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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10-02 1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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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10-02 11: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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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17-09-19 11: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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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w me the country
- ESSAY Show me the country 시골, 만능단어인가요 키우는 개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만능 단어는 ‘시골’이다. 그들은 먼저 개를 떠나보내는 이유를 잠깐 웅얼거린 뒤 ? 대체로 짖어서, 털이 날려서, 산책을 시킬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까 대략 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습성이 해당된다 ? 상대가 무언가 말하기 전에 황급히 시골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그래서 공기 좋고 뛰어 놀기 좋은 시골에 보냈어. 마침표. 시골이라는 단어가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show me the money’ 치트키라도 되는 양,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나는 하루에 버스가 다섯 대 오가는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바다와 들, 야트막한 동산이 어우러진 마을이었다. 봄이면 신작로에 뱀이 한 마리씩 발견되곤 했다. 그러니까 정말 ‘쌩시골’이 었다는 소리다. 우리 마을에도 도시에서 유배 보내온 개들이 적잖게 있었다. 말티즈부터 치와와, 믹스견까지 견종도 다양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성정을 타고나 동네 개란 개들에게 지분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귀하고 담벼락이 없는 촌에서 남의 집 개는 좋은 친구였다. 개와 뒹굴다 걸리면 개벼룩 옮는다고 야단을 들었지만 그 때뿐이었다. 시골 개와 즐기는 놀이는 끝이 없었다. 사람이 고팠던 이웃집 개는 개집을 질질 끌고 나를 반기러 오고는 했다. 오수를 즐기는 그 애의 뒤통수에서는 햇빛 냄새가 났다. ?시골 바이 시골 어느 날엔가 동네 파란 철문집 할머니에게 도시의 아들네가 보냈다는 새초롬한 말티즈가 왔다. 새하얀 털이 자르르하게 길어 꼭 공주님 같았다. 손녀가 무어라고 이름을 알려줬다지만, 할머니는 개가 개지 무슨 이름이냐고 혀를 찼다. 말티즈는 그 집에서 딱 한 달을 보내자 머리를 풀어헤친 추노꾼이 되었다. 추노꾼 바로 옆 집에는 밤이고 낮이고 목줄에 묶인 개가 있었다. 그 개는 초인종 역할만 하다가 어느 날 개장수에 의해 종적을 감췄다. 초인종 강아지(편의상 이렇게 부르겠다)는 멍멍이보다 멍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개였다. 믹스견이었고, 유순한 얼굴에 단추같 이 까맣고 반질반질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정말 좋아했다. 그 집 할머니가 밥을 주러 지근거리에 가면 환희에 가득 차 오줌을 싼 나머지 욕을 먹고는 했다. 나는 오줌 테러를 당하는 것이 무서워 거리를 재면서 조심조심 그 애를 쓰다듬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개가 목줄에서 풀려난 것은 개장수가 훔쳐갔을 때, 오직 그 때뿐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물론 그 중에는 터럭에 윤기가 흐르고, 때 되면 목줄을 풀어주는 주인을 만나 천수를 다한 녀석도 있었다. 나는 단지 시골이 개를 보내는 ‘만능키’처럼 여겨지는 것이 염려스럽다. 도시의 모든 개가 세심하게 관리 받는 것이 아니듯, 시골의 모든 개가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마을 개들은 대체로 묶여있었다. 할머니들은 사방팔방 다니며 배변을 하거나, ‘저지레’를 벌이지 못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시골에 보냈다는 한 마디로 개가 자유롭게, 초원을 누빌 것이라고 편리하게 생각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다시 개를 시골에 보내는 사람 앞으로 돌아와서, 나는 ‘공기 좋고 뛰어 놀기 좋은 시골로 보냈다’는 얘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화제를 돌린다. 어쩌겠는가. 보내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개는 보내졌고, 내 앞의 이 이는 벌써 딴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저 그 개가 인심 넉넉한 주인을 만나 맛있는 밥이나 많이 먹을 수 있기를. 어쩌다 한번 뒷산에라도 데려가주기를. 그리고 동물을 좋아하는 심심한 어린아이가 근처에 있기를 바랄 수밖에. ? CREDIT에디터 이은혜 그림 권예원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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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없는 마을 지킴이들의 겨울
