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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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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는 가을이라서
- 강원도 횡성 풍산개가을이는 가을이라서
속으로 ‘이름을 뭐라고 할까?’하고 고민했던 것도 잠시,곧바로 ‘가을이, 가을에 태어났잖아.’라는 대답이 떠올랐다.10월의 어느 멋진 날,푸르고 높은 하늘 아래 태어난우리 가을이.날도 어쩜 그렇게 예쁜 날을골라 내게 왔는지 모르겠다.
풍산개 가을이, 태어나다 풍산개 여섯 마리가 태어났다.청이의 부른 배를 보며 짐작은 했었지만 설마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이야.청이는 고통스러운지 끙끙거리며 몸을 계속 뒤척였다. 이 모든 상황이 처음이라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무언가 깔아줄 만한 것이 없을까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안 쓰는 침낭이 있었다. 청이는 신통하게도 침낭을 물어다 밖이 보이지 않도록 입구를 막더니 출산을 시작했다. 얼마 뒤 희미하게 끼잉 거리는 소리가 청이의 집 밖으로 새어 나왔다. 꼬물이들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초보 왕 엄마인 나는 덩달아 바빠졌다. 무언가 몸보신 시켜줄 만한 것이 없을까 냉장고와 찬장을 뒤졌더니 말린 북어와 미역이 나왔다. 일단 마른미역을 솥에 가득 넣고 푹푹 끓여 청이에게 주었다. 모자란가 싶어 사료도 조금 먹였는데 마저 삼키지 못하고 캑캑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섯 마리씩이나. 얼마나 고생했을까? 미안한 마음 가득 담아 다음엔 북엇국을 끓여주기로 했다. 다행히도 새끼강아지들은 엄마를 닮아 모두 토실토실 건강했다. 눈도 못 뜨고 그저 낑낑거리며 엄마 젖만 찾는 꼬물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유난히 하늘이 높고 선선하던 10월의 어느 날, 나는 그렇게 가을이와 처음 만났다.사고뭉치 여섯 악동들꼬맹이들은 우리 가족과 엄마 청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청이가 교육을 얼마나 잘 했는지, 꼬맹이들은 응가도 쉬야도 꼭 집 둘레에만 했다. 따로 교육하지도 않았는데도 의젓하게 ‘앉아’, ‘기다려’도 잘했다.무엇보다 다들 순했다. 특히 꼬맹이들의 먹성은 알아줘야 했는데, 청이 주려고 끓여놓았던 미역국이나 닭죽까지도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먹을 거면 몰래 먹던가, 꼭 국물을 몸과 마루에 온통 범벅을 하고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럼 혼내려고 마음먹었다가도 금세 사르르 녹아버리는 거였다.딸아이도 새끼강아지가 귀여운지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몇 번이고 쓰다듬곤 했다. 하얗고 통통한 새끼강아지들이 올망졸망 뭉쳐 다니며 먹고, 자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워 천사가 따로 없지 싶었다.하루는 엄마 사료를 단체로 훔쳐먹다 내게 걸려서 견사 밖으로 내보냈더니, 벌 받는 줄도 모르고 신나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다 이리 박고 저리 박고 난리도 아니었다. 꼬맹이들은 뭉쳐 다니며 산으로 들로 신나게 뛰어다녔다. 바람 부는 갈대밭이 온통 저들 놀이터였다.어쩜 그렇게 신통방통하니, 가을아? 시간이 지나 가을이의 형제들은 모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고 그중 가장 못난이(!)이던 한 녀석만 곁에 남았다. 그 못난이를 가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어렸을 적 가을이는 기특하게도 농원 안에서만 놀 뿐, 밖으로 나가 나를 걱정시키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좀 더 크자 걸핏하면 제집에서 탈출을 감행하더니 뻔뻔하게도 이 논두렁, 저 밭두렁을 구경 다니며 참견을 해 대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가을아!’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쏜살같이 나타나 내 품에 안겼다. 땅굴은 또 어찌나 잘 파는지, 안으로 쏙 들어가 반대편에 있는 제가 봐 둔 전망 좋은 자리에 떡 하니 앉아있곤 했다. 농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그 자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하지만 농사철에는 어쩔 수 없이 목줄을 매어두어야 했다. 순하고 착한 가을인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얌전히 있어주었다. 그 모습이 또 미안하고 안쓰러워 시간이 날 때마다 가을이와 시간을 보냈다.가을이는 어릴 때 버릇 그대로 집 주변에서는 배변을 하지 않았다. 꼭 줄을 풀어주어야 농원 주변 풀밭에서 해결하곤 했다. 가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랬다. 예쁘고 사랑스러워 도무지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조금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아들이 군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농원 일은 언제나 산더미처럼 많았다.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지만 무기력을 느낄 틈조차 내겐 없었다.지긋지긋한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자꾸만 자라나 나를 괴롭혔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쉽게 피로해졌지만 그 모든 일을 나는 혼자 해내야 했다. 정신없이 풀을 뽑고 있으면 어느 순간 손의 감각은 희미해지고 계속 같은 일만 반복하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높고 파래서 괜스레 야속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가을이는 내게 다가왔다. 잠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어슬렁거리다가 쓰다듬어 달라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애교에 긴장이 풀린 나는 가을이와 함께 누워 하늘을 보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도대체 어찌 알고, 내가 힘들 때마다 다가오는 걸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가을인 그저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내게 있어 가을이는 행복 그 자체인 것 같다. 