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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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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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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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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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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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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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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0-06-10 14: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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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잠든 사이에
- 명 랑 노 견 생 활 기 당신이 잠든 사이에전에는 꿈도 못 꿨던 많은 일을 이뿌니의 노화로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에서 다 알아줄 정도로 거친 개였던 이뿌니는 나이가 드니 저절로 순해지고 말았다. 전에는 나를 제외한 누구도 이뿌니를 1분 이상 안아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의 품에서도 으르릉거리지 않고 가만히 안겨있다. 그래야 한다는 제 고집도 잊은 걸까. 어쨌든 반겨야 할 일이다. 덕분에 요즘은 집에서 목욕도 한다. 최근에는 생애 최초로 미용도 시도해보았다. 정말로 이런 날이 올 줄이야.순둥이와 여름나기이뿌니의 배변 활동이 엉망진창이 된 건반년 정도가 되었다. 아무 데나 싸도 상관은 없지만 문제는 그것을 밟고 또 밟고 그발로 온 집안을 정처 없이 배회한다는 것이다. 이뿌니는 우리가 잠든 사이에 홀로 일어나 그렇게 자신만의 시간을 즐긴다.당연히 수습은 우리의 몫, 이뿌니의 목욕은 그 때문에 시작되었다. 예전에 이뿌니는 한두 달에 한 번 샵에서만 목욕을 할 수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이틀에 한 번꼴로 응가를 밟으니 감당이 안 되어 우리는큰 용기를 내봤다. 욕실 바닥에 이뿌니를 세워두고 남편이 두 손으로 이뿌니를 붙잡아주면 나는 샤워기 호스를 들고 네 발 중 어느 발이 주범인가 하나씩 색출하는 데, 이때 시간을 지체하면 큰일 난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하고 있던 이뿌니의 성질이 슬그머니 살아나기 때문이다. 순둥이 다된 것 같았던 노견이 아직 살아있다며 힘껏 아르르를 시전한다. 앞발은 반항이 심하지만 그래 봤자 2인 1조 부부 목욕 단을 이겨내진 못한다. 그렇게 발 씻기를 성공한 우리는 자신감이 생겼고 허리부터 가슴까지 차츰차츰 범위를 늘려갔다. 현재는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 목욕이 가능하게 되었다. 똥 밟는 개가 이리 목욕비를 벌어주니 감사한 일이다.순둥이 노견의 기적여름이 시작되기 전 서늘하다 싶은 기온에도 체온조절이 잘 안 되는 이뿌니에겐 헐떡거림이 생겼다. 하지만 본격적 으로 에어컨에 의지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였다. 이뿌니의 체온을 어찌 내려줄까 고민하다가 털이라도 잘라줘야겠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미용 이후 아직 노견을 받아주겠다는 미용실을 찾지 못했다. 10살만 넘어도 안 받아 주는 곳도 많다는데 18세 노견은 위험 부담이 크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저 털을 다 어쩐담. 자가 미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우리 집엔 여태 미용기와 발톱 깎기조차 없었다. 나는 내 앞머리를 자르려 사둔 미용 가위 하나를 들고 이뿌니가 잠든 사이 엉덩이 털부터 쓱쓱 잘라보았다. 이뿌니가 세상 모르고 자길래 뒷다리까지 과감하게 가위를 들이댔다. 과연 이런 상태로 얘가 밖에 나가도 될까 싶을 정도로 털은 계단식으로 이상하게 잘렸다. 이뿌니가 거울을 볼 수 있었다면 이게 뭐냐며 난동을 피우며 울었을 것이다. 잘라놓고 나니 솔직히 나도 약간 미안한 감은 있었는데 이뿌니가 조금이라도 더위를 이길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뿌니가 깊은 잠에 빠질 때마다 가위를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뭣 모르고 자르느라 계단식 미용이 돼버렸지만 숱 가위를 이용하니 제법 털 모양이 다듬어졌다. 