- ON SITE이름 없는 마을 지킴이들의 겨울 시골 길 위의 초라한 강아지들에게 깨끗한 물 한 번 제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이 부부는 이름 모르는 시골 개들을 위해 믿기 힘든 정성을 쏟았다. 부부가 남긴 기록을 정리했다?.2016년 가을일요일은 시댁에서 가을 묘사를 지내는 날이었는데 몸이 아파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몸이 불편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답답해 오후에 시골집과 밭에 들렀다.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워진 시골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담고 싶어 둑길을 따라 걸었다. 콩을 베어낸 논둑길 위에서, 이 아이를 만났다. 지저분한 털로 힘없이 서 있는 한 마리의 개였다. 보자마자 마음 한 편이 쓰려왔다. 주인은 누구일까.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을까.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는 경계하지 않고 살갑게 꼬리를 흔들어댔지만 단단히 굳어버린 꼬리는 잘 흔들리지 않았다. 철갑으로 온 몸을 중무장한 것 같은 털옷. 이 작은 아이는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까. 물그릇은 새파랗게 이끼가 끼여 있는데 아이는 이 물을 마시며 혼자 무서운 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손을 내미니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를 보니 다행히 건강해 보인다. 좁은 둑길을 타고 경운기 한 대가 달려온다. 개 옆에 잠깐 멈추더니 갑자기 물그릇을 던져버렸다. 그리곤 개를 안전한 곳에 옮기지도 않고 아슬아슬하게 개집 옆을 경운기를 몰며 지나갔다. 개 주인은 아닌 것 같다. 수소문 끝에 아이의 주인을 알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어느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집에 안 계셔 찾아보니 이웃집에서 김장을 하고 계셨다. 내가 가니 반가워하시며 노란 배추 속살을 떼어 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인정은 많으신 분 같은데 왜 강아지는 저렇게 기르시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강아지는 할머니를 보자 손을 내어 주며 장난을 치고 애교를 부리는데 마음이 울컥했네. 그래도 주인이라고… 할머니 연세는 65세였고, 집에서 혼자 강아지 둘과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계셨다. 동물을 좋아서 기르는 건 아니란다. 딸이 기르다 놓고 가는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기르고 있다고 하셨다. 물그릇을 던지고 간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이 강아지가 할머니 집으로 온 지는 3년 되었다. 다른 사람이 기르던 강아지였는데 콩밭을 지키게 하려고 부탁해 데리고 왔다고 한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이름 없어, 나는 주인도 아니여.” 재차 묻자, “귀찮어, 귀찮어.” 손을 내저으신다. 정말 아이에게 이름은 없었다. 우리가 주인은 아니지만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콩밭에서 만난 인연이라 ‘콩이’라 부르기로 했다. 할머니는 아이 털을 깎아 주고 싶지만 가위를 들면 아이가 도망을 가서 저런 모습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 이유인진 알 수 없었다. 마침 우리 아이들 털 깎아주던 기계가 있어 콩이의 털을 깎아 주는 걸 허락받고 간단한 털 정리를 해줬다. 콩이의 털은 떡처럼 엉겨 붙어 있어서 한 번에 시원하게 정리해주긴 어려웠다. 앞으로 올 때마다 조금씩 더 깎아주기로 했다. 헤어지는 시간, 콩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콩이야, 너를 꼭 기억할게. 가끔 널 만나러 올 거야. 건강해야 한다. 2016년 겨울이후로 종종 콩이를 찾아갔다. 콩이는 여전히 콩밭을 지키는 중이다. 콩이를 만난 이후로 일상 중에서도 이따금 이 아이의 생각에 빠져든다. 비록 콩밭을 지키던 시골의 이름 없는 개였지만 나는 이 아이가 보물같이 느껴진다. 한파가 심해졌을 땐 집에 있는 아이들이 입던 옷을 가져가 입히고 박스들을 가져가 콩이 집에 넣어주기도 했다. 콩이 주인 할머니도 혼자 사시니 이따금 선물을 들고 방문해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찾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반겨 주시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할머니에게 허락을 구하고 우리 부부는 콩이와 놀고 목욕을 시키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콩이에게 콩밭을 지키게 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키울 수 없다고 맡기고 가는 아이들을 거절하지 않고 거두시는 인정 많은 분이셨다. 그 나이면 자기 몸도 귀찮아질 나이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콩이를 만나러 시골을 찾던 중 콩이 이웃에 사는 다른 강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됐다. 한 강아지가 비닐하우스에서 강아지 여섯 마리를 순산했고, 우리도 오가며 이 꼬물이들을 이뻐라 지켜보고 있었는데 추운 어느 날 꼬물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미 개는 미친 듯이 날뛰며 울부짖고 있었다. 어미 개는 이때 처음 보았는데 바싹 말라 갈비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콩이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꼬물이들은 한파에 모두 얼어 죽어 한 녀석만 살아남았단다. 비닐하우스 안에 아이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줄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미는 흔히 말하는 짬밥도 못 먹은 채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개가 아니었다. 