힘들고 우울하다가도 가을이와 장난치고 웃고 떠들다 보면 작은 걱정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지친 일상 속에서 가을이 덕분에 나는 마음속 빈틈을 잠시나마 메울 수 있었다.자꾸만 바라게 된다는 것은사랑한다는 것 어떤 사람들은 풍산개가 우리나라 토종 견종이자 호랑이도 잡는 용맹한 개이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가을이가 가을이라서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쫑긋 서는 세모 모양 귀도, 온 힘을 다해 흔드는 풍성한 꼬리도, 심지어는 사소한 사고를 칠 때까지도 모두 좋다.요즘 들어 가을이와 해 보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씩 자꾸만 떠오른다. 먼저 자동차를 무서워하는 가을이와 함께 여행을 가 보고 싶고, 그게 안 되면 올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라도 가서 신나게 놀고 싶다.최근 집에 들인 또 다른 풍산개, 풍산이와 가을이 둘의 새끼를 보고 싶은 욕심도 조금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을이가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다.그저 햇볕이 내리쬐는 농원에서 땀을 닦으며 가을이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더운 여름날 시원한 마루에 누워 살을 맞대고 함께 설핏 낮잠을 자는 달콤한 시간이, 그렇게 가을이와 보내는 매 순간순간들이 언제까지나 이어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CREDIT글 사진 이채현에디터 이혜수<강원도 횡성 풍산개-가을이는 가을이라서>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8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0-06-10 14: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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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의 한 페이지
- 비몽사몽 다이어리내 삶의 한 페이지 2018년 01월 15일. 이 두 녀석과 인연이 된 날이다.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가족들의 반대로 그 시기를 미뤄오던 나는 결혼과 함께 드디어 바람을 이룰 수 있었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오기 전부터 녀석들의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비몽이, 그리고 사몽이.
“우리 집에 온 걸 축하해.비몽아, 사몽아!”
첫 만남, 첫 위기처음 만난 두 아이는 그저 너무 귀엽고, 귀엽고, 또 귀여웠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나?’ 하는 낯섦도 잠시,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어떻게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첫 번째 위기는 두 녀석을 집에 들인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처음부터 사몽이의 눈이 어딘가 모르게 조금 불편해 보인다 싶기는 했지만, 설마 그게 각막궤양으로까지 번질 줄이야. 태어난 지 고작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새끼강아지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픈 강아지를 돌보는 일 역시 나에게는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두려웠다. 사몽이와 함께 지낸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사이 정이 찰싹 붙어버려 입양처로 되돌려 보내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이 아이를 책임지고 낫게 해주어야겠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 후 사몽이의 눈 치료는 두 달간 이어졌다.사몽이는 먼저 ‘제3안검 플랩’이라는 각막 치료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뒤 수술 부위가 터지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면 시간을 제외한 매 30분 간격으로 사몽이의 눈에 안약을 넣어 주어야만 했다. 긴 치료 기간은 사몽이와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고비마다 비몽이가 의젓하고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덕분에 나도 사몽이도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비몽이에 대한 사몽이의 의존도가 유독 심해지는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심지어는 견주에게조차 느끼지 않던 분리불안을 비몽이에게 느끼게 되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가끔 보면 사몽이는 비몽이를 아빠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고맙게도 사몽이는 두 번의 눈 수술을 잘 버텨줬고 각막의 염증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힘든 일은 이제 다 지나간 거라고, 힘들었던 만큼 행복한 기억을 잔뜩 비몽이, 사몽이에게 심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중성화수술, 잘하는 걸까?한동안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비몽이와 사몽이는 뽀드득뽀드득 하얀 눈도 밟아보고, 푸른 잔디밭을 실컷 뛰어놀고, 이갈이도 하며 여느 강아지와 다를 것 없는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사몽이에게 첫 생리가 찾아왔다. 생리 기간 내내 사몽이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배가 아픈지 계속해서 끙끙거리는가 하면, 왕성하던 식욕도 팍 줄어들었다. 사실 남아, 여아 한 쌍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온 이유에는 둘의 새끼를 보고 싶단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몽이의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민고민하다 사몽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 주기로 했다. 