예쁜 털 모양까진 바라지 않고 그저 시원하게 자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단정해졌다. 오호라, 나에게도 이런 재능이? 숱 가위의 마법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뿌니가 잠들 때마다 조금씩, 보름 이상 걸려 몸통과 네 다리까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믿어지지 않는 순둥이 노견의 기적. 물론 목욕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얼굴은 건들 수 없지만 이게 어디냐 싶다. 이번 달에는 여기까지지만 곧 얼굴도 손댈 수있는 날도 올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이뿌니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너라서 가능한 지금반면 전에는 하지 않았어도 될 일도 따라 생겼다. 요즘 이뿌니는 자꾸만 밥을 먹다 주저앉는다. 전에는 밥만 퍼주면 되었는데 지금은 뒷다리를 붙잡아 부축해줘야 한다. 고드름처럼 길게 늘어진 침을 닦아주는 일은 하루에 오십 번은 한다. 쉬가 마려울 땐 배변 판 앞까지 잘만 걸어갔던 전과 달리 조준이 매번 빗나간다. 그래서 이뿌니가 쉬할 때마다 밖으로 흐르진 않았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자다 일어나 멍하니 멈춰 서 있는 이뿌니를 발견할 때면 여러번 이름을 불러 현실로 돌아오게 해주기도 한다. 혹여나 걷는 법을 잊은 건 아닐까 한 걸음씩 걸음을 유도해준다.산책하러 나갔을 땐 내리막길로만 와다다다 내빼는 이뿌니를 연행해오거나 리드 줄로 묶어 둘 땐 1~2분 간격으로 다리에 꼬인 줄 풀어주기도 하는 일은 번번이 산책 중에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작년만 해도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가만히 앉아 이뿌니의 움직임을 눈으로만 쫓던 우아한 피크닉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는 일도 사치가 되었다. 돗자리에 엉덩이를 붙일 시간 없이 계속해서 이뿌니를 주워와야만 한다. 내가 뭘 하든 낮잠 잘 시간엔 제 혼자서도 침대에 올라가 잘 자곤 했는데 지금은 내가 옆에 있어야만 잠을 자겠단다. 이뿌니를 재워놓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나와 내 할 일을 하려고 하면 어느샌가 잠에서 깬 이뿌니가 쪼르르 뒤따라 와있다. 그것도 무너지는 뒷다리를 하고선 내 옆에서 빙빙 돌고 있으니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뿌 니를 다시 방으로 데리고 와야만 한다. 이뿌니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는 일도 전에는 할 필요 없었던 일이다. 온종일 노견의 수발을 들기에 바쁘지만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고된 즐거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치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 감정들도 사그라지고 나면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이리 바쁜 것도 다 이뿌니가내 옆에 있어 줄 때나 가능한 일이니까.CREDIT글·사진 한진 에디터 조문주
- STORY | 2020-06-10 14: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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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집고양이와 놀아주는 법
- 스위스 집사의 삶처음에는 스위스 펫샵에 가서 여러 가지 장난감을 구매해 봤다.조그만 쥐돌이 인형을 사 왔을 때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노아와 폼폼은 작은 인형을 축구공 차듯 차며 한 시간이 넘도록 쥐돌이에게 열광했다. 그때부터 장난감을 사 모으는 집사의 삶이 시작되었다.모든 장난감에 열렬하게 반응하던 노아와 폼폼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깃털 막대의 털을 다 뽑아 망가뜨리고, 몇 번 가지고 논 장난감에도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그 모습에 애간장이 타 여러 번 펫샵에 가서 장난감을 사 왔지만, 스위스 펫샵에서 파는 고양이용 장난감의 종류는 한정적이고, 그마저도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스위스는 동물의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인데 어째서 고양이용 장난감의 수는 적은 걸까. 스위스 고양이는 ‘외출 냥이’스위스는 고양이를 집안에만 두고 키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스위스 가정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고양이는 자유롭게 집 밖을 나다닐 수 있는 ‘외출 냥이’라고 한다.외출 냥이는 인위적인 사냥놀이가 굳이 필요 없다. 