마을에서도 지독한 영감탱이라고 소문이 난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는데 쌀겨를 푼 물을 가끔 가져다주는 게 관리의 전부였다. 그대로 돌아설 수 없었다. 가지고 간 것 중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다행히 양념이 되지 않은 빵이 조금 남아 있었다. 빵을 내려놓자 어미와 새끼는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은 정말 배고파서 그러는 거란 걸 나는 안다. 남은 부스러기 하나마저 남김없이 먹기 위해 어미와 새끼는 몸부림을 쳤다. 그 옆엔 얼어 죽은 다른 새끼의 털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후 우리 부부는 콩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따금 꼬물이 가족도 챙겼다. 만날 때마다 사료와 따뜻한 물을 채워줬다. 견주 할아버지를 만나 강아지를 팔기 위해 기르는 건지 물었더니 또 아니란다. 밭을 망가뜨리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쫓아내려고 기른다고 했다. 견주는 마을 소문과 달리 순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단지 동물에 대한 개념이 없고 자신에게도 야박하리만치 돈을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이 개 역시 이름 같은 건 없었다. 남편과 상의 후에 어미 개를 ‘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 블로그에 순이 가족의 사연을 게재했고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순이 가족도 매서운 겨울의 한파를 이겨냈다. 2017년 봄봄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3월, 한 쉼터에서 순이의 소식을 알고 강아지들을 구조하자는 제안이 왔다. 나도 처음에는 순이를 빨리 구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움 주시겠다는 분과 한참을 통화했다. 도움을 준다는데 왜 마음이 이상한 걸까. 사람들은 강아지가 구조되면 병원에서 치료받고, 사람들에게 모금을 받으며, 쉼터에 머물다가, 누군가에게 입양되는 수순을 어렵지 않게 밟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건 강아지들에게 힘겹게 넘어야 할 과정들이다. 만약 끝내 입양이 되지 않는다면 콩이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몹시 괴로워졌다. *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바람님의 이현동 시골 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Naverblog / bluemount337)CREDIT글·사진 바람 에디터 김기웅?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1: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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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런 시골 개, 천방지축 뿌꾸 이야…
- DOGHOOD사랑스런 시골 개 천방지축 뿌꾸 이야기 뿌꾸의 시골 입성 작년 늦은 봄, 아파트에 사시던 부모님은 그토록 바라던 시골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잔디를 깐 마당과 마당 한 모퉁이 자리 잡은 작은 텃밭, 그리고 문 앞에 나무 데크가 있는 집. 두 딸을 서울로 보내고 김해 시골의 주택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신 부모님은, 이제 고향집 으로 내려가려면 대중교통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딸들의 성화에 생후 두 달된 조그마한 진돗개 한 마리를 얻어 오셨다. 새 식구가 될 강아지 사진을 보냈다는 엄마의 말에, 우리 자매는 신이 나서 역시 사람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 속에는 아주 조그맣고, 토실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갈색 진돗개 새끼가 있었다. 특히 오른쪽 앞발 부분만 발목까지 하얀 털로 덮여 있어, 한 쪽만 흰 양말을 신고 온 것 마냥 귀여웠다. 이렇게 예쁜 막내 동생이 생겼는데 이름을 뭐로 한담. 산들이, 초롱이, 체리 등 강아지가 생긴다면 붙여 주고 싶었던 앙증맞은 이름들을 두고 고심 끝에 결정한 이름은 ‘뿌꾸’.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니까 모두 찬성했다. 이렇게 온 가족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랄 뿌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겁쟁이 순둥이 뿌꾸 우리 뿌꾸는 태어난 지 두 달 남짓할 때 우리 집으로 왔다. 어린 나이에 엄마, 형제들과 헤어져서 얼마나 슬펐을까.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 애가 너무나 얌전해서, 엄마 아빠는 뿌꾸가 겁이 엄청 많구나 싶으셨단다. 마당에서 집 지키라고 데려온 애인데 짖지도 않고 그저 멀뚱멀 뚱. 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 곧장 적응해서 엄마 아빠가 마당을 걸어 다니면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시골 주택으로 이사 가고 처음에는 무슨 강아지냐며 핀잔 을주셨던 부모님이, 서로 뿌꾸 밥그릇을 사 오는 바람에 뿌꾸에겐 큰 철제 밥그릇이 두 개나 생겼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뿌꾸가 집 안에 갇혀 지내지 않고 잔디밭에서 맘껏 뛰놀 수 있다는 것. 아빠가 마당에서 일을 하실 때면 뿌꾸가 옆에서 어물쩍거리며 따라다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박스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던 뿌꾸에게 아빠는 직접 집을 만들어 선물하셨고 뿌꾸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손수 주인이 지은, 창문 딸린 넓은 집을 선물 받은 부유한 개가 되었다. 