수술 일정은 사몽이의 첫 생리가 끝나고 약 석 달 뒤로 잡았다. 사몽이는 여아였으므로 중성화 수술을 하기 위해선 개복을 해야만 했다.초조했다. 수술실 밖에서 사몽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 선택이 맞을까? 괜히 사몽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행히 사몽인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씩씩하게 회복해 주었다. 이때 역시 비몽이는 ‘거 참, 별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의젓한 얼굴로 아픈 사몽이와 못난 초보 견주 곁 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이번엔 비몽이가 각막궤양이라니요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서 비몽이와 사몽이의 생일이 되었다. 1년간 무려 세 번의 수술을 이겨내 준 사몽이에게 고마웠고, 무엇보다 아픈 사몽이를 질투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준 비몽이에게 한없이 미안했다.하지만 그러던 중 비몽이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차우차우는 다른 견종에 비해 유독 얼굴에 주름이 많은 견종이다. 이 때문에 안검내반(쌍꺼풀) 수술을 종종 한다고 들었지만, 내심 우리 집 개들은 아니길 바랐다.하지만 비몽이 역시 새끼 때부터 과도하게 분비되던 눈물 때문에 눈 주변이 늘상 축축하게 되어 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비몽이의 안검내반 수술을 결정했고 이왕 마취하는 김에 중성화 수술까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수술이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몽이 역시 사몽이가 그랬던 것처럼 금세 씻은 듯 나아 펄펄 날아다닐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회복 과정에서 비몽이의 눈은 덧났고 다시 지긋지긋한 각막궤양이 왔다.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조금 회복이 느린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 후 비몽이는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을 뜨지 못하니 막다른 곳에 자꾸만 머리를 부딪쳤다. 억지로 두 눈을 뜨게 해 보려고 해도 자꾸만 발버둥 치는 바람에 손조차 제대로 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비몽이를 다시 병원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마취 후 들여다본 비몽이의 눈 상태는 심각했다.지금껏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었던 비몽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안구에 렌즈를 삽입하여 각막을 보호하는 방법을 써 보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렌즈는 계속 빠져버렸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30분마다 눈에 안약을 넣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싫어할 법한데도 착한 비몽이는 언제나처럼 의젓하게 버텨줬다. 안약을 넣을 때도 잘 참았고, 약도 잘 먹어줬다.다행히 비몽이의 시력은 조금씩 돌아왔다. 지금은 전혀 불편해하지도 않고 상처 역시 아물었지만 그때의 흉터 자국은 훈장처럼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비몽이는 무사히 회복했지만 나는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수술받기 전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 비몽이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두 달간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냈을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꿋꿋하게 참아 준 비몽이를 생각하면 한 편으론 대견하면서도 가슴이 아려온다.다시, 여름돌이켜보면 사몽이의 첫 생리가 끝났던 시기 역시 작년 이맘때였다. 유독 모량이 풍부한 차우차우에게 사계절 중 여름은 아주 위험한 계절이다. 체온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작년의 나는 녀석들과 맞는 첫 여름을 잘 이겨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이스팩을 넣을 수 있는 대리석 침대에서부터 새 선풍기, 공기 순환기를 구비해두는가 하면 냉동실에 얼음을 가득 얼려두기도 했다. 수영장에서 헤엄도 신나게 쳤다. 덕분에 두 녀석은 유독 더웠던 작년 여름을 씩씩하게 이겨냈다.어느새 우리는 벌써 두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물론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도, 앞으로의 여름도, 어쩌면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위기까지도 비몽, 사몽이는 잘 견뎌내 줄 것이라 믿는다.덩치만 컸지 순 장난꾸러기인 이 두 녀석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커다란 행복감을 나는 분명 느끼고 있다.한 생명을 내 인생의 ‘반려’로 맞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고 있는 요즘, 내가 받고 있는 조건 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두 녀석의 견생을 그 누구보다 굳건한 마음으로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다.CREDIT글 사진 이수정에디터 이혜수<비몽사몽 다이어리-내 삶의 한 페이지>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8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0-06-10 1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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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만 도와주세요
- 최 자 매 의 행 복 한 이 별 이 야 기 두 달만 도와주세요