바깥에서 진짜 사냥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신선한 공기, 푸른 잔디, 천연 나무 스크래쳐 등을 마음껏 즐기고, 따스한 햇볕 아래 광합성도 즐기다가 집에 돌아온다.집고양이들처럼 매일 똑같은 풍경을 보지 않아 지루할 틈이 없다. 물론 이것은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사는 경우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더라도 외출 냥이로 키울 수 있다.스위스의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 건물 외벽에 고양이가 딛고 내려갈 수 있는, 일명 ‘고양이 사다리’를 설치하기도 한다.하지만 이 또한 아파트 층수가 낮은 경우에서나 실현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7층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노아와 폼폼은 집고양이로 사는 것이 안전하다. 노아와 폼폼의 한국 장난감 사랑올겨울,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고양이 장난감을 몇 가지 구매해왔다.스위스와 비교하면 종류가 아주 다양했고, 질은 훨씬 좋은데 가격은 저렴했다. 한국의 고양이들은 집 안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스위스와 비교해 한국의 고양이 장난감 시장이 훨씬 큰 것 같았다.한국에서 사 온 장난감을 접한 노아와 폼폼의 반응은 아주 대단했다.특히 사냥 본능이 강한 폼폼의 경우, 한국에서 사 온 낚싯대 모양의 장난감을 잡기 위해 믿을 수 없는 높이로 연달아 점프해 가며 열심히 사냥감을 쫓았다.사냥감을 낚아챈 후에는 ‘으르르’ 소리를 내며 격한 만족감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한국산 낚싯대 장난감은 고리에 다는 사냥감만 교체해주면 거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사냥감을 여러 종류 갖춰 두고, 자주 교체해주면 아이들이 금세 질리지도 않는다.무엇보다 스위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사냥놀이에 시큰둥해진 아이들에게 다시 격한 사냥 본능을&nb
- STORY | 2020-06-10 14: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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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떼랑 소꿉놀이
올해로 4살,사람의 시간으로 계산하면서른세 살 정도 되었으려나.그러니까 라떼는 지금우리 부부와 또래나 다름없다.
라떼에게 남편은 라떼에게 남편은 아빠와 같다.겁이 많아 남의 귀를 파주거나 발톱을 깎아주는 걸 무서워해서 연애 시절, 나는 남편을 무릎에 눕혀 귀 한 번 파준 적이 없다.그러다 보니, 라떼의 발톱을 깎아주는 것도, 귀를 파주는 것도, 목욕도, 그리고 모래통 청소까지 전부 남편이 담당하고 있다.남편이 하는 일이 라떼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녀석도 자신을 위해 이것저것 고된 일을 한다는 걸 아는지 남편을 제법 잘 따른다.퇴근해서 집에 같이 돌아와도 유독 남편에게만 더 달라붙어 ‘냐앙냐앙’하며 애교를 부리고, 나 빼고 둘만 있을 땐 남편의 배 위로 올라가 잠을 자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와 달라고 사정하고 빌어도 와주지 않더니 말이다. 그리고 남편이 크고 거칠거칠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라떼를 쓰다듬으면, 마치 그루밍을 받는 느낌인지 어쩔 땐 스스로 다가와 남편의 손에 몸을 비비고 문지르며 셀프 마사지를 한다. 아무튼 내가 볼 땐, 늘 라떼의 두 눈엔 '아빠 최고!'라고 쓰여 있고 아빠에게 ‘하트 뿅뿅’인 느낌이다. 나는 라떼에게 나도 나름대로 라떼를 위한 일을 한다. 바로 놀아주기 담당. 그리고 사료나 모래, 간식, 장난감 등의 재고 상태를 늘 파악하고 미리 구매하는 역할도 한다.간혹 집 안 가득 굴러다니는 털 뭉치를 청소하는 일도 내 역할이다. 남편은 손이 조금 느린 편이라 라떼를 놀아주는 일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게 놀아줄 수 있다고 자부한다.잠자리 모양의 낚싯대를 움직일 땐 마치 잠자리로 빙의라도 한 듯, 라떼를 약 올리며 애를 태운다.숨이 헥헥 차오를 때까지 신나게 놀아주고서 간식을 주면 라떼는 모든 걸 가진 양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라떼의 표정만으로도 느껴진다. 하지만 같이 노는 친구라 그런지, 남편보다 체구가 작아 자신이랑 비슷하다 느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나를 엄마보다는 동생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내가 거실에 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면 멀리서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지켜보다 갑자기 달려와 내 허벅지에 냥 펀치를 날리고 도망가고, 양반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다가와 무릎 아래에 깔린 내 발가락을 옥수수 알갱이를 털 듯 깨물고 긁는다.