 사람들의 따뜻한 공존을 볼 수 있었던 터키는 그에게 잊지 못할 나라다. “오래전에 동생이 인터넷으로 전생 테스트를 해봤대요. ‘언니는 전생에 터키의 길고양이였대’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늘 터키 길고양이가 제 맘속에 있었죠.”그는 “모두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삶을 터키에서 보았다”고 했다. 관광지 매표소, 심지어 가로등 밑에도 정갈하게 준비된 사료와 물이 있었다. 터키인이 한국인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즐겨 쓰는데, 동물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는가 싶었단다. 터키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그냥 산책자 같았다. 사람을 꺼리지도 피하지도 않고, 제 갈 길을 가거나 앉아서 쉬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사인. 깃털로 고양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정겹다. ‘고바우 영감’과 고양이 작가, 부녀의 2인전 그리움과 애틋함, 반가움을 담은 김규희의 고양이 그림은 수묵화와 수채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밑그림 없이 낙서하듯 자유롭게 그리고 싶을 때, 빠른 시간에 그릴 수 있어서 좋단다. 가끔은 고양이의 털을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보드라운 퍼 질감의 천을 캔버스에 콜라주하기도 한다. 2018년 5월 광화랑에서 열린 <김성환?김규희 2인전-고바우 작가와 고양이 작가의 고양이 작품전>에서 선보인 고흐의 그림이 그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고흐에게 고양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그림으로 풀어냈는데, 언젠가 헤밍웨이나 프레디 머큐리 등 명사들이 사랑한 고양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고양이 입장에서 반려인을 바라본 시점으로 묘사하게 될 거라고 한다. 특히 작년에 열린 2인전은 시사만평 <고바우 영감> 작가로 유명한 아버지와 처음 함께한 전시라 더욱 뜻깊다. 원래 <애묘유전(愛猫遺傳)>이란 전시명을 쓰려 했을 만큼, 부녀간에 이어져온 고양이 사랑을 담뿍 담은 전시다. “아버지가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셔서,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을 발견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꽁냥꽁냥하며 말을 거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전시에 소개한 그림들은 전부 저희 집에서 키웠던 아이들이죠. 주로 널브러져 자는 고양이들을 수묵으로 그리셨어요. 50년간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셨지만 회화 작업도 꾸준히 하셨는데, 11번의 개인전 모두 회화 작업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마감 스트레스를 회화 작업으로 푸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때론 묵직한 풍경화로, 때로는 낙서처럼 가벼운 그림으로, 가끔 종이컵이나 빈 과자 상자, 오래된 인형 등을 재활용해 만든 수공예품으로 고양이를 그리거나 만드는 김규희 작가. 그는 잔잔한 위로와 만족을 주는 그림책이나, 고양이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수필집을 써보고 싶다고 전했다. 기회가 된다면 평소 좋아했던 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사건 사고 많은 이 세상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하는 잔잔한 그림을 널리 퍼트리고 싶어요. 고양이의 고롱고롱 소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사람만 아는 조용한 울림으로, 온기를 나눠주는 위로 같은 그림을요.” CREDIT글·사진 고경원 자료협조 김규희
- STORY | 2019-09-26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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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
- 추운 밤, 따뜻한 일곱 고양이 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 엄마, 우리 어디 가요?아가 우리는 봄을 찾으러 간단다.봄이요?그래. 그곳은 배고픔이 없는 아주 따뜻한 곳이란다. 엄마, 나 배고파요.아가 조금만 참으렴.엄마, 이 고개만 넘어가면 봄이 나오나요?그래. 아가 조금만 참으렴... 엄마, 빨리와요!아가, 먼저 배를 타려무나!나쁜 자동차! 나쁜 사람들!아가, 울지 말렴! 엄마가 곧 따라갈게. 엄마, 여기는 따뜻해요.이곳이 봄인가요?엄마, 어서 일어나세요. 인간, 우리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거라비 오던 어느 날, 우체국 택배 박스 안에서 삐약 거리고 있던 작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늘 어딘가로 정처 없이 날아갔다가 푹 꺼진 가로등 그늘 속으로 숨고만 싶은 제 마음에 그 작은 고양이는 존재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그런 존재... 제가 어둠이라면 고양이는 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그림에는 늘 고양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 동화 속에는 아픈 고양이, 외로운 고양이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들의 과거일 뿐이겠죠.퇴근길,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달님, 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고양이와 함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고양이와 함께 하는 그날까지 고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세요.” CREDIT글·그림 수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9-25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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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묘가정에서 공부해야만 할 것들?