시리를 구조해준 구조 단체와 시리 입양을 결정해준 입양자분 ,그리고 시리의 인생을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끌어준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행운의 존재에게까지 모두 감사하다. 그렇게 임시 보호를 통해 또 다른 인생의 행복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결국, 시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아이를 데려왔다
데리고 오자“긴급 유기견 임시보호 구합니다! 두 달 후 캐나다 해외입양이 확정된 아이라 두 달 동안만 보호해줄 집이 필요해요. 다리 한쪽이 없어 보호소에서 다른 친구들이랑 지내는 것이 힘듭니다. 두 달만 도와주세요.” 언니의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우리 자매는 항상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우리의 책임감, 가족의 동의’ 등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사항들로 인해 결국 ‘나중에’로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시리의 글을 본 언니는 곧장 내 침대로 달려와서는 ‘데리고 올까?’ 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데리고 오자’라고 대답했다. 여러 단체들 중 우리와 인연이 닿은 유기견 보호단체는 파주에 위치하고 있는 ‘행동하는 동물사랑’이었다. 우리는 꽤나 세세하고 긴 ‘임시보호 신청서’를 작성한 후 스태프분과 간단한 통화인터뷰를 통해 신청을 완료했다.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다리 한쪽이 없어서 문턱 같은 걸 잘 못 넘더라고요. 두려워 하는 것 같아요.” 시리에 대한 첫 소개였다. 구조되었을 당시 시리의 몸 구석구석엔 학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 흔적의 일부로 다리 한쪽이 없는 상태였다. 사람에 대해 큰 상처가 있을 만한 시리였지만 고맙게도 시리는 우리 자매에게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줬다. 사료만 준비되어있는 상태에서 시리를 맞이했던 터라 그 외의 강아지 용품이 필요했다. 그래서 활성화가 잘 되어있는 아파트 카페에 우리의 사연 글을 올렸는데, 이게 웬걸. 많은 주민분들이 강아지용 마약 방석부터 샴푸, 강아지 밥그릇, 간식 등 여러 가지 강아지 용품들을 후원해주셨다. 시리 덕에 ‘세상에는 참 따뜻한 사람이 많구나.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 를 몸소 느꼈다. 그리고 이 따뜻함은 내가 이후 계속해서 임시보호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문턱도 넘기 어려워하던 아이는 몇주가 지나자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산책하러 나가면 어찌나 세 발로 잘 뛰어다니는지, 농담 삼아 우리는 사실 시리의 다리가 다섯 개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한번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그 높은 침대에 올라가서 오줌 한강을 만들고는 해맑게 웃고 있던 적도 있었다. 시리가 캐나다로 떠나기 일주일 전, 이제 캐나다로 가면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서운함을 달래 보고자 우리는 시리와 함께하는 강아지 스냅사진을 신청했다.햇볕이 쨍쨍했던 5월의 어느 날, 예쁜 스냅 사진촬영과 동시에 시리와 보냈던 시간을 이제는 행복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며 차차 마음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 날 폭풍 오열을 했지만 말이다. 이별 당일,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분이 시리를 데리러 직접 우리 집으로 와 주셨다. 입양자분을 뵙자마자 시리를 대하는 눈빛, 말투부터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약간은 불안했던 마음이 단번에 푹 놓였다. 캐나다에서는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런 유기견 입양 시스템이 굉장히 생소하다고 하셨다. 입양자분은 개를 한 마리 더 키우고 싶어 찾아보다가 우리나라에 버려진 유기견들이 많다는 현실을 알고 유기견 입양을 결심했다고 하셨다. 사실 이런 상황에 보통 같으면 최대한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열심히 고르고 골라 고심 끝에 입양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는 강아지를 데려올 때마저도 자신만의 이상형을 찾아 헤맨다. 다리 한쪽이 없는 다 큰 슈나우저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런 결정을 한 입양자분이야말로 정말 날개 없는 천사가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부랴부랴 시리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쇼핑백에 넣으며 이별을 준비했다. ▲캐나다 집에서 보내 온 시리의 근황 사진.그리고 시추 친구와 함께 넓은 마당이 있는 캐나다 집은 우리 집보다도 시리가 훨씬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임이 틀림없다. 가끔 메신저로 시리의 사진과 동영상을 받는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싱글벙글하다. 마음씨 좋은 엄마·아빠, 장난꾸러기 시추 친구, 언제든 뛰어놀 수 있는 마당, 캐나다 특유의 푸른 하늘까지 시리가 지내기에 완벽한 환경이다. 글·사진 최세화 에디터 글월문거누파파네 Dog family은퇴백수 아빠 & 유기견이었다가 가족이된 건우 & 여행작가 누나 의 아무 이야기입니다 ♡ 겁짱이에서 채널명 변경했어요 :)www.youtube.com - STORY | 2020-06-10 14: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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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rning Point
- 헝 가 리 안 비 즐 라Turning Point헝가리안 비즐라라는 견종이 아직은 한국에서 생소한 게 당연하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생김새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헝가리안 비즐라는 헝가리 국견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진돗개 정도 되려나? 헝가리안 비즐라는 포인터류에 속하는 수렵견 중에서도 크기가 가장 작고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해서 사냥보다는 집에서 키우는 가정견으로 흔하다. 이런 견종이 또 있을까?