폭풍성장! 하루가 다르게 커 가다 뿌꾸는 하루하루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컸다. 처음 부모님 댁에 온 날 사진들을 보면 조그만 게 바람에 날아갈까, 행여 누가 데려갈까 걱정됐는데, 3개월쯤 더 지나니 키도 크고 얼굴도 길쭉해지면서 동네 꼬마들이 마주치면 흠칫 놀랄 크기로 커버렸다. 덩치에 비례해 사고의 스케일이 커지고 머리도 좋아졌다. 텃밭 야채를 몽땅 밟아놔서 엄마를 놀라게 하는가 하면, 낮에 몰래 목줄을 풀어서 마당과 창고를 뒤지고 잔디를 캐면서 놀다가 아빠 퇴근시간에 맞춰 자기 집 앞에 가서 목줄을 맨 척 능청스럽게 앉아서 인사를 하고는 했다. 꽃 옆에 붙은 벌을 먹으려다 벌에 쏘여서 오른쪽 얼굴만 탱탱 부었을 때는 온가족이 병원에 전화를 걸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갈이를 할 땐 이가 너무 간지러운지 개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보이는 건 다 물어 뜯어버리는 바람에, 신발이나 장갑을 뿌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뿌꾸 입에 한 번 들어가면 인형은 솜이 다 터지고 털장갑은 올이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물건을 안 뺏기려 애쓰고 뿌꾸는 달라고 떼쓰는 꼴이 지켜보는 다른 사람에게는 재밌는 놀이로 보였을지 모르나, 뿌꾸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마당에서 뿌꾸에 밀려 늘 휘청거렸다. 털갈이를 할 때는 마당 여기저기 솜뭉치가 흩어져 있고, 공기 중에도 털이 둥둥 떠다녔다. 빗질을 해줄 때마다 잔뜩 묻어나오는 털을 보며 이것이 진짜 개 한 마리에게서 나오는 털이 맞을까, 혹시 탈모는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중대 결정, 뿌꾸의 중성화 수술 뿌꾸가 커 갈수록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바로 중성화 수술. 강아지도 강아지 나름의 가족계획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새끼를 가지게 할 생각이 없다면 암컷이든 수컷이든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는 것이 강아지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님은 뿌꾸 하나의 활동량에도 종종 버거워하시고, 가뜩이나 열려있는 마당에서 크는 뿌꾸가 걱정되었던 우리 가족은 뿌꾸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것이 최선의 결정일거라 믿으면서. 뿌꾸가 병원 안에 들어와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수술 후 마취가 깨는 시간까지 7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다. 거대한 깔때기 모양 넥카라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뿌꾸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초조한 기다림 끝에 수술이 잘 끝났다는 병원의 연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에 데리러 갔더니 뿌꾸는 아직 마취가 약간 덜 깼는지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이쁜 뿌꾸 고생했어, 하며 강아지용 소고기 간식을 병원에서 잔뜩 사 줬다. 여전히 보드라운 뿌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뿌꾸는 맑은 눈으로 나 잘했지 하고 올려다 봐주어서 또 한 번 뭉클했다. 상처를 핥아서 덧나게 하면 안 되기에 일주일 정도는 더 넥카라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익숙지 않았던 뿌꾸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마을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뿌꾸를 보고 어디 아팠냐, 병원을 다녀온 거냐 하며 걱정하는 눈빛으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셨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 살면 이런 따뜻함이 좋다니까 하는 생각과 함께, 수술을 받아 한동안 넥카라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해 드리니 깔때기를 해도 잘생겼네, 허허 하고 지나가셨다. 어른이 되어가는 뿌꾸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 멈춰 서서 뿌꾸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조그마했던 강아지가 어느덧 커서 15킬로그램이 넘어서고,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다니니 눈에 워낙 잘 띄는 데다, 능청스레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곤 해서 가까운 동네 사람들은 우리 뿌꾸를 다들 알고 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실 때는 옆집에서 뿌꾸 밥을 챙겨주시기도 한다. 사교성도 늘어 이웃집에서 키우는 3살짜리 보더콜리와도 친구가 되었고, 근처 공장에서 키우는 흰 개 두 마리는 종종 우리 집에 찾아와서 뿌꾸와 놀다 간다. 강아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귀여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제 뿌꾸는 한 살이 되었다고 동네 주민 아닌 낯선 사람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면 짖어서 경계한다. 조금씩 눈치도 늘고 아기 때처럼 막무가내로 소란을 떨지는 않는 것 같아 자주 목줄을 풀어서 전보다 더 자유롭게 마당에서 뛰놀게 하고 있는데, 숨겨놓은 축구공이니 슬리퍼를 찾아내서 노는 게 또 어찌나 영특한지. 