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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2 10: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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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1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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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21 10: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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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14 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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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14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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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14 10: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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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8-04 11: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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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길 위의 오냐들
- 아빠는 육묘 중5화 길 위의 오냐들오냐와 같이 살면서부터 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고양이들이 오냐같이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가던 길을 멈추게 되고, 눈 한 번 더 맞추고, 말 한 번 더 던지게 된다. 때때로 외출하다말고 집에 다시 들어가 오냐 몰래 오냐의 밥을 들고 나와 나눠주기도 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동네 친구가 된다.? 고양이의 도시 길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마치 그 길의 터줏대감인양 골목을 지키는 길고양이들을 으레 만나기 마련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제법 큰 야생 포유동물이 아닐까. 덕분에 이 도시가 사람들만의 도시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만큼은 서울도 ‘고양이의 도시'일 뿐이며, 아스팔트와 시멘트 냄새 물씬 풍기는 잿빛 골목이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대물리며 사람들과의 공존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다. 골목의 주인 우리 가족은 만나는 길고양이마다 제각각 이름을 붙여준다. 대개 그 첫인상으로 이름을 짓는데, 이를테면 식빵을 잘 굽는다고 식빵이, 형제끼리 똑같이 생겼다고 쌍디, 검은색·흰색·갈색이 섞여있다고 삼색이, 몸집이 우람하고 남다른 포스가 느껴져서 호동이, 고등어무늬라고 고등어. 이런 식이다. 그러면 이 동네는 식빵이의 동네, 저 골목은 쌍디의 골목, 저 길은 삼색이의 길이 되어 각 동네를 지키는 골목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골목들의 주인들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못되게 구는 사람들은 없었는지, 간밤의 폭우는 어찌 잘 피했는지, 어제의 혹한은 잘 견뎌냈는지, 밤새 새끼들을 찾아 울던 어미는 결국 새끼들을 다 찾았는지 항상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제인이와 해일이 역시 유치원 등하원길 혹은 집 주변에서 심심찮게 길고양이들을 만나고,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담장 너머의 고양이를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둘이서 까치발 경쟁을 한다. 마치 고양이를 처음 보는 아이들처럼. 특히 새끼고양이들을 만나면 발을 동동 구르며, 귀엽다면서 난리 법석을 떤다. 오늘의 운세는 어떨까 길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오냐 같고, 오냐의 친구(오냐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같은 생각이 들지만 오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서는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운수에 맡기기가 일쑤다. 운수 좋은 날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며칠을 쫄쫄 굶기도 한다. 굶는 것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방금 주워 먹은 것이 독약이었을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 돌멩이나 비비탄이 날아올 지도 모르고, 한겨울밤에는 꼼짝없이 영하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로드킬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오냐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여유는 사치를 넘어 꿈일 뿐이다. 삶이 곧 생존이며 생존이 곧 삶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되자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소 차이는 있고,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길고양이와 사람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시시때때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빚어내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가 맞고 틀리며 다른지를 떠나, 금수보다 못한 행위들은 하루빨리 없어지고 최소한의 상식만큼은 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사람을 만나면 피해야하고 도망부터 가야한다고 후천적으로 학습되었지만, 본디 사람을 좋아하는 DNA와 사람들과 가까워지길 원하는 고양이의 본성은 명백하다. 오냐만 봐도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우리 주변을 늘 맴도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분명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CREDIT글 사진 우지욱 에디터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2 10: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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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비야 사랑…