- 들 들 자 매 와 숙 녀 네 집 다묘가정에서 공부해야만 할 것들? 해들이와 산들이. 두 자매 고양이는 새로운 집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해들이는 산들이 보다 3일 늦게 온 탓인지 아직 경계심이 많았다. 나는 평소 산들이를 안던 것처럼 해들이를 안았다가 왼쪽 팔뚝에 커다랗고 진한 세 줄의 흉터가 생겨버렸 다. ‘아빠가 해들이 발톱을 아직 안 깎아줬었네.’ 하고 혼잣말이 나왔다. 세 줄의 흉터는 해들이가 이제 잊어버리지 말라며 나에게 남겨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자율급식 보다는 제한급식을 두 자매 고양이에게 임시보호처에서 먹던 사료를 그대로 주었다.해들이가 접시에 코를 박고 먹어치우는 동안, 산들이는 뭔가 좀시큰둥해 보였다. 난 자매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해왔다. 자율급식으로 사료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만약 자율급식으로 사료를 급여했다면, 지금처럼 산들이가 식욕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들이가 남긴 사료를 해들이가 다 먹어치웠다면, 나는 빈 그릇만 보고 산들이가 밥을 잘 먹고 있다고 오판했을 것이다. 사료를 한 번에 많이 부어놓는 자율급식을 금지하는 이유다. 이것은 다묘를 동시에 입양하게 되면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사료 정량을 동시에 주고 녀석들이 사료를 얼마나 남겼는지 밥그릇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 다. 내가 몇 알을 주는지, 녀석들이 몇 알을 남겼는지 사료의 개수 까지 셀 필요는 없다. 그저 고양이들이 평소 먹던 양과 차이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녀석들이 남긴 사료량을 통해 건강이 좋지 않은 고양이를 가려낼 수가 있으며, 반려묘가 큰 병으로 이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산들이의 변은 묽은 상태를 유지했다. 녀석의 꽁무니를 쫓아다니 면서 똥꼬를 닦아주기 바빴지만 내 눈엔 여전히 너무 예쁜 아이 다. 산들이의 식욕과 건강을 위해, 녀석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부드러운 닭 안심살을 삶아서 잘게 잘라주 었더니, 산들이가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변은 더 물러졌다. 식욕부진과 설사로 산들이의 먹는 양이 줄어들다 보니 아무래도 부족한 영양을 더 보충해줘야 했다. 어미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버려진 상태에서 구조된 아이들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고양이용 초유를 구입하여 건사료에 부어줬다. 다행히 산들이가 너무 잘먹어주었다. 이제는 해들이와 먹는 양이 비슷해졌다. 그래 이제잘 먹고 잘 자라야 한다.? 예방 접종 전후로 알아야 할 것들 해들이는 1차 접종을 마친 후 입양했다. 하지만 엄지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산들이는 1kg도 되지 않아 접종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다니던 난 항상 초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밖에서 들어온 아빠가 병균을 산들이에게 옮길까 싶어서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소독제를 온몸에 뿌렸다. 물론 손을 닦는 것도 필수 다. 접종 전의 아기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면 이렇게 유난스러워야 한다.유난스러운 게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그래도 초유에 말아주는 건사료 덕분인지 산들이의 몸무게가 드디어 1kg을 넘겼다. 종합백신 예방접종을 하러 가까운 동물병원에 갔다. 고양이 종합 백신은 대부분 3가지가 기본으로 포함된다. 첫 번째로는 고양이 감기에 해당하는 고양이 전염성 비기관지염. 두 번째로는 사실 가장 무서운 전염병인 범백이라고 불리우는 범백혈구 감소증. 그리고 세 번째로 구내염 등 다양한 병을 유발하는 칼리시 바이러스다. 그 이외에 다양한 백신들이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범백에 걸린 고양이가 입원중이란다. 케이지를 꼬옥 안아들고 ‘다음에 올까요?’라고 물었다. 수의사는 나에게 ‘범백은 호흡기로는 전염되지 않으며, 범백에 걸린 고양이를 치료하는 담당 수의사와 스텝은 다른 고양이와 접촉이 철저히 금지돼요.’라며 안심시켰다. 일단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해들이와 산들이가 주사를 맞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녀석들을 안고 차로 돌아왔다. 차에서는 녀석들에게 바로 간식을 꺼내 주었 다. 아이들에게 병원이 좋은 곳으로 기억되어야 나중에 병원에 다시 와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기특한 녀석들 야옹 소리 한번 안 하고 주사를 잘맞아 주었다.? 집사는 반려묘의 평소 생활 패턴을 알아야 한다 고양이는 아프면 강아지처럼 끙끙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녀석들은 아프면 그저 숨어버리거나 움직임이 둔해진다. 나의 첫 고양이였던 보들이가 오래도록 아팠다 보니 버릇처럼 고양이를 관찰하게 됐다. 잠에서 깨어나면 먼저 기지개나 하품을 하고, 스크레쳐로 뚜벅뚜벅 걸어가 긁는다. 그리고 그루밍을 하거나 먹을 걸 달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만약 이 중에 단 하나만 빠져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산들이가 웅크린 자세로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소와 달리 움직임이 둔했다. 이때 집사가 해야 할 일은 체온을 측정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정상체온은 38도에서 39도 사이다. 39.5도는 미열, 40도는 고열에 해당한다. 산들이의 체온은 39.5도 미열. 이때부터는 그무섭다는 범백이 의심스러웠다. 범백은 설사를 동반한다. 일단 고양이 화장실부터 뒤졌다. 다행히 산들이의 변은 설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이상하면 인터넷을 찾는 게 아니라 동물병원을 가야 한다. 그래야 병을 더 키우지 않는다. 바로 산들이를 데리고 갔던 병원으로 이동했 다. 가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종합백신 맞을 때 범백이 걸린 건가? 아니면 길고양이들 밥 주다가 병이 옮은 건가? 아니면 보들이처럼 복막염의 전초증상은 아닐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두 가지 키트검사를 했다. 하나는 범백혈구혈증의 감염여부 검사였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 백혈병과 면역결핍 두 가지를 한꺼번에 판독하는 검사였다. 두 가지 키트검사는 모두 음성이었다. 