잔병치레 없이 주말이면 같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귀여운 막내 동생으로 잘 커준 것 같아 언니로서 뿌듯하다. 뿌꾸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부터, 우 리 가족은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뿌꾸는 이제 겨우 한 살. 사랑하는 나의 막내 동생 뿌꾸와 오래도록 건강하게 마당에서 뛰어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CREDIT글 사진 박샛별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10-02 1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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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이네 인스타 염탐기
- DOGSTAGRAM 태풍이네 인스타 염탐기 팔괴리 다견가정의 첫째 태풍이와 인터뷰를 마치고 몰래 알려준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이들은 은밀하고 위대하게,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이용해 반려인 몰래 그들만의 인스타그램을 즐기고 있었다! 태풍이네 형제들의 인스타 염탐기, 이른바 독스타그램 염탐기를 공개한다. white_young_taepung 우리 네 형제. 장비 오기 전. #일상 #형제들 #brotherhood #영월팸 #맨_오른쪽_잘생겼다 #혀가_닮았네 #원래_동네에_하천_하나쯤_다_있잖아요 #다리각도예술 white_young_taepung 아빠 다음으로 좋아하는 고무공. #소통 #남자라면_핑크 #침흘리기_직전 #연출아님 #공스타그램 #베이비페이스 #살인미소 GYthedog 아빠랑 유비랑 나랑. 나만 사진발 안받아(개무룩) #계곡 #좀탔나 #유비신났네 #아빠_나_슬픈거_아니에요 #행복한_얼굴입니다 #오해금지 GYthedog 일상이 화보네 화보야. 근데 나만 물방울에 가려졌어(개무룩) #아빠는 #관우를 #싫어하지? #물방울이_안티 #그래도_즐거웠음 #다음에_또가요 You_B 유비, 날다. #다이빙정석 #물이다 #물은내사랑 #물좋아 #수영최고 #물또라이인증 #다섯시간놀자 #나만그런거아니잖아요? Jang_B 유비 형 뒤태 예술. #훔치고싶은엉덩이 #궁디팡팡 #탐스럽다 #복스러워 #그런데_왜_19금느낌이 #형살빼 #요요 #풀만먹는다며 #간식먹다딱걸림? Jang_B 나보고 표정이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 그냥, 모든게 감사할 뿐. 지난 3개월이 꿈만같다. #Thanks_to_mom_and_dad #형들도 #오글오글 #내일되면_지울지도 #아몰라 #그냥다좋아 #언젠가_평생엄마도_만날수있었으면 #저_되게_착한데? CREDIT에디터 이은혜자료협조 홍성규
- STORY | 2017-09-26 10: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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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에게 묻다, 영월의 컨트리 라이프
- FARMLAND태풍에게 묻다영월의 컨트리 라이프 밤이면 별을 보고, 낮이면 수수밭을 뛰어다니는 삶. 과연 존재할까. 귀농귀촌의 허와 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요즘, 시골의 현실적인 견생을 알아보고 싶었다. 강원도 영월, 산과 계곡 지척에 살고 있는 태풍이(7세)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어 본 컨트리 라이프. 인터뷰팔괴리 다견가정 첫째 태풍(사모예드, 7) 태풍,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멋진 태풍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사모예드라고도 부르지만, 그냥 태풍이에요. 201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일곱 살인데요. 웃는 얼굴 때문에 어리게 보시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이름이 왜 태풍인가요? 아빠가 처음에 키웠던 사모예드가 태백이라는 이름이었는데요. 아가 때 아파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태어났을 때는 튼튼하고 멋지게 자라라고 태풍이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어요. 동생들 소개해줄 수 있어요? 오늘은 저 만나러 오신 것 아닌가요?(잠시 정적이 흘렀다) 찰보리는 나보다 두 달 아래 동생이에요. 보리라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가 찰을 붙여줬어요. 유비는 태어났을 때 유난히 하얗고 예뻤대요. 목에 검정색 실을 묶어 줬는데 하얀 털에 검정 실이 유비 장군 같아서 유비가 되었대요. 관우는 유비 친동생이라서 관우예요. 찰보리랑 유비, 관우는 모두 래브라도 리트리버고요. ‘굴러온 돌’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장비는 좀 특이한 애예요. 올해 6월인가 우리 집에 오게됐거든요. 개장수한테 팔려가기 직전에 아빠가 구조해서 임시보호하고 있어요. 유비랑 관우 동생이라 자연스럽게 장비가 됐죠. 걔는 원래 우리 동네에 살아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우리 집에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견생이란...(태풍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웃음이 참 서글서글한 것 같아요. 제가 웃는 상이긴 하지만 서열이 제일 높아요. 큰 형이니까 동생들 혼낼 때도 간혹 있죠. 하지만 어린 강아지나 여성분들에게는 한 없이 다정하답니다. 흠흠. 2015년 1월에 영월에 귀농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귀농전과 후, 삶에서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영월에 오기 전, 아빠는 중식요리사였어요. 아빠가 일하러 나가고 나면 떨어져 있는 시간 내내 아빠가 그리웠어요. 엄마가 영월에 살고 있어서 오가다 보니 아빠도 이곳에 정착하고 싶어졌대요. 