- SHELTER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비야 사랑해 ? ‘(사)나비야사랑해’는 2007년 설립된 중견 동물구조단체이다. 서울시 안에 두 곳의 보호소와 한 곳의 입양센터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중하지만 활발하게 구조와 입양을 진행한다. 매년 2회의 바자회를 열어 보호소 고양이들이 잊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10년이 흘렀다. 고양이로 따지면 중년을 넘어선 나이다. ‘(사)나비야사랑해’는 그 10년의 세월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활발해진 개인들의 참여 ‘(사)나비야사랑해’의 대표인 유주연 씨가 고양이를 구조하기 시작한 때나 지금이나 동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지난해와 올해만 해도 등에 심각한 교상을 입은 채 오래 방치된 고양이 둘을 각각 다른 지역에서 구조했고, 다리가 심하게 괴사된 개와 고양이를 구조했다. 호더 사건의 피해 고양이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사건은 여전히 발생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만 해도 동물 구조는 아주 특별한 일이었고, 별난 사람이나 하는 일이었다. 주연 씨가 처음 개인 쉼터를 열었을 때도 그런 별난 사람끼리 돕자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별나지 않은 사람도 길의 고양이에게 밥이나 물을 주고, 아픈 동물이 보이면 외면하거나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도우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 동물 보호 단체로서의 ‘나비야 사랑해’ 개인의 참여는 후원이나 모금에서도 늘어났다. 포털 사이트의 후원 프로젝트나 SNS를 통한 모금 등이 가능해지면서, 개인들은 심각한 외상을 입은 동물의 구조에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2014년부터 진행해왔던 ‘(사)나비야사랑해’의 대표 프로젝트인 ‘희망이 프로젝트’도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외상 정도가 심각하고, 의료 낙후 지역에서 발생한 사례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개인과 다양한 커뮤니티, 소그룹의 역량이 커지고, 각 지역에 쉼터나 사설 보호소가 활발하게 등장하면서 고민도 시작되었다. 구조하고 치료해서 입양 보내는 일은 동물보호활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지만, 개인도 이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10년 사이 ‘(사)나비야사랑해’는 덩치만 커진 개인구조자가 되어버렸는지도 몰랐다. ? 어른이 되어가는 중 2015년과 2016년은 ‘(사)나비야사랑해’나 그 대표인 유주연 씨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2015년에는 용산 가족공원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서울시과 함께 설치했다. TNR이나 사료 급여, 현장 관리, 그와 관련된 비용 등은 모두 ‘(사)나비야사랑해’의 몫으로 남았지만, 공유지에 설치된 급식소의 의미는 남달랐다. 2017년에는 그 사업을 용산구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용산구 캣맘 모임, 용산구청과 함께 논의 중이다. 2016년에는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 아래 여러 수의사 협회와 동물보호단체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동물보호유관단체 협의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5월 24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되는 ‘동물 생명권 존중’ 집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개 고양이 유기 학대 도살 금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 집회에 참석하기 전까지, 주연 씨는 현장에서 열심히 구조하고 있으니 굳이 이런 행사에 참여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내심 있었다. 그러나 ‘(사)나비야사랑해’ 10년을 앞두고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지난 10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은 입양 보낸 500여 마리의 고양이와 보호소에 있는 130여 마리의 고양이였다. 한 해에만 버려지는 동물의 수가 8만에서 10만 마리라고 하니, 10년을 노력했어도 한 해 유기동물의 1퍼센트도 구조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 깨달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주연 씨는 지난 10년 동안 한 일이 큰 강물에서 물 몇 바가지를 떠낸 것일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년 동안 시간과 자산을 동물 구조에 모두 던져 넣었는데 말이다. 그 충격이 이제까지 해왔던 조용히 소소하게 하는 동물 구조라는 틀을 깼다. 물길 자체를 바꾸는 데 참여해보기로 한 것이다. 동물의 생산과 소비 방식 자체의 교체, 법과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들 우리끼리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기 시위 등을 통해 대중과 입법기관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동물 반려 인구가 1,000만인 데 비해 참여가 저조하지만, 지치지 않고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10년이 남긴 것 그럼에도 ‘(사)나비야사랑해’의 근본은 여전히 동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완성하는 것은 새 가족이다. 