나는 비즐라에게 엄청난 끌림을 받았다.
헝가리안 비즐라 (Hungarian Vizsla)헝가리안 비즐라는 “velcro dog” 또는 “velcro vizsla”라는 별명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벨크로. 흔히 우리는 ‘찍찍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헝가리안 비즐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항상 곁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 아이들은 자신이 사 랑받고 있음을 알고 사람의 손 끝에서 전해지는 진심까지도 느낄 줄 아는 아이들인 것 같다. 마냥 아기 같은 이 아이들도 가끔 듬직한 순간이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을 마치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굳게 믿는 것 같을 때다. 가끔 일이 바빠서 신경을 못 쓸 때 문득 아이들이 생각나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어딘가에서 묵묵히 나에게 시선을 꽂은 채로 졸거나 괜히 마당을 보고 짖기도 하고, 아니면 새들을 쫓아가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고 있기도 한다. 어설프긴 하지만 주인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버티는 아이들을 볼때면 솔직히 든든하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첫 만남우리 집도 처음부터 대가족은 아니었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두 마리 강아지와 함께 사는 평범한가족이었다. 우리 가족은 잭 러셀 테리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엄마는 승마를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가 계셨던 승마장에는 예로부터 헝가리안 비즐라를 키 워왔고, 승마장에 있는 말들과 사람들 모두 비즐라 들과 두꺼운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있었다. 엄마가 유학을 가셨을 때, 처음에는 독일어도 미숙하고 현지 환경도 익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엄마를 먼저 반겨주었던 녀석들이 바로 비즐라 삼총사였다. 그중에 한 마리는 항상 엄마를 따라다녔는데, 식사시간에 종종 엄마의 허벅지에 턱을 괴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음식을 나눠 먹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엄마는 웃을 일이 많아지셨고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상황에도 버틸 수 있으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부모님과 처음에 독일의 승마장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던 존재가 바로 고마운 비즐라들이었다. 페티와 루벤이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된 계기도 다 이 덕분이다. 엄마는 한국에 돌아오신 후 독일에서 함께 생활했던 비즐라 아이들에 관해 얘기를 종종 하셨고 아빠도 독일을 방문하셨을 때 이미 한눈에 반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독일 승마장 에 헝가리안 비즐라를 입양하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태어난 페티와 루벤은 임시 보호 기간이 끝나고 약 4개월 뒤, 독일에서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천사 같은 대형견둘 중 한국에 먼저 도착한 것은 페티였다. 페티와의 첫 만 남은 내가 유학을 하던 중,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루어졌다. 첫인상은 “그냥 천사가 따로 없네!”였다.위에서 말했다시피 이미 우리 집 식구였던 루이와 율러는 아는 사람은 아는, 절대 지치지 않는 잭 러셀 테리어이다. 이 아이들은 사냥개의 유전자를 가지고있어 그런지 작은 체구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꼬맹이들보다 최소 세배는 큰 헝가리안 비즐라 아이들은 사람 무릎에 살 비비는 것을 좋아하는 수줍은 아이들이었다. 매일매일 시끌벅적했던 우리 집이 페티가 오면서 좀 더 정돈된 듯했다. 이런 성격의 강아지는 처음 본다고 해야 하나? 아직 아기지만 속이 마냥 깊고 맑은 아이인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천사 같은 대형견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건 아니었다. 루벤까지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졌다. 루벤까지 집에 있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우리가 살던 빌라에는 작은 공용정원이 있었는데 그곳엔 울타리가 따로 없어 공원에 나가서 산책해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항상 리드 줄을 사용해야 했고, 우리도 그게 아이들에게 온전한 자유로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풀어놓을 곳이 마땅히 없어 안쓰럽고 답답했었다. 보통의 강아지라면, 대형견이라면 특히나 더, 뛰어다니고 냄새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게 당연할진대 항상 묶여서 보행의 제한이 있다는 것이 미안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산책을 한 마리씩 따로 나가야 했고 겨울에는 심하게 넘어지는 일들도 종종 생겼었다.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이사를 결심했다. 적당한 밸런스가 중요했다. 사람과 강아지가 공존하는, 서로가 어느 정도 양보하고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 엄마는 일 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스스로 공부해 나가시면서 아이들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게 남은 삶을 살 수 있는 집이란 어떤 집일지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실현해 나가고 계셨다. 그리고 곧 그 집은 지금의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되었다.그동안에 우리에게 새 식구도 찾아왔다. 페티와 루벤의 새끼가 한 마리 태어났다! 외동딸로 태어난 로지는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귀여운 강아지로 커 나갔고, 이마트 출 신 닥스훈트 라온이는 재작년 우리 집의 막내로 들어왔다.