아빠의 큰 결심으로 컨트리 라이프가 시작된 건데요. 이곳은 공기도 좋고 뛰어 놀 곳도 많아 즐겁지만 제일 좋은 건 아빠를 더 오래,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아빠가 정말 좋은가 봐요. 분홍색 고무공보다, 간식보다 더요. 아빠는 내 우주예요. 아빠도 영월에서의 생활을 좋아하나요? 물론이죠. 태풍이랑 늘 함께할 수 있잖아요. 네. 뭐, 찰보리랑 유비랑 관우랑 장비도 있고요. 아빠는 정말 멋있어요. 농사도 짓기 시작해서 간식도 직접 만들어주거든요. 만들다 만들다 이제는 파는 것 같더라고요. 수익 일부는 유기견을 돕는 곳에 쓰시겠대요. 잘돼야 할 텐데… 제가 늘 걱정이 많아요. 의젓하네요. 아빠가 만든 간식 맛은 어때요? 매일 매일 먹고 싶은 맛이죠. 저는 개견적으로 달콤한 고구마 말랭이랑 바삭하게 씹히는 오리도가니가 제일 좋더라고요. 시골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어요? 아빠는 우리가 갈 병원이 가까이에 없어 걱정하셨는데, 아직까지는 우리 모두 튼튼해서 괜찮아요. 얼마 전에 우리를 보고 큰 개를 집에서 그렇게 많이 키워서 되겠느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빠가 조금 슬퍼했어요. 나는 아빠라서, 엄마라서, 찰보리라서 좋은 건데. 다른 곳, 다른 사람은 싫어요. 여기에, 우리 다 같이 함께 있어서 좋은 거예요. 동네 친구들은 생겼나요? 제일 친한 건 우리 집 동생들인데요. 주변에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요. 아빠가 ‘크지만 순한 강아지 모임’을 만들었거든요. 오로랑 엘리샤, 샘기리, 모니… 다들 보고 있어?(태풍은 앞발을 흔들었다) 아… 영상 인터뷰가 아니라서, 다들 보고 있기는 좀 힘들 것같은데… 아무튼, 동네친구들이 참 많네요? 나이를 먹다보니 친구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얘기하다 보니 생각난 건데, 복날을 기점으로 자꾸 친구들이 하나 둘 없어져요. 특히 우리처럼 몸집이 큰 친구들이요. 어디로 가게 된 건지... 그저 마음속으로 무사하길 빌 수밖에 없어요. 그 즈음이면 아빠도, 엄마도 슬퍼 보여요. 그래서 장비도 우리 집에 오게 된 거죠. 사실. 가을입니다. 햇빛도 낙엽도 버석버석해지는 시기인데요.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시골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어요. 밭에 나가서 산책 좀 하다가 동산에 올라서 포토타임도 좀 갖고요. 동생들이 워낙 물을 좋아해서, 계곡도 자주 놀러가요. 얘네는 리트리버가 아니라 물트리버예요. 일상이 산과 밭, 계곡이요? 도시와 크게 다른 것 같은데... 그래요? 안타깝네요.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해서 즐겁겠어요. 아빠, 엄마가 우리를 ‘덩어리’라고 부르지만, 저는 알아요. 세상에서 우리를 제일 좋아하시거든요. 사진도 매일매일 찍어주세요. 엄마, 아빠는 자기들만 인스타그램을 하는 줄 아는데 저희도 계정 하나씩 다 가지고 있어요. 비밀로 해주세요. 가끔 밤에 올린 글 보면 다음날 오그라들어서 지우기도 하고 그래요. 이 말을 끝으로 태풍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끝이 났다. 태풍과 찰보리, 유비, 관우, 장비의 아빠 홍성규 씨가 간식을 내왔기 때문. 동생들과 조금 떨어져 근엄하게 오리뼈를 아작이는 태풍에게 몰래 다가가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얻어냈다. 네 마리의 박힌 돌들과 한 마리의 굴러들어온 돌, 도합 다섯의 반려견들은 도시의 우리네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발랄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반짝이게 만든 것일까. 한 뼘 거리의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과 ‘가슴으로 낳았다’는 반려인의 애정이었으리라 짐작해보며, 업무 시간에 몰래 인스타그램 어플리케이션을 누른다. 그렇다. 나는 시골개 ‘덕질’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혼자 죽을 수 없어,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공개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다. CREDIT에디터 이은혜 자료협조 홍성규?
- STORY | 2017-09-26 10: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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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이와 복실이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 SEASIDE금동이와 복실이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잿빛으로 물든 노을 아래 광활한 갯벌을 힘껏 달리는 강아지들이 한국에 있다. 반려인의 입을 빌려 진돗개 부부 금동이와 복실이의 시원한 러브스토리를 전한다.? 금동이 부부를 소개합니다 저는 아직 주말 귀촌 도시 직장인입니다. 지금 금동이가 사는 곳은 제가 태어나서 중학교 시절까지 소를 몰며 풀 먹이고 꼴을 베던 초동이었지요. 고등학교 때 도시(전주)로 홀로 유학와 대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어요. 이후 서울에서 결혼도 하고 아들과 딸 둘을 낳으며 아주 일반적인 시골 출신 도시 직장인으로 생활하던 중 5년 전, 다니던 직장 따라 금동이 사는 시골 고향집과 멀지 않은 군산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왔지요. 이때부터 주말 귀촌을 시작하며 진돗개 금동이를 입양해 지금도 주말친구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은퇴 후엔 완전 귀촌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준비하며 틈틈이 전답에 아로니아를 식재하여 왔어요. 