지금 13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 완성을 기다리며 ‘(사)나비야사랑해’의 보호소에 있다.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평균 연령은 비교적 높다. 제2 보호소 고양이의 평균 연령 6세, 어렵지 않게 8세나 10세의 고양이도 찾아볼 수 있다. 털에서 기름이 빠져나가 푸석한 아이, 구내염 때문에 입가가 침으로 축축한 아이, 재채기를 하는 아이 등, 서로 데려가고 싶을 만한 조건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친구들이야말로 안정적인 환경과 집중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절반을 넘어섰고,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친 고양이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예전이라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이런 중년에 접어든 고양이들도 입양을 간다고 한다. 어디서 천사 같은 사람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활력 넘치는 아기 고양이가 부담스럽거나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성묘를 선호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보호소와 구조 활동가가 나이를 먹고 고양이들도 세월을 거치듯, 반려인과 반려동물 문화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주연 씨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한 일이 너무 작고 하찮았던 것 같다 했지만, 주연 씨처럼 그 시간을 버티며 아픈 동물을 안아들어 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변화가 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늘도 어디인가에서는 동물 유기나 학대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돌은 느리게 굴러가고 있다. 10년 후에는 좀 더 나은 곳에서 우리 모두 만날 수 있기를. 지치지 않게 서로를 다독이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더 가까이서 만나는 ‘나비야사랑해’ cafe.naver.com/kittenshelter? CREDIT글 사진 김바다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1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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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 시장의 장난꾸러기 삼남매 달님이,…
- 묘생 2막수산 시장의 장난꾸러기 삼남매달님이, 호동이, 행복이 세로로 두 뼘, 가로로 1미터쯤 되는 수산 시장의 작은 평상. 그곳은 상인이 잠깐씩 앉는 휴식처이자 생후 2개월 된 달님이, 호동이, 행복이의 놀이터, 그리고 집이었다. 쓰레기장에서 들리는 가냘픈 소리 이제 노량진 시장을 떠올리며 정겨운 비린내와 온기 섞인 습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래 전 기억은 현대식으로 건설된 대형 도매 시장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45년 만에 들어선 신축 건물이란다. 9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온 전통 재래시장, 우리 기억 속의 고즈넉한 점포들은 수협 측의 현대화 사업에 의해 하나둘씩 건물 내로 들어가고 있다. 더 깨끗한 시설, 안전한 수산물로 소비자를 맞겠다는 수협의 의지지만 아직 적지 않은 점포들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여기서 그들의 갈등을 짚으려는 건 아니다. 다만 달님이, 호동이, 행복이는 길 위를 지키던 상인의 손에 구조됐다. 모든 점포가 일찌감치 신식 건물 내로 들어갔다면, 그리고 구 점포들이 정리됐다면 아이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까.? 상인은 어느 아침 고가 주차장 아래 작은 쓰레기장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작고 가냘픈 소리에 미심쩍어 다가가니 고양이는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는 확신은 서너 시간 뒤 그를 다시 같은 곳으로 이끌었다. 더 작고 약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갓 걸음마를 뗀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상인의 손에 구조됐다. 고양이는 눈병이 심해 한 쪽 눈을 아예 뜨지 못하고 있었다. 어미가 있는 아이라 믿고 지나칠 수도 있었으나, 반쪽 시야에 잘 먹지 못해 비틀거리는 작은 생명을 내버려두고 갈 만큼 상인은 무심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길고양이 중 보기 드문 샴 종이었다. 물론 상인은 고양이의 품종 따윈 알지 못한다. 구조하자마자 한 일은 동물병원에서 안약을 처방받아 아이의 눈에 넣어준 일이다. 어떤 이름들은 희망을 내포한다. 상인은 아이를 행복이라 불렀다. ? 모두가 행복할 순 없는 거리의 삶??행복이의 눈은 점점 호전되어 갔다. 엄청 잘 먹고 까부는 아기 고양이는 손님이 줄어가는 재래시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재롱둥이가 됐다. 행복이의 사연이 퍼지자 시장 근처에서 구조된 같은 또래의 길고양이 세 마리가 상인의 점포로 왔다. 행복이가 안과 치료를 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이 녀석들도 도와주라는 지인의 요청을 상인은 꿀꺽 받아들였다. 지인과 상인, 주변 사람들은 비슷한 체구와 질병을 갖고 있는 고양이들이 모두 한배에서 나았을 거라고 추측했다. 확실히 알 길은 없으나 정말 그런 것처럼 고양이들은 보자마자 작은 평상 위에서 레슬링에 돌입했다. 이후 온 고양이들은 햇님이, 달님이, 호동이라는 든든한 이름을 얻었는데 그 중 건강이 유독 좋지 못했던 햇님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머지않아 별님이 됐다. 갑자기 던져진 고양이의 더욱 갑작스런 죽음이었지만, 상인은 오랜 친구가 세상을 뜬 것처럼 깊이 슬퍼했다. 그래도 검은 고양이 달님이와 고등어 무늬의 호동이, 하늘색 눈의 행복이가 빠르게 건강을 되찾으며 상인의 마음을 달랬다. ? 시장에서 만난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책상만 한 평상 위에서 쉴 새 없이 달리고 구르며 운동량을 뽐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평상 한 쪽에 놓인 철장 안에서 서로의 몸을 베개 삼아 엉켜 잠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아직 눈병은 깔끔히 낫지 못했고, 셋 중 누군가의 귀에 들어온 진드기가 다른 아이들에게 옮겨 붙어 이따금 귀를 거칠게 긁긴 하지만 세 남매는 좁다는 투정 없이 하루 서너 번 주는 사료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그런데 이를 보는 상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대로 세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까. 