라떼가 나를 만만한 여동생, 혹은 움직이는 커다란 장난감으로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들 라떼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5년 차 부부로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 라떼는 아들내미나 다름없다.호기심이 많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킁킁거리고 ‘냐앙냐앙’ 거리며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내가 끌어안고 뽀뽀하거나 좀 싫어하는 짓을 해도 묵묵히 참아주는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하는 라떼.스스럼없이 무릎에 올라와 내 품에 먼저 파고들진 않지만 요리를 하느라 주방에 있을 때도, 텔레비전을 보며 거실에 있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도 늘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있는 다정한 녀석. 는 언젠가 라떼가 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라떼를 안고 창밖을 보며 "라떼야, 저게 뭐야? 저건 자동차~ 저건 나무~ 그리고 저건 구름~이야. 따라 해봐!" 하고 말을 가르치기도 한다.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웃음거리가 되곤 하지만, 라떼가 진짜 말하게 된다면 유튜브로 꼭 방송하라는 친구도 있었다.물론 사람의 언어를 따라할 순 없겠지만, 함께 산 세월이 있으니 적어도 속으론 한국말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그만큼 라떼를 고양이가 아닌 아들로 생각한다.이렇게 착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와준 건 정말 큰 축복이다. 라떼의 생각을 알 순 없지만 라떼에게 우리가 좋은 부모이자, 친구이자, 형제였으면 좋겠다.포근한 일상 속에서 우리 가족 오래오래 함께 하길 ….CREDIT글 사진 김예지에디터 이유경<라떼랑 소꿉놀이-언제나 우리 가까이>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STORY | 2020-06-10 14: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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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찾아온 가을 선물
폴리, 하니와 함께 맞이하는세 번째 가을이다.가을은 멋진 계절이지만솔직히 나는 가을을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일단 해가 짧아지는 게 싫고옷이 점점 두껍고 무거워져서어깨가 결리는 게 힘들어서 싫다.그리고 ‘이렇게 한 해가 가고또 나이를 먹겠구나’하고 느껴지는 그 자조 섞인 감정이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소위 ‘FW 시즌’은 영 별로다.
첫 만남, 사무실에 고양이가?폴리와 하니를 처음 만난 것도 내 생일 즈음인 7월 초였다.당시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고심 끝에 퇴사를 결정하고 공유 사무실을 찾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관심 가는 몇 군데를 우선적으로 추렸고, 당시 회사 근처였던 성수동에 위치한 사무실을 첫 번째로 방문했다.사무실에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평소 개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겸사겸사 그런 아쉬운 마음도 달래고, 사람에 치여 지친 마음을 귀여운 털뭉치 고양이를 통해 위로받고 싶다는 흑심을 품고 가보니 정말로 뱅갈 고양이 두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반겨주었다.고양이 집사이자 사무실 주인도 친절했다. 또 한강도 무척 가까워 시야가 탁 트인다는 점, 지금은 엄청 유명해진, 작지만 멋진 카페가 지척에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나는 더 볼 것도 없겠다 싶어 바로 그곳으로 결정해버렸다.새하얗고 복슬거리는 털, 도도한 몸짓으로 사뿐사뿐 바닥을 디디는 모습. 내가 상상하던 고양이는바로 그런 모습이었다.그런데 웬걸? 날렵해 보이는 마른 체구, 짧은 털, 게다가 조금은 무섭고 센(?) 호피 무늬라니!저 뒤편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룩덜룩하고 복잡한 줄무늬를 지닌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두 녀석들은 도도하기는커녕 사무실에 사람이 오면 마치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으러 다가오기까지 했다.그렇게 이름도 행동도 생소한 ‘뱅갈 고양이’를 처음으로 만난 나는 적잖이 놀랐다.삶, 고양이에게로 흐르다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뱅갈 고양이가 품종묘인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껄껄 웃으며 ‘길냥이를 냥줍하신거냐’ 는 말로 무식을 뽐내, ‘뱅갈은 제 로망묘였는데요…’라고 말하는 고양이 주인의 말문을 막아버렸다.