규모가 제법 커져 올해부터 아내가 전자상거래와 지인을 통해 조금씩 파는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지금 금동이가 살고 있는 집은 10년 전 부친께서 돌아가신 후 홀로 계신 모친을 위하여 동네 안쪽에 있던 집을 헐어버리고 동네 앞 언덕 위에 있던 밭에 목조로 새로 지은 곳이지요. 그 때는 은퇴 후 서울 쪽에서 계속 살 계획으로 귀촌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상황이 바뀌어 귀촌을 준비하고 있어요. 금동이는 2012년 8월 10일생, 복실이는 2012년 11월 14일생, 장금이는 2014년 1월 29일 생입니다. 지방도시 군산으로 이사 와서 귀촌을 시작할 때 입양한 금동이가 외로워 보여 눈이 오던 2012년 12월 겨울에 복실이를 입양하였지요. 복실이는 다음해 8월 첫 출산을 하였는데 나름대로 좋아 보이는 환경의 반려인에게 보냈어요. 어린 나이에 새끼를 낳아 기르던 복실이가 안쓰럽고 미안하여 새끼를 낳지 못하게 다음 발정기엔 금동이와 격리시켰지요.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새끼를 한 마리를 더 낳았어요. 이 강아지를 장금이라고 이름을 짓고, 금동이 복순이와 가족으로 3년 8개월을 함께 살아왔습니다 오직 나와 강아지만의 풍경 금동이 가족은 나이가 연로해서 활동이 불편하신 할머니와 함께 있다보니 그 환경에 맞춰 살 수밖에 없어요. 진돗개는 주인아닌 이방인을 경계하는 습성이 강해서 시골에서는 보통 목줄에 끈을 묶어 키우거나 철장 안에 넣은 채 키워요. 금동이도 입양 온 후 잠시 동안 목줄에 묶여 살다가 울타리를 만들고서 목줄을 풀었지요. 점점 커가면서 울타리를 뛰어넘고 다니는 바람에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여 집 뒤뜰에 구역을 분리해 창고 겸 개집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데크를 설치한 일명 ‘하늘정원’을 만들어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게 하고 있어요. 밤에는 하늘정원 아래 넓은 개집에서 밤을 지내고, 낮에는 하늘정원과 뒤뜰에서 집 울타리 밖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낸답니다. 그러다가 주말이 되면 마당도 개방해 주고, 갯벌과 바다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합니다. 금동이 가족이 가장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건 하늘정원에서 내려다보이던 집 밖으로 나들이 가는 것이지요. 주인이 자전거를 만지면 밖으로 나들이 가는 것을 알고 방방 뛰는 모습이 아주 귀여워요. 그 다음으로 할머니가 내어온 간식(주로 돼지 등뼈, 쪽 갈비) 먹는 것과 주말에 온주인의 손 마사지 받는 것을 좋아라 합니다. 금동이 가족은 목줄 없이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데 가끔 울타리 넘어서 몰래 집밖으로 나가 동네 개들과 싸운다든지, 농작물을 밟는다든지, 다른 가축(닭)을 잡는다든지 하는 말썽이 일어나기도 해요. 옛날에는 없던 자동차가 많아져 사고의 위험도 늘어났어요. 그래서 요즘 시골은 대부분 개들에게 목줄을 채우거나 개들을 철장에 가두어 키우는 환경으로 변했어요. 옛날에 사람과 함께 살던 시골 개들은 낮에는 무리지어 서열을 정하고 함께 뛰어 놀며 지내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세상인심이 개인주의로 변하다보니 요즘 시골 개들은 도시에 사는 개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지고 사회성도 점점 사라지는 중이에요. 다행히 금동이 가족에게는 사람들과 농작물, 다른 가축이 없는 넓은 갯벌 바다가 있지요. 그곳에서 목줄 없이 물새와 갈매기를 쫓아 뛰면서 자유를 만끽해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근심걱정 다 사라지는 행복을 느끼지요. 금동이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는 선운산 뒤쪽 바닷가 동네인데 청정한 산과 바다가 있어 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에요. 나뭇잎 없는 계절에 개들과 함께하는 선운산 나들이는 누구나 누리지 못하는 힐링 여행이고, 개들과 떠나는 갯벌 바다 자전거 하이킹은 금동이 가족과 저만의 운동이자 힐링 방법이지요. 주변에 오염원이 없어 청정한 고창 갯벌은 생물들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람사르 보호 습지로 지정된 곳으로, 계절과 물때와 해가 있는 장소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모습의 풍경으로 바뀝니다. 그 멋진 풍경 속에서 개들은 갈매기와 물새 몰이를, 주인은 조개나 굴을 캐는데 그 장면은 혼자 카메라에 함께 담을 수 없어 나 혼자의 행복으로 간직하고 있어요. 시골에서 강아지를 키우기란 시골에서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도시에서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아파트 등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게 최적화된 소형견과 동일체 교감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데 반해, 시골에서는 주로 실외견을 키우는 관계로 개는 개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시각이 강하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시골 개를 둘러싼 환경은 아주 열악해요. 가끔은 주인 용돈벌이로 팔려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골 개와 함께 하는 반려생활은 사람에 따라 극과 극의 모습이 나타나요. 개를 진정으로 반려하는 사람들에겐 실외견이어도 자기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귀한 반려견이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시골에서의 반려생활은 도시인들은 느껴볼 수 없는, 자연 속에서 공감하는 기쁨의 연속이고요.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사람 중 상당수는 시골이나 도시의 단독주택에서 개들과 함께 살았던 추억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시골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개와 함께하던 추억은 낭만으로 기억되지요. 