커가는 아이들은 점점 공간이 비좁을 테고, 생계가 달린 점포 문제도 연일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상인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마다 입양의 뜻이 있는지 물었다. 넓고 쾌적한 곳에서 금방 멈추지 않고 오래 달리길 바라면서 말이다. 깊이 고민하는 사람까진 있었지만 실제 아이들을 입양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행복이의 입양, 그리고 남은 형제들??취재를 마친 후, 반려묘 입양을 고심하고 있었던 에디터는 상인과 논의 끝에 행복이를 입양했다. 에너지가 넘쳐 슬슬 평상 밖을 궁금해 하던 아이였다. 에디터의 집으로 건너 온 행복이는 가까이서 보니 더 말랐고 눈엔 부종이 있어 마치 경기를 치르고 난 권투 선수처럼 보였다. 어디서든 씩씩하라는 바람까지 더해 ‘알리’라는 새 이름을 붙여줬다. 병원 검사를 하니 귓속은 진드기 떼의 둥지였다. 귀 청소를 몇 차례 하고 구충제를 발라줬다. 글을 적는 지금까지도 집에서 가루약을 복용 중이다. 다행히 사료에 솔솔 뿌려주면 양념인 양 맛있게 먹어주고, 떼꾼했던 눈의 붓기는 거의 가라앉은 상태다. 그리고 아직 시장에 남아있는 달님이와 호동이. ‘매거진C’의 온라인 사이트 ‘펫찌’를 통해 알리의 남아 있는 형제들을 소개하며 입양 공고를 올렸다. 아직 적극적인 문의는 들어오진 않았다. 이 글을 독자들이 보는 즈음엔 달님이와 호동이에게도 좀 더 따뜻한 집이 생겼길 바라며, 혹여 입양을 바라는 독자가 있으면 아래의 이메일로 문의해 주시라. ? *달님이와 호동이 입양에 관심이 있다면 edit@petzzi.com CREDIT에디터 김기웅사진 곽성경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21 10: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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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묘 육성 육탄전 | 5화 오프라 윈프…
- 육묘 육성 육탄전5화 오프라 윈프리처럼 봄이 지나고 슬슬 초여름의 더위가 한차례씩 등짝을 후끈하게 달구던 정오였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에어컨을 사야겠다며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언니…… 카페 가던 고냥이가 어푸푸 어부 어부. 고으양이 아프 아프 다쳐서리. 새끼, 크헉 크흐윽 어떠…… 어떠해요~?” 학대 받은 고양이? 후배가 울먹이며 말하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번역해 보니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에 가끔 우유나 빵을 주던 새끼고양이가 있는데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죽게 생겼다며 어찌해야 하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난감했다. 내가 고양이 구조대도 아닌데 요즘은 주변에서 길냥이가 다치거나 버려진 것을 발견하면 대뜸 내게 전화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 그 흔한 동물 단체나 협회 등에 한 군데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저 반려묘를 키우는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조합 형태의 모임에 속해, 다친 고양이들을 발견하면 치료비로 쓰자고 한 달에 만 원 정도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의를 받으면 딱 잘라 거절하거나 외면하기가 어렵다. 모른 척하고 알아서 잘하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결국 택시를 타고 그 카페가 있는 곳으로 친구와 함께 달려갔다. 여러 증인들의 카더라 통신에 가까운 내용을 조합해 보면, 그 동네 주변에 길고양이를 증오하는 할머니가 있고 꽤 위협적인 태도로 고양이들을 학대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루머 속 할머니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쌍한 고양이는 발견 당시 얼굴과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거기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협업으로 코너에 몰린 녀석을 잡아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내 내 팔뚝과 손을 물어뜯고 발버둥을 쳤는데 다른 길고양이들과 달리 너무 사납고 겁에 질려 있어서 정말이지 심한 학대를 받은 것은 아닌가 안쓰러웠다.? 결국엔 또 우리 집 하지만 동물병원에 도착해 원장님의 소견을 들어 보니 고양이의 상처는 사악한 할머니의 만행도, 또 다른 누군가가 학대한 흔적도 아니었다. 큰 고양이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고 염증이 심해진 상태라고 했다. 길고양이의 천적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먹이가 귀한 도심에서 고양이들끼리의 영역싸움도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실명이 되진 않을 거란 진단을 받았고 그 길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시간 동안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고양이는 목소리가 다 쉬고 온 몸에서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퇴원 후 또 한 번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제보를 한 후배는 이 녀석을 맡을 수 없는 상태였다. 곧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철에 그냥 방사할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싫었다. 집엔 이미 네 마리의 고양이들이 있어 포화 상태였고 이렇게 순화가 안 된 녀석을 매일매일 간호할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불쌍하다고 구조는 하는데 그 다음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급하면 무조건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게 맞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 대책이 없다 싶어 화가 났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녀석이 우리 집 거실에 떡하니 똥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전쟁이었다. 