지금은 당연히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는 뱅갈이고 하얀 고양이는 어딘가 심심하고 밋밋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지경에 다다르고 말았지만 뭐, 그때는 그랬다.그렇게 나는 회사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자영업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오이스터’라는 브랜드를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역마살이 낀 내 관심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과 방랑이다.그래서 초기에 내가 하고자 했던 디자인 역시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디자이너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방황했었다.그럼에도 나는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기 위해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작업실에 얼굴도장을 찍었고, 애교 많고 영리한 폴리와 하니에게 점점 더 푹 빠지고 말았다.그렇게 고양이를 그리며 조금씩 고양이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무렵, 더는 사무실을 유지할 수 없다며 ‘혹시 고양이를 데려가실 수 있느냐’는 주인의 말에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했다.처음 만났던 때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18년의 여름이었다.그렇게 내 삶에는 ‘고양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하나 추가되었다. 디자인의 방향 역시 고양이에게로 흘렀다. 너희가 있어 풍성한 가을폴리, 하니와 함께 살아가기란 정말이지 쉽지만은 않다.요 뱅갈 녀석들은 겉으로는 새침해 보이는 레이디임에도 실은 완전히 천방지축에 에너지가 넘쳐흘러서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고선 배기질 못한다.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장난감을 물고 와서 놀아달라고 하질 않나, 숨겨 놓은 간식까지 척 하니 찾아 물고 와서 내 앞에 떨어뜨리질 않나,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양이는 잠이 많고 고고하고 얌전한 동물이라는 상식이 와장창 깨진 지는 이미 오래다.이 녀석들과 함께 한지도 어느덧 벌써 3년째. 디자인하랴 잡무하랴 냥님들 모시랴 정말 정신이 멀쩡히 붙어서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그래서 경고하건대, 잠 많고 조용한 고양이를 원한다면 뱅갈은 절대적으로 피하시라!뱅갈이야말로 고양이 계의 비글임을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는데, 소름 끼치게도 비글과 뱅갈은 초성마저 같다!사실 나는 강아지 중에 비글을 무척 좋아했는데, 나름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중이다. 하하!온종일 집사를 부려먹는 귀여운 악마들에게 푹 빠져있다 보면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 정신은 육체를 이탈하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온하다.요즘처럼 날이 선선해지면 곧바로 무릎으로 올라와서 골골거리며 노래 부르는 폴리와 품 속으로 쏙 파고들어 오는 하니 덕분에 늘 고양이가 풍성한 가을을 누릴 수 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폴리는 나와 함께 자판을 누르고 있고 하니는 놀아달라고 어깨에 올라타서 앙탈을 부리고 있어서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하고 카샤카샤(고양이 장난감)를 힘차게 흔들러 가야 한다.문을 활짝 열어 기분 좋은 바람 냄새도 맡게 해줘야겠다. 글.사진 장보영에디터 이혜수<오이스터 스튜디오-여름에 찾아온 가을 선물>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STORY | 2020-06-10 14: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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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의 체온
보리와 굴비. 둘은 모두 한 여름에 나와 만났다. 지금까지 보리와 함께 보낸 여름은 세 번. 굴비와 함께 보낸 여름은 두 번이다. 보리는 에어컨이 옵션으로 들어있던 신랑의 자취방 ‘장미빌’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우리와 시원한 첫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결혼식을 올리면서 에어컨을 혼수 목록에 넣지 않는 바람에 굴비와 함께한 첫 여름은 정말이지 처참했다.