그러나 시대는 변해서 시골에서 사는 개에게 옛날 추억에 있던 자유와 낭만은 없어요. 여름 땡볕에서 짧은 줄에 묶여있거나, 1평도 안 되는 철장 안에 갇혀서 주인이 먹다 남은 밥을 먹거나, 예방 접종 한 번 못하고 여름에 억센 모기에 물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거나, 다 커서 복날 때 주인 용돈 벌이로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가끔 금동이와 선운산이나 갯벌바다 나들이 나갈 때에 목줄에 묶이거나 철장에 갇혀서 살아가는 개들을 보면 괜히 미안해지고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요. 한번은 장금이가 집 나가서 대문 없는 집 땡볕 아래 목줄에 묶여 사는 개와 싸웠는데 그 집 주인 하는 말이 줄에 묶어 키우지 않고 다시 한 번 나오면 자기 집 주변에 쥐약을 놓겠다고 언성을 높이더군요. 그리고 비밀인데요. 복실이 첫배 새끼 중 한 마리를 옆 동네 아는 친척형님이 잘 키우겠다고 하시길래 믿고 보냈는데요. 6개월 후 가봤더니 개가 보이지 않았어요. 개는 어딨냐 물어보았더니 할머니 몸이 편찮아서 개소주 해드렸다네요.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 복실이가 새끼 낳지 못하게, 일 년에 두 번씩 격리하는 난리를 치르고 있답니다. CREDIT글 유태수 사진 구현회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9-25 1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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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조차 머물다 가는 라오스, 행복이 …
- 여행하며 만나다시간조차 머물다 가는 라오스,행복이 별 거 있나요라오스의 개들은 그 나라 사람들과 많이 닮았다. 온순하고 친절하며 욕심이 없다. 아니, 그곳의 모든 생명체들이 둥글둥글 서로를 닮았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여느 동남아 국가처럼 느닷없는 동물과의 마주침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렁찬 닭 울음소리로 시작하는 아침, 소 떼에 길이 막혀 한참을 기다리기도 하고, 식당에 앉으면 주변으로 옹기종기 개와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아직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은 낮지만 한편으론 동물들이 늘 가까이 생활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으로서 존재한다. 서로를 인정하는 태도의 라오스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오늘도 마냥 평화롭기만 하다. | 라오스 최남단, 4000개의 섬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씨판돈의 개들은 매일매일 비키니 누나들을 감상하고 낮잠 자는 것이 일이다. 40도를 웃도는 날씨지만 괜찮다. 다섯 걸음만 걸어가면 메콩 강이니까. | 해질 무렵의 루앙프라방. 더운 하루를 식히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칸 강으로 달려왔다. 그 모습에 동네 개들도 신이 났다. 함께 물장구치며 노는 모습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 동남아의 흔한 개.jpg. 주인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균형 감각이지만 여기선 특별한 축에도 못 끼는 기본 중의 기본. | 본격적인 건기맞이 셀프 미용 당하는 누렁이. 가위질과 빗질은 귀찮고 싫지만 상대 마음 아니까 꾸욱 참아주는 중. | 이런 순간이 가장 불편하다. 자꾸만 내 머릿속이 익숙한 가치를 들이대고 판단해버리는 것. 배를 채우기 위해 쓰레기와 풀을 먹는 개. 우리네 기준처럼 불행한 것일까? 이토록 자유스럽고 평화로운 바람 같은 너인데. | 처음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이 첫 번째 실수. 결국 샐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두 번째 실수. 손을 가져다대기도 전에 발라당을 해버리는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 결국 일주일이나 머무르고 말았으니까. 도로 하나가 전부인 작은 마을에 말야. | 꼬물꼬물. 힘차게도 빤다. 조금이라도 더 빨겠다고 밀치고 난리다. 시끌벅적한 주위 환경에도 어미 개는 전혀 예민하지 않다. 꼬마가 다가온다. 손에 쥐고 있던 찹쌀밥을 엄마 몰래 어미 개에게 살짝 건넸다. |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미지근한 맥주를 마셔야하는 작은 마을. 저녁시간이 되면 집 앞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나고 죽순을 구워 찰밥과 먹는다.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으로 한 입만을 호소하는 개들. 집에서나 여행에서나 개들 눈치 보며 먹기는 매한가지. | “엄마, 잘 다녀오세요!” 아내를 일터에 데려다주는 다정한 남편과 엄마에게 인사하는 하얀 포메라니안. 왠지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짓게 되는 장면.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오늘도 지고 말았다. | 졸졸졸. 넌 스님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갔어. 하지만 뒤에서 기다릴 뿐, 스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지. 스님이 물을 길어 법당으로 들어가자 똑똑한 넌 밖에서 기다렸어. 익숙한 모습으로. 오늘도 넌 그곳에 있겠지? CREDIT글 사진 박애진 (여행 작가)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9-19 11:3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