수술 부위 소독을 위해 잡을 때마다 야생 그 자체인 녀석은 엄청난 반항을 했고 내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응급실과 외과에 두 번이나 뛰어가야 했고 그때 생긴 상처는 아직까지도 팔뚝과 허벅지에 길게 남아 있다. 다행히 녀석은 엄청난 식탐 덕분에 캔에 약을 섞어 줘도 잘 먹어서 빠르게 회복했다. 거의 다 나았기에 입양을 보낼까 했으나 성격이 너무 난폭하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해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수술을 받으러 갔는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작고 어린 녀석이 임신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중성화 수술이 진행된 상태였고 그동안의 의료 조치 때문에 그 미생의 새끼들은 태어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새끼가 새끼를 배고 있었다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여러 가지로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방사를 하려고 처음에 구조되었던 장소 근처에 갔으나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된 어린 고양이를 영역싸움으로 잔뼈 굵은 성묘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원망 대신 감사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이 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섯 번째 길냥이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임신과 폭행 그리고 유산까지…… 유명한 흑인 배우 ‘오프라 윈프리’가 떠올랐고 나중에 그 여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오프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프라는 여전히 사람을 경계하고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 빼고는 나를 아는 척도 안 하는데 최근엔 염치없는 태도 때문에 그냥 ‘염치’라고 부른다. 가끔 ‘염치야~’하고 부르면 모른 척 하다가 ‘오프라야~’하고 부를 땐 살짝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린다. 역시 웃기는 녀석이다. 오프라는 다른 고양이들과 장난을 치는 말괄량이가 되어 심하게 발랄하고 쾌활하게 살고 있다. 처음엔 이 녀석을 불쌍하다고 구조만 하고는 맡을 형편이 안 된다던 후배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오프라의 병원비를 모아 준 동네 길냥이 모임 친구들, 중성화 수술을 도와준 길고양이 구조 계의 대모, 새벽부터 물어뜯긴 상처를 정성스레 치료해 준 동네 외과 원장님과 간호사들까지 모두가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원망보다는 고마움의 눈물을 더 많이 흘린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고양이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끝내 외면할 수 없다면,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도움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고양이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염치’녀석은 여전히 고양이 친구들만 좋아하고 나는 그저 밥 나르는 아줌마일 뿐이다. 집에서 키우는 진정한 길고양이다. 그래도 가끔 내 침대로 올라와 은근슬쩍 궁둥이를 들이밀며 누울 때는 정말 사랑스럽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다섯 마리 고양이들과의 삶이 또 시작되었다. CREDIT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14 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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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묘 육성 육탄전 | 4화 돌아온 고등…
- 육묘 육성 육탄전4화 돌아온 고등어 우리 집 둘째 어린이에겐 세 마리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이 네 마리 꼬물이들은 박스에 담겨 버려졌고 구사일생으로 구조돼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며 입양을 가게 되었다. 이 네 마리의 운명을 보면 도시에서 태어나 버려지는 길고양이들의 팔자를 하나하나 알 수 있다. 정처 없이 떠돈 고등어 가장 먼저 입양을 간 얼룩 무늬의 카오스는 그나마 일반적인 가정에 입양됐다. 초반에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와서 커 가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겨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 다음으로 입양 보낸 노랑이 치즈는 가장 럭셔리한 주인을 만나 온갖 비싼 용품으로 치장하며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희귀병에 걸려 청소년묘가 되기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병이 깊어지자 입양자는 보살피는 게 힘들다며 고양이를 돌려보냈고 마지막 순간은 내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입양을 간 고등어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녀석은 사람을 그다지 따르지 않았고 애교도 없었지만 타고난 미묘라 가장 먼저 입양이 낙점됐다. 그러나 그 낯가림 심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나빴던 탓인지 입양자가 키우기 힘들다 해서 지인 커플에게 재입양됐다. 그러나 그 부부가 아기를 가지면서 고등어는 다시 원래 입양자에게 되돌아가야만 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 입양 당시 간호사여서 신뢰가 갔던 입양자는 공무원 시험 준비 때문에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며 연락을 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고양이를 너무 싫어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당장 함께 살기도 어렵다고 호소해 온 그녀. 