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한 지금, 아이들은 마당과 집안을 오가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자리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나와 동생 방에 몰래 들어가서 양말을 훔쳐 내려오기도 하고, 사람 품에 있고 싶다고 보채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집 은 아이들의 일상 대부분을 보내고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페티와 루벤을 보고 있자면 든든하기도 하고 이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벌써 여섯 살이 된 페티와 루벤, 다섯 살인 로지….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가끔 조금 슬프고 더 잘해주지 못한 점이 많은 것 같아 미안할 뿐이지만 이 아이들 덕분에 바뀐 우리 가족의 삶과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 원하는 것이 다 다르고, 성격과 성향이 다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좋은 견주가 되고 싶다.글·사진 김주리 에디터 글월문 - STORY | 2020-06-10 14: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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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저는 처음이라
- 너 는 내 운 명진저는 처음이라
너랑 나랑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필요한지 나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비록 네가 매일 간식을 사달라고 조른다고 해도 말이야
부족한 엄마라 미안해진저를 데리고 오자마자 남편과 나는 교육에 들어갔다. 일단 앉아와 기다려만 가르쳐 보기로 한 우리는 미리 사둔 훈련용 치즈 볼로 훈련에 돌입했다. 진저의 습득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고 팔불출 개 엄마, 아빠는 ‘이래서 시바가 똑똑한가 보다’ 하고 서로 어깨를 으쓱하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저는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그 뒤로도 진저의 설사는 수차례 반복됐다. 진저의 전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혹시 간식 주셨어요?” 하는 말에 아차! 싶었다. 분명 진저를 데려올 때 간식은 더 클 때까지 절대 주지 말라고 했는데, 훈련해야겠다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결국 진저의 설사는 주사를 맞고 나서야 멈췄다.모든 아기강아지들이 그렇듯 진저는 호기심이 많았다. 깨어 있는 동안은 쉴 새 없이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날도 꼭두새벽부터 우리를 깨우고 나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실 창틀을 짧은 다리로 낑낑대며 올라가서 창밖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뒤돌아서 폴짝! 하고 뛰어내리는 순간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진저는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너무 놀라 진저의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다시 걷게도 해봤지만 진저는 다리가 불편한지 계속 절면서 주저앉아버렸다.그 모습에 남편과 나는 이성을 잃은 채 인근에 있는 24시간 동물병원들을 뒤지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연결된 한 병원에 당직 선생님에게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두서 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가 뛰어내린 높이가 얼마나 되죠?”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흑…. 어…그게 제 손 한 뼘 정도요.....?" …………………(잠시 정적)“아, 그 정도 높이면 단순히 근육이 놀란 것 같은데 한 시간 정도 지나고도 다리를 절면 그때 데리고 오세요.” 남편과 나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진저를 지켜봤고 다행히 30분 정도 지나고 나니 진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방정을 떨면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진저가 우리 집에 온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왼쪽 눈 윗 부분에 희미하게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베넷 털이 빠지는 건가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치 원형탈모처럼 그 부위만 빠지고 있었다. 추천받은 병원을 가서 연고처방을 받았는데 나아지기는커녕 털이 빠진 부위는 더 넓어지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진저의 땜빵 정체가 모낭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받은 후 다행히 진저의 털은 다시 자라났다.처음이기에 당연히모를 수밖에 없다
엄마는 처음이라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온 남편이 면봉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온 진저는 면봉을 물고 도망갔다. 그 시절에 진저는 한창무언가를 물고 도망가면서 장난을 치던 때라 나는 면봉을 빼앗기 위해 간식으로 살살 유인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저는 면봉을 입에 문 채로 간식도 먹으려 하다가 면봉을 꿀꺽 삼켜버렸다. 순간 나와 남편은 얼음이 되었다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다니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빨리 오는 게 좋겠다는 원장님에 말에 나는 진저를 안고 병원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퇴근하셨던 외과 원장님이 다시 오셔서 내시경으로 면봉을 빼내셨고, 진저는 하루 입원 후에 큰 탈 없이 잘 회복했다. 