그렇 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의심 증상은 하나였다. 보들이를 허망하게 별로 보냈던 복막염이었다. 복막염이란 세 글자 만으로도 그 단어가 주는 절망감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복막염을 확인하는 절차는 상당히 많고 복잡하다. 검사 시간도 빠른 검사와 오래 걸리는 검사가 있다.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체크가 가능한 것은 혈액검사를 통해서 알부민과 글로블린 수치의 비율인 A/G ratio로 예측을 하는데 절대 확진은 아니다. 산들이를 검사한 담당 수의사는 큰 문제는 없으니 천천히 경과를 보자고했다. 나는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고 산들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현관문을 여니 해들이와 숙녀가 산들이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건강해진 산들이의 비결 산들이의 건강을 위해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왕초보 집사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시던 호가든네 집사님의 블로그에서 습식에 관한 글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 우리 산들이도 습식 한 번 해보자!’. 집에는 이미 수십 종류의 캔이 있었다. 과거 랜선 이모들이 보들이가 아플 때먹으라고 보내준 것들이 잔뜩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뭐가 이렇게 종류도 많고 성분도 다른지 갑자기 까막눈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중에 제일 만만해 보이는 캔을 하나 집어 들었다. 주성분은 청정 뉴질 랜드 소고기 뉴질랜드 산이라고 하니 뭔가 좀 좋아 보였다. 왠지 몸에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캔을 땄다. 캔을 처음 보는 산들이와 해들이, 둘이 먹기 좋게 그릇에 나눠 담아줬다. 그러나 해들이는 킁킁 냄새만 조금 맡더니 고개를 휙 돌리고 가버렸다. 반면, 산들이는 계속 관심을 보였다. 한참을 냄새를 맡던 산들이가 입을 내더니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녀석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 만, 내가 준 소고기 캔은 집사들 사이에서 고양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기호성 똥망 제품이었다. 괜찮다. 맛은 똥망이어도 영양 성분은 가장 좋았 으니까.습식을 주기 시작하자 산들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물렀던 변은 점점 단단해졌다. 해들이도 습식에 조금씩 익숙해졌긴 했지만, 여전히 건사료를 더 좋아했다. 산들이와 해들이 둘의 몸무게가 차이가 난다 싶으면 건사료와 습식의 비율을 조절하면 된다. 한 배에서 나온 자매 고양이인데도 이렇게 입맛이 다르다는 게 사실 좀 놀랍기는 하다. 약하던두 자매 고양이들의 무게는 어느새 2kg을 훌쩍 넘겼다. 연약해서 엄지공 주라 불렸던 산들이는 이젠 건강한 유치원생쯤 되었다고 할까. 건강하게잘 자라줘서 고마워 얘들아. 아빠에게 와줘서 그리고 둘이 함께 내게 와줘서 고마워.? CREDIT글·사진 보들이아빠에디터 이제원?
- STORY | 2019-06-2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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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 너 희 들 을 기 억 하 는 방…
- 내 가 너 희 들 을 기 억 하 는 방 법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여러분은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특정 사물, 혹은 공간 아니면 그날의 온도 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순간을 떠올 리며 기억하는 방법이 다를 겁니다. 저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기억합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그 기억들을 하나씩 써 나가 보려 합니다.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저와 초등학생이던 여동생은 길가에서 어미를 잃은 길고양이를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작은 시골 마을의 길고양이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양이들은제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때론 친구, 때로는 자식 같은 아이들이 되어주었습니다. 저와 고양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를 보살피고 보내면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모두 소중한 존재였으나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 다. 아주 오래전 보살피던 아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하나둘씩 잊어갔습니다.그런 제가 밉기도 하고 고양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 으로 아이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눈이 많이 내렸던 날.캣초딩 시절의 듀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하얗게 눈이 쌓인 마당을 뛰어놀았 습니다. 눈 뭉치를 멀리 던지면 호기심에 달려가 냄새를 맡지만 금세 눈이란 걸 눈치채고 저에게 다시 뛰어옵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지난겨울인데 언젠가는 잊힐 걸 알기에 그 순간을 렌즈를 통해 보고 카메라로 찍으며 하드디 스크에 저장합니다.? ‘다시 봄은 올까요?’봄은 다시 옵니다.하지만 그 자리에 사진 속의 고양이 블루는 돌아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누군가가 놓은 농약을 마시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어쩌면 블루에게는 겨울보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춥게 느껴 졌을 거 같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이 생각나는 겨울입니다.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보단 가장 낮은 곳으로 내리는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려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CREDIT?글·사진 안진환에디터 강문성?
- STORY | 2019-06-17 12: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