고등어는 그 룸메이트에게 알게 모르게 학대를 받아서인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고 특히 젊은 여자를 싫어했다. 손을 들어 쓰다듬으려 하면 때린다고 느꼈는지 기겁을 하고 오줌을 싸기도 했다.? 어찌하란 말이냐 결국 입양자는 고양이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막무가내로 우리 집에 고등어를 데려왔다. 화도 나고 원망도 들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욕할 수도 없었다. 본인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얼굴에서 보였기 때문이었다. 길에다 다시 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고 고마울 뿐이었다. 입양자는 말이라도 나중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사료 값으로 보태 달라고 몇 만원을 쥐어 주곤 황급히 뒷걸음질 치듯 떠나 버렸다.내 앞에는 세 번의 파양으로 위축돼 벌벌 떨고 있는 다 큰 고등어 녀석이 이동장 안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물론 그 입양자는 다시 돌아오지도,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이미 세 마리나 키우고 있었기에 고등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벅찬 결정이었다. 다 큰 성묘에 전혀 귀엽지 않은 성격, 심지어 눈치도 없고 자폐처럼 싱크대 밑에 숨어서 몇 달을 두문불출하는 이 우울증 걸린 고양이를 어떻게 순화해 입양을 보낼 수 있을지……. 그저 앞날이 막막했다. 입양을 보낸다 해도 걱정이었다. 그런 고통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품자니 허리가 휠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 집 셋째 토라의 질투와 시샘 그리고 텃세에 밀려 매일 털이 한 움큼씩 뽑힌 채 당하고 지내는 걸 봐도 속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인간에게도 고양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녀석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지. 고등어는 스트레스 때문에 온몸에 비듬이 올라오고 피부병까지 퍼져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 믿어줘서 고마워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더니 벌써 1년이 흘렀다. 고등어는 어느 정도 낯가림도 사라지고 토라의 수염을 왕창 뽑으며 한방 날리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는 내게 엄청난 애교를 부리며 눈앞에 알짱거렸다. 입양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녀석의 눈을 보면 행여나 그런 마음을 들킬까봐 애써 웃으며 예뻐했고…… 결국 나도 포기했다. 나를 신뢰하는 이 녀석에게 또 한 번 아픔을 줄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허리가 휘든 속이 아프든 또 한 마리를 품기로 마음먹고 나니 오히려 후련해졌다.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며 내게 다가오는 고등어의 소심한 몸짓에 나 역시도 아주 느리게 정을 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집 넷째로 자리매김한 고등어는 이상한 이름을 버리고 '치치'(눈치코치의 줄임말)라고 불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치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나도 처음부터 치치를 예뻐한 건 아니었다. 이유 없이 사고를 치고, 눈치 없이 사람을 놀래고, 우는 소리조차 고양이치고 매우 짜증스럽고 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치치를 제일 많이 쓰다듬는다. 그러면서 이 녀석이 나를 가장 신뢰한다는 걸 느낀다. 괜히 말썽을 부린 게 아니라 내 옆에 가까이 있고 싶어서 한달음에 뛰어 오다 보니 컵을 떨어뜨리는 등 조심성 없이 사고를 치는 거였다. 일부러 사람을 놀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어디서든 튀어나와 나를 쫓아다니는 거였다. 그 모든 행동들이 그저 나 하나만 바라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한 사고들일 뿐이었다. 내 옆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며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치치. 그것 또한 또 다른 의미의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치치에게 나 역시도 무한 신뢰를 보낸다. 곁에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항상 함께일 거란 믿음을 나누는 우리. 올 겨울도 우리는 조용히 쌓이는 눈처럼 잔잔하게 사랑을 쌓아 갈 것이다.? CREDIT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14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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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묘 육성 육탄전 | 3화 혼돈의 카…
- 육묘 육성 육탄전3화 혼돈의 카오스? 연희동으로 이사 후 고양이 ‘랍비’, ‘어린이’와 함께 아옹다옹 살던 어느 날이었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첫째의 뒷목 털이 빠지고 상처가 덧나 병원에 갔다. 병원비 부담에 그냥 후시딘만 바르다가 너무 심해져 부랴부랴 달려간 그날 있었던 일이다. 셋째는 무리 동물병원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프라다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갓 태어난 두 마리 꼬물이가 그야말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아기고양이 치료 차 데리고 오신 건가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대기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말씀하셨다. “어미가 우리 집에 새끼를 낳고 죽었어. 다른 녀석들은 건강해서 여기저기 보냈는데 이 두 녀석은 눈이 아파서……. 혹시 누가 데려다 키울 수 없는가.”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이미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지라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덜컥 입양해 버릴 것 같아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랍비의 영구처럼 털이 벗겨진 상처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할머닌 기어코 내 앞으로 다가와 턱 앞까지 그 프라다 쇼핑백을 들이밀며 동정심을 호소하셨다. 