내시경을 마치고 아직 마취가 풀리지도 않은 진저가 나에게 오겠다며 회복실 케이지 안에서 버둥거리는 걸 보고 남편하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진저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몇 번의 호된 부모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내 손에 이 작은 생명이 좌지우지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은 웬만한 일에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때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은 아마 초보 엄마, 아빠들은 다 한 번씩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초보 부모에겐 매번 큰 고민과 선택이기 때문이다. 매번 모든 일에 무턱대고 병원을 찾아가긴 부담스러워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구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전문가의 조언은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이렇게나 큰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었구나. 앞으로도 어떤 일들이 이 초보 엄마, 아빠의 가슴을 철렁이게 할까?글·사진 장성희 에디터 조문주 - STORY | 2020-06-10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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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쨈과 함께
- 쨈 에 게 쓰 는 편 지쨈과 함께 2016년 12월 10일, 쨈이 우리에게 처음 온 날이다. 그러니까 겨울은 쨈과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같이 보낸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작고 솜털 같은 쨈이 엄마 품 안에서 벌벌 떨며 집으로 들어오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천사 같은 쨈의 모습에 감탄하는 것도 잠깐, 콧물을 흘리는 저 강아지를 따뜻하게 해 줘야겠다는 마음에 온 집안의 담요를 다 가져와 쨈의 몸에 칭칭 둘렀던 기억이 난다. 향기로운 봄쨈의 이름은 처음부터 쨈이 아니었다. 엄마가 ‘몽이’라는 이름을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언니와 내가 좋아하던 웹툰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에 쨈이라는 강아지와 주인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 웹툰을 너무 감명 깊게 본 나머지 이 강아지와 우리는 겨울에 만났으니 무조건 쨈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마냥 웃기지만 처음부터 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리에게 온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쨈은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쨈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사랑스럽다. 만져달라고 나의 손을 긁으며 애교를 피울때면 속상했던 마음도 사르르 녹는다. 그래서 예쁜 쨈의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으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세상 사람 모두가 우리 쨈 귀여운 걸 알아 줬으면 하는 팔불출 같은 마음도 있다. 사진으로는 쨈의 실물이 다 담기지 않는 게 안타깝지만, 앨범의 사진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쨈과 함께한 추억도 그만큼 쌓이는 것 같아 행복하다. 우리 가족끼리 부르는 쨈 화보 버전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공을 들이는 화보가 바로 봄에 찍는 벚꽃 사진이다. 분홍색, 노란색 등 생긋하고 향기로운 꽃들과 쨈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것이 너무 조화롭기 때문이다. 똘망똘망한 눈과 포실한 털은 그 어느 계절보다도 봄과 가장 어울린다. 쨈을 꽃과 함께 찍는 것 그 자체로도 이미 화보라고 생각한다. 가장 포근하고 부드러운 계절인 봄, 그 속의 쨈은 언제나 사랑스운 내 가족이다.여름도 쨈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여름의 쨈은 유독 바닥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다. 몇 걸음 걷다가 철퍼덕, 몇 걸음 걷다가 철퍼덕, 대짜로 뻗어버리기에 십상이다. 집안에서 쨈이 보이지 않으면 주저 없이 화장실을 쳐다보게 된다. 우리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인 화장실 변기 옆 타워 위에서 배를 드러내 놓고 자고 있는 쨈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집 안 한구석에서 마치 사람처럼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특히 여름에 자주 볼 수 있는 쨈의 전매특허 포즈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볼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쨈의 배를 더 자주 쓰다듬어줄 수 있으니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른 개와 달리 산책을 싫어하는 쨈은 무더운 날씨에 나가는 것을 질색한다. 그런데도 바깥 공기를 쐬어 주고 싶은 마음에 항상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후에 쨈을 안고 집을 나선다.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쨈을 안고 산책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소확행이 쨈에게도 무더운 여름을 잊을 수 있는 시원한 소확행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는 쨈, 먹는 쨈, 뛰는 쨈. 수많은 쨈의 모습을 찍어왔지만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저런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앞으로도 우리 곁에서 무럭무럭 자랄 쨈의 건강한 모습이 가장 기대된다. 항상 빠른 속도로 나와 달리던 쨈, 내가 밥을 먹을 때면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쨈, 나와 같이 잠들던 쨈. 언제까지나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가장 활기 넘치고, 가장 사랑스럽게 말이다.아마 우리 가족은 죽을 때까지 쨈과 함께 있을 운명일 것이고, 그래야 한다. 이 짧고도 긴 편지를 쨈에게 전하며, 글을 마친다.글·사진 최윤서 에디터 조문주본 콘텐츠는 2020년 MAGAZINE P 8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무단 복제. 사용 시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STORY | 2020-06-10 14: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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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가 서로에게