고양이와 여름 나기2018년 대한민국 여름의 체감온도는 40도를 육박했고, 정 남향이었던 우리 아파트를 순식간에 뜨거운 건식 사우나로 만들어 버렸다. 고양이의 체온은 사람보다 약 2~3도가량 높기에 보리와 굴비는 조금만 움직여도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였다. 냉풍기를 들이고 냉수 매트를 깔고 선풍기도 틀어보았지만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은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장 걱정되는 시간은 우리가 출근하고 없는 시간….우리는 스티로폼 박스를 구해 속을 얼음 팩으로 가득 채우고 그 위에 냉매젤 매트를 올려 차가움이 오래가도록 유지한 뒤 부지런히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면 보리와 굴비는 나란히 스티로폼 박스 위에 엎드려 그 시원함을 최대로 만끽하고 있었는데, 걱정이 되면서도 그 모습을 맞닥뜨리면 ‘너네도 정말 더웠구나?!’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박스 속 얼음 팩들은 우리가 출근하고 돌아올 시간에도 신기할 정도로 꽝꽝 얼어있어서 스티로폼의 보냉성을 굉장히 신뢰하게 되었달까? 그렇게 곤욕을 치렀던 여름날은 갔지만 우리는 벌써 다음 해 여름이 두려워졌고, 말도 못 하고 더위를 감당해야 하는 작은 고양이들이 걱정되어 에어컨까지 구매했다. '그래… 이제 우리나라는 에어컨 없이는 절대로 여름을 버틸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거야…!!!!’고양이 난로코 끝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고양이들은 단박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 식빵을 굽는다. 예를 들면 집사의 배 위라던가 집사의 무릎 위…. 뜨거운 여름날엔 곁에도 잘 오지 않던 고양이들이 가을에 골골거리며 내 배 위로 올라온다.배 위에 있는 고양이는 은근히 묵직해서 어떨 땐 숨이 막힌다. 잘 때 밟히기 라도 한다면 억 소리 나도록 치명타를 입지만 그 따뜻한 체온이 난로 역할을 해준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고양이 난로와 함께 있다 보면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다고 느낄 만큼의 행복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또한 운이 좋다면 꾹꾹이 안마까지 받을 수 있기에 우리는 이 행운(?)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유지해야만 한다. 무턱대고 큰 동작으로 움직였다가는 이 따뜻한 고양이 난로가 크게 노하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하고는 휙 미련도 없이 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양이들은 쌀쌀한 가을이나 겨울에 난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여름에는 털을 조금 밀어주며 시원한 환경 조성하기. 겨울에는 따뜻한 극세사 이불과 쿠션을 제공해 주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쯤은 가볍게 감내하는 부분일 것이다. 체온이 주는 따뜻함은 그 어떤 따뜻함과도 다르다. 따뜻함을 넘어서 울컥하기까지 한 고양이들의 체온. 이 체온이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기를 오늘도 바라본다.글.사진 차아람에디터 조문주<나만 없어 고양이 탈출기-고양이의 체온>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STORY | 2020-06-10 14: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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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마비 고양이와 사는 법
결혼 후 새로 이사 간 동네에는유난히 고양이들이 많았다.그렇게 자연스레 오며 가며서로 인사를 하게 됐고,이름을 지어주고,간식을 챙겨주게 됐다.둥어 역시 그런 길고양이였다.
언제부턴가 녀석을 ‘둥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형과 누나는 치즈 고양이였는데 혼자만 고등어 무늬 고양이였기 때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건강하던 둥어가 뒷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 도로가 근처에 있어 차도 쌩쌩 많이 다니는지라 둥어가 너무 위험해 보였다. 경계가 심했던 둥어를 간신히 붙잡아 24시 병원을 찾았다.척추뼈가 부러져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라고 했다. 치료는 불가능하고, 자가 배변 배뇨를 할 수 없는 상황이란다. 