어떻게 그냥 외면할 수 있을까.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니 두 눈에 고름딱지가 뒤덮인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보였다. 젖소 무늬 수컷과 카오스 무늬의 암컷 남매. 겨우 탯줄이 떨어진 듯한 두 생명은 병아리보다 작은 소리로 삐악삐악 울었다.? 머리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그 때 마침 원장님이 대기실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나오시더니 꼬물이들을 발견하고는 여기저기 살펴보셨다. “이대로 두면 며칠 안에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죽을 텐데.” 원장님의 그 한마디에 이미 두 마리 유기묘를 입양한 처지지만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어 “제가 임보를 하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무언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유체이탈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고 생각은 하나 이미 내 몸은 그 프라다 쇼핑백을 끌어안아 버렸다. 원장님은 분유와 주사기 그리고 안약을 주시며 “가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 치료해주라”고 격려해주셨다. 망연자실. 집에 돌아와 애꿎은 랍비만 혼냈다. “이 녀석아, 네가 목덜미만 쳐 긁지 않았어도 병원에 안 갔고,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이런 사서 고생도 안 했을 거 아니냐.” 엄한 짜증을 부리면서도 꼬물이들이 작은 몸을 가냘프게 떨며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에 마음이 사르르 녹으며 분유를 타고 절로 엄마 미소를 짓는 내 자신이 사실은 랍비보다 더 원망스러웠다.? 고마워, 미안해 생전 처음 분유도 타보고, 그걸 주사기로 먹이고, 계속 붙어있는 눈곱을 시간마다 닦아주며 추석에 집에도 못가고 뜬눈으로 연휴를 보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수면부족과 이불빨래로 스트레스 지수가 차오르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졸린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분유를 타 먹이려고 하는데 뭔가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이 두 녀석이 동그랗게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우유의 냄새를 맡고 진격의 거인 못지않은 포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두 눈으로 무언가 본 듯이 나와 젖병을 향해 나름 뛴다고 뛰는 시늉을 하며 기어오는 녀석들. 고름 때문에 앞이나 제대로 보일까 싶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다니. 그야말로 기적 같았다. 거기다 눈망울은 어찌나 예쁜지. 그 눈을 바라보는 내 눈이 눈물로 가득 차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빛나는 눈을 영영 못 볼 뻔 했다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찌됐든 살 권리가 있는 녀석들인데……. 한 점 때도 없는 말간 눈을 동그라니 뜨고 여기저기 탐색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괜히 짜증내고 후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어쩔 수 없다, 예쁘니까 캣맘들이자 동네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놀러 왔다. 그 중에 젖소무늬 녀석은 친한 이웃 언니에게 둘째로 입양을 보내기로 약속도 했다. 카오스 암컷 역시 여기 저기 수소문을 거쳐 입양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데서 문제가 터졌다. 아기 고양이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근처에도 못 가고 빙빙 돌던 우리 집 둘째 어린이가 언제인가부터 카오스 녀석을 예뻐하기 시작했다. 카오스 꼬물이도 애교가 상당히 많아 사람이건 고양이건 찰싹 붙어 냥냥거리는 게 아주 물건이다 싶었는데 결국 어린이를 꾄 듯했다. 순진한 어린이는 카오스 꼬물이 곁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쳐다만 봐도 그저 좋은지 항상 쫓아다녔다. 아직 어려서 그럴까 쭙쭙이(엄마 젖을 빠는 시늉)가 필요했던 카오스 꼬물이가 어린이의 귀를 물러 터질 때까지 쭙쭙이 하고 또 하는데도 어린이는 귀찮아하는 내색도 않고 참았다. 소심한 어린이……. 그 남자의 사랑은 그랬다. 결국 둘이 허구한 날 목을 끌어안고 붙어 있는 바람에 입양 보내기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나 보려고 카오스를 친구 집에 하루정도 맡겼더니 어린이는 거의 식음을 전폐한 채 카오스를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뭘까? 이 두 녀석의 관계는……. 어린이는 정말 끔찍이도 카오스 꼬물이를 아꼈고 카오스도 어린이 옆에 껌처럼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별 수 있나. 입양 보내기를 포기하고 카오스 꼬물이를 어린이의 여동생으로 들이게 됐다. 이름은 토라로 지었다. 토라는 자신의 독특한 털 무늬를 뽐내며 아주 도도하고 싸가지(?) 없게 성장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예쁘다는 착각 속에. 물론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어린이다. 어린이 눈에는 토라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런 여동생이었는지 매일 매일 그루밍을 해주고 간식을 양보하고 자신의 귀를 쭙쭙이로 기꺼이 내주며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토라는 어릴 적 너무 작게 태어나서 그런지 다 큰 지금도 손발이 작고 얼굴도 작다. 하지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 특유의 당당함과 도도함으로 오늘도 앵그리버드 같은 눈을 하고서는 여기저기 귀여워 해 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랍비, 어린이 심지어 나에게까지 와서 당당하게 야옹거리는 토라.? CREDIT글 사진 한민경 (타로 점술가)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8-14 10: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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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묘 육성 육탄전 | 2화 어린이들의 …