-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제주생활을 그저 마음으로 동경만 했을 겁니다.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 제이, 레이, 써니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에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우리는 반려가족이랍니다.애완과 반려저는 사랑스러운 장난감 같은 존재로서 생명을 대하는 의미가 담긴 듯한 단어, ‘애완’보다는 평생을 함께한다는 의미의 ‘반려’가 더 와 닿는 한 사람입니다. 벌써 제이와 레이, 써니를 가족으로 맞이한 지 2년이 훌쩍 다 되어 가는군요. 광복절이면 사랑스러운 첫 가족 써니가 켄넬에서 독립을 한 지 2주년이 된답니다. 아기 아기했던 모습들은 사진을 들춰봐야 새삼 기억날 만큼 이제는 어엿한 성견의 포스가 가득하죠. 제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너무 귀여운 나머지, 레이와 써니의 어릴 때 모습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아쉽기 도 합니다. 레이는 10개월, 써니는 18개월이 되었을 때 가족이 되었거든요. 그래도, 살아 온 날보다 함께 살아갈 날이 더 오래 남았다는 사실을 나름의 위안으로 삼고 있어요. 아이들 덕분에 매일이 행복하니까요.아이들과 함께하면서 휴가는커녕 잠시 집을 비우는 것에도 신경이 쓰여 틈만 나면 산책을 시켜주려고 노력했지만, 복잡한 도시생활에서는 사실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여건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제주생활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답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들이 널려있으니까요.얼마에요?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개 딸들과 산책하러 다니다 보면 가끔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특이하게 생겼네, 얼마에요?”이런 질문을 들으면 괜히 내 안에 숨은 다중이가 불쑥 올라와요. 순순히 말하고 싶지 않아 “아이마다 천차만별이에요.”라고 말하고 돌아서곤 하죠.물론 저도 처음 개 딸들과 가족이 되었을 때는 책임에 따른 비용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였는지는 현재 전혀 중요하지 않고, 또 굳이 각자의 몸값이 얼마인지에 따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므로 1도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의 개성을 가진 녀석들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즐거운 날을 보내는 것만 늘 꿈꾸는 견상궁입니다. 반려동물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비싸다면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을까요? 몸값이 얼마이건 가족으로 맞이한 이상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가족을 손을 놓는 일은 없어야겠죠. 아이들은 우리가 부자이건, 재주가 있건, 똑똑하건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이 아이들을 반려가족으로 대하는지 애완동물로 대하는지, 소유물로 대하는지를 보면 우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잔인한 8월이 되지 않기를휴가철이면 버려지는 동물들이 급증한다는 뉴스. 올해는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제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야생의 무리도 가끔 만나곤 하는 데요, 어떤 이유로 떠돌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생에서 고단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선뜻 손길을 내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도움을 준다는 핑계로 포획하고 2주의 공고 기간 동안 입양되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 되기 때문이죠. 제주는 인구대비 유기동물 발생률 1위라고 하더라고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입도할 때는 함께 왔다가 버려두고 떠나는 사람들도 유기동물 발생률 수치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고 하네요.부끄럽게도 아직 유기된 생명을 거두기에는 마음의 그릇이 크고 넓지 못해 지금은 상처받은 아이들을 보듬어 줄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먼 미래의 일로 생각만 하고 있지만, 하루를 온전히 함께해 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언젠가는 꼭 용기를 내어보려고 합니다. 아직은 마음뿐인 견상궁이지만 주변에는 언젠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먼저 한 걸음 앞서 걷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멋짐 폭발하는 반려가족들이죠?올 휴가철에는 유기되는 아이들이 없더라는 슈퍼팔월 빅뉴스가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전에서 “유기”라는 단어가 없어지도록 묵직한 슈퍼 책임감을 장착 해보아요!글 김윤정 사진 이성훈에디터 글월문본 콘텐츠는 2020년 MAGAZINE P 8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 사용 시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STORY | 2020-06-10 14:4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