압박 배뇨를 해줄 수 있지만 너무 어려서 배변까지는 병원에서도 해줄 수 없다고, 아마 배변을 하지 못해 하루 이틀이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그때까지만 해도 둥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어떻게든 둥어를 살려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하지만 의사가 안락사까지 권하며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하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둥어를 다시 앞 집 어르신 댁에 데려다주고 주차장에 머물게 하여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집으로 돌아갔다.그렇게 며칠을 출근 전, 퇴근 후에 꼬박꼬박 둥어를 보러 갔다. 하루 이틀이면 죽는다고 했던 둥어는 놀랍게도 밥도 잘 먹고, 조금씩 밀려나오는 것이지만 어쨌든 배변도 했다.일주일 정도 남편과 깊이 고민한 끝에 둥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오갈 데 없는 작은 생명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대단한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단지 아스팔트나 흙바닥에서 다리를 질질 끌다가 생겨버린 뒷다리의 상처가 어서 빨리 아물었으면, 하고 바라며 우리는 둥어를 집에 들였던 것이다.둥어와 함께하는 일상어쨌든 우리는 생각지도 않게 고양이를 돌보게 됐다. 게다가 장애가 있는 고양이었다.건강이 좋지 않던 강아지를 반려했던 적이 있던 지라 아픈 동물을 돌보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역시 쉽지는 않았다. 둥어는 스스로 배변 배뇨를 하지 못하므로 매일 출근 전, 퇴근 후, 자기 전에 꼬박꼬박 압박 배변 배뇨를 해줘야 했고,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면 소변 묻은 곳이나 똥 묻은 곳을 찾아 닦고, 탈취제를 뿌리고, 이불을 빠는 것이 일과였다.그런데 신기하게도 둥어도 우리도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서로에게 적응하게 되니 모든 게 수월해졌다.둥어의 배변 배뇨 활동은 우리의 싸이클에 따라 점차 맞춰지고, 우리의 압박 배변 배뇨 스킬과 둥어의 기저귀가 벗겨지지 않도록 하는 스킬이 늘었다. 집에 온지 1년이 된 지금, 훌쩍 커버린 둥어는 다리에 근육이 꽤 붙어 잘 걷고, 잘 뛰고, 캣폴에도 잘 오른다. 장애묘를 키우는 데 겁을 먹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둥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너무나 평온하다.평일 아침이면 남편이 둥어의 배변 배뇨를 해준 뒤 출근을 하고, 그다음 내가 양치질을 해주고, 기저귀를 해주고 자동 급식기에 사료를 담는다.나까지 출근을 하면, 둥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곳(주로 침대 이불 속, 라탄 러그 속)에 가서 쿨쿨 잠을 잔다.퇴근 후 7시쯤 남편과 집에 오면, 어느 때는 두 눈 가득 졸음을 달고 나와 인사해주고, 어느 때는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게 말똥말똥한 눈으로 문 앞에서 기다려준다.누군가가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면 잘 놀다가도 엘리베이터 소리에 문 앞에서 기웃거리고, 우리가 집에 돌아오면 몸을 비비며 꽤 오래 냄새를 묻혀주면서 오래 기다렸다고 이야기해준다.주말이면 둥어도 기분이 좋은지 오랜 시간 돌아다니며 놀다가 평소 자는 시간보다 더 늦게 잠을 자고 일어나 또 밥을 먹고, 놀이를 하며 하루를 함께 보낸다.또 다른 ‘둥어’와 마주한다면둥어의 이름으로 소소하게 sns를 하고 있다. 물론 ‘내 새끼가 이렇게 귀엽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도 있지만, 장애묘를 키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보다 친숙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이유에서였다.장애가 있어도 둥어는 여느 생명처럼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라는 것, 둥어를 돌보는 일 역시 생각보다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혹시나 누군가가 길 위에서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를 만났을 때, 둥어를 생각하며 도움을 주게 된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말이다.CREDIT글 사진 김영주에디터 이혜수<CAT'S LIFE-삼색이 예찬>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STORY | 2020-06-10 14: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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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마음가짐
카페 오픈 청소를 마무리하며,하맹이가 무서워하는무선 청소기의 스위치를 내렸다.그때, 마치 연출된 장면처럼핸드폰이 진동했다.하맹이가 다니는동물병원으로부터 온메세지였다.