- 육묘 육성 육탄전2화 어린이들의 합창 하얀 고양이 랍비와 나름 알콩달콩 살다 보니 고양이의 습성과 애교에 눈을 떴다. 새끼 때는 얼마나 예뻤을까. 단물만 쏙 빼먹고 버린 천하의 쓰레기 난봉꾼 전 주인에게 질투심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존 본능 충만한 랍비는 사료처럼 생기기만 하면 그 어떤 것이라도 삼키는 식성으로 살찐이가 되어 가는데…….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 구조에 열심인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대뜸 아깽이(아기 고양이) 임시 보호를 며칠만 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아깽이? 말만 들어도 녹아내려 하수구로 흘러 빠져나가는 자제력을 느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손 안엔 작은 박스가 들려 있었다. ?오글오글 꼬물꼬물박스 안에 알록달록한 네 마리의 진짜 꼬물이들이 오글오글 꼬물거리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아니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 의해 이 어린 생명들은 박스에 밀봉된 채 지하철역사에 버려졌다고 했다. 그렇게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며 버티고 버티다 고사 직전에 구조되어 내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랍비는 처음엔 이 아이들을 낯설어 하더니만 그날 밤부터 밤새 한 놈 한 놈 그루밍을 해주고 또 해주고 나중엔 화장실 훈련까지 시켜가며 나보다 더 임보맘(임시보호자) 역할을 잘 해주었다. 꼬물이들도 랍비를 엄마라 생각했는지 오밀조밀 서로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따로 할 일은 사료값 벌러 나가는 것 외에는 없을 정도였다. 임보맘으로 맹활약하는 자신을 상상했는데 기대와는 달라 살짝 삐치기도 했다. ? 이름이 뭐예요? 네 마리 모두 이름을 지어주기 뭐해서 그냥 어린이 1, 2, 3, 4로 부르며 서둘러 입양처를 찾던 와중에 카오스 무늬의 어린이 1번이 가장 먼저 좋은 부모를 만났다. 이후 얼굴이 제일 예쁜 고등어 어린이 2번과 노랑 어린이 3번이 차례로 입양을 갔는데 4번 젖소무늬 어린이는 솔직히……. 외모가 좀 아기 고양이다운 얼굴은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인기가 없었다. 뭐랄까, 고양이 얼굴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고양이 새끼라 하면 거의 악마라 불릴 만큼 귀염이 터지고 필살 애교도 펑펑 솟아나는데 이 젖소 어린이는 소심하고 얼굴도 아바타스럽게 코만 크고 심지어 애교도 더럽게 없었다. 형제들이 모두 입양을 가고 홀로 남았는데도 랍비에게만 떡 들러붙어서는 내겐 오지도 않는, 귀염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녀석. 간만에 입양처가 들어왔지만 좀 의심스럽고 신뢰가 가지 않는데다 지역도 지방이라 너무 멀어서 데려가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두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입양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료를 챙겨주다가 나도 모르게 “랍비야, 어린아~ 밥 먹어라!”하고 불렀는데 젖소 어린이가 쫄래쫄래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내 다리 사이를 부비부비 해주는 게 아닌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다음날도 또 사료를 챙기며 “어린아~ 밥 먹어라~”하고 불렀더니 확실하게 알아듣고 내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거다. 이 녀석……. 자기 이름을 어린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신기해서 생각날 때마다 어린아, 어린아 부르면 애옹, 애옹하고 대답까지 해주었다. 어쩌다 보니 어린이가 이름이 되어버린 젖소 어린이는 그렇게 자기 이름을 기억하면서 엉겁결에 우리 집에 입양이 되어버렸다. 얼굴은 아바타처럼 생기고 이름조차 어린이인 녀석인데 미우나 고우나 이미 정이 많이 들어버려서 어디 홀로 보낼 수가 없었다. 정이 많은 게 늘 탈이라더니……. ? 콩깍지가 씌다랍비의 공갈젖을 빨며 잠이 든 어린이의 아바타적 묘상을 보면서 못생겨서 입양 못간 이 아이가 내 눈에 조금씩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웃기는 5:5 가르마가 포마드 바른 듯 아주 단정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눈이 두 가지 색으로 아주 연한 연둣빛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도 발견했고. 몸집에 비해 발이 커서 늘 아빠 슬리퍼를 신은 아이처럼 한심해 보이는 것도 알게 됐다. 하나같이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어린이는 어엿한 둘째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한 식구가 더 늘어 이제 두 마리의 어린이 길냥이 가족이 됐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첫째 랍비보다 더 큰 덩치로 자라 나름 수놈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겐 여전히 어린이다. 아침마다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얼굴을 씻겨달라고 기다리는 새 나라의 착한 우리 어린이. 어린이의 형제들은 행복한 묘생을 살지 못했다. 카오스 어린이는 연락이 두절됐고 노랑이 어린이는 병으로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며 고등어 어린이는 몇 번의 파양과 학대를 당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못생겨서 외면당했던 이 녀석만 이제 한 인물 하며 모두에게 제일 귀여움을 받는 현실을 보면 생긴 것과 행복한 삶은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어린이의 순진한 눈을 보고 있자면 꼬물이들이 아침마다 햇살을 받으며 함께 야옹거리며 노래하던 그날의 합창이 기억나서 가슴이 저며 온다. 한 녀석 한 녀석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나가기 위해 불렀던 그 아름답고도 순수한 고양이 어린이들의 노래는 내 평생의 첫 아련한 추억으로 죽기 전까지 기억될 것 같다. CREDIT글 사진 한민경?
- STORY | 2017-08-04 11: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