잠금 화면을 풀고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다.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하맹이 중성화 수술 적기입니다. 내원해 주세요."무슨 소식인지 궁금해 나를 올려다보는 하맹이에게 말없이 츄르를 짜줬다.다음 날 동물 병원에 방문했다. 선생님은 두 가지 이유로 중성화 수술을 권했다.첫 번째, 암컷 고양이는 높은 확률로 생식기 질병 때문에 사망할 수 있다.두 번째, 카페에 지내고 있어 발정기가 오면 집사와 고양이 둘 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모두 납득할 만한 이유였고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백 번 정도 들렸던 것 같다. 더는 선생님의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어렵게 입술을 떼고 다음 주 목요일에 수술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수술 전 유의사항을 명확하게 일러주고 자리를 떠났다.나는 하맹이가 좋아하는 습식사료 한 캔을 산 후 동물 병원을 나왔다. 오늘은 친구가 카페를 보는 날이고 난지금 약속에 늦었지만 하맹이를 보고 싶었다. 카페에 도착해 해먹에서 자는 하맹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결국 약속에 늦고 말았다. 목요일은 금방 찾아와 이른 아침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사실 나와 하맹이는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 있었다. 중성화 수술 전,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조금 뒤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하맹이에게 서랍 속에 감춰두고 조금씩 줬던 특식을 꺼내 주었다.남아있는 전복 우유와 건조된 참치도 몽땅 털어줬다. 이유도 모른 채 잔칫상을 받아 골골거리며 먹는 하맹이를 보며 부디 수술이 무사히 끝나길 빌었다.열 시쯤, 하맹이를 이동장에 넣고 열기 싫었던 자취방 문을 열었다. 병원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잔뜩 주눅이 든 하맹이가 안쓰러웠다.선생님은 간단한 피 검사를 마친 뒤 하맹이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은 한 시간도 안 돼서 끝났다. 두 시간이 흐르자 회복실에서 하맹이가 깨어났다. 병원보다 익숙한 집에서 쉬는 게 하맹이에게 더 편할 거라는 선생님 말에 이동장에 하맹이를 넣었다.병원을 나와 이동장이 흔들리지 않게 아주 천천히 걸었다. 병원에서 십 분 거리인 자취방을 이십 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이동장에서 하맹이를 꺼냈다. 하맹이는 몸을 둥글게 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도 흐르고 있었다. 마취가 풀려 아파하는 하맹이를 보니 더없이 안타깝고 미안했다.그렇게 하루를 뜬 눈으로 보냈다. 다행히 하맹이는 회복이 빨라 다음 날 아침부터 밥을 먹었고 일주일이 지나자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주가 지난 후에는 실밥을 제거하고 환묘복까지 벗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하맹이를 보고 안심이 됐다. 하맹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느 주말 저녁, 여자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취방 문을 여니 신발장 앞에 하맹이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하맹이는 ‘야옹’거리며 울면서 내 가랑이 사이를 지나다니며 자기 몸을 비볐다.수술 후에 부쩍 더 어리광이 늘었다. 하맹이를 달래 주려 얼굴을 만져 주고 털을 빗겨준다. 수술 탓에 배에 털이 밀려 분홍색 속살이 보이고 가운데엔 아직 아물지 않은 흉터가 보인다.내 품을 뿌리치고 하맹이는 창가로 점프해 앉는다. 밖을 내다보며 무엇을 찾는 눈빛이다. 가끔 창가로 찾아와 시끄럽게 울던 검은색 고양이가 요즘은 통 보이지 않는다.조용한 방에서 나는 바닥에 앉아있고 하맹이는 창문을 내다보고 있다. 작게 켜진 라디오에서 여덟 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지난주 동물 병원에서 들리던 초침 소리가 생각났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이제 생각해보니 그때, 선생님은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을 생략하고 말한 것 같았다.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가 오래 사는 게 좋고,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거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싫지 않나요?’가 맞지 않을까.서랍에서 츄르를 꺼냈다. 창문을 주시하는 하맹이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츄르를 먹였다.하맹아, 내가 잘할게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하맹이가 떨어뜨리면 집어서 낮은 곳에 둔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물면 대수롭지 않게 내어준다. 어차피 손가락과 발가락은 열 개다. 한두 개쯤 내어줘도 무방하다.좁은 원룸에서 벗어나 쾌적한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잠을 줄여 일한다. 매일 맛있는 음식은 못 주지만 가끔은 특식을 제공한다. 따로 시간을 내어 자주 함께 있으려고 한다.고양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킨 집사들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우린 고양이에게서 아주 큰 것을 희생시켰다.잠이 든 하맹이를 쓰다듬는다."하맹아 오래도록 함께하자, 내가 잘할게."CREDIT글 사진 양세호에디터 이유경<바리스티 하맹이-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마음가짐>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STORY | 2020-06-10 14:3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