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P (503건) [STORY] WITH MY DOG | 이웃집의 백호 STORY | 2017-03-15 10:04:58 [STORY] 남겨진 사람들 | 사랑만 남기고 떠난 … STORY | 2017-03-14 09:54:24 [STORY]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① 스핀들 마켓 STORY | 2017-02-09 11:19:02 [STORY]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② 남산 야외식물원 STORY | 2017-02-09 11:11:48 [STORY]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③ 부티크 카페 STORY | 2017-02-09 11:03:58 [STORY] 오늘과 내일을 선물한 도래 이야기 STORY | 2017-02-07 10:14:00 [STORY] 개와 늑대의 시간 | 목수 서진호 STORY | 2017-02-07 10:04:30 WITH MY DOG | 이웃집의 백호 WITH MY DOG 이웃집 백호 “너 아직도 강아지 때문에 주말에 술 안 마셔?” 이따금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에게서 하나같이 듣는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과 연락하는 주기가 뜸해지기는 한다지만, 그래도 친구라는 녀석들이 내 안부랍시고 건네는 말에 강아지 얘기부터 꺼내들다니. 든든한 존재가 내 곁에 가정을 꾸리고 살만한 자신이 없어 부모님께 평생 독신으로 살겠노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한 이후, 그 동의를 구하기가 무섭게 나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양 손에 겨우 들어오는 작디 작은 웰시코기. 만약 결혼을 하더라도 여자인 나는 어차피 성을 물려줄 수가 없으니 “너에게 내 성을 물려주노라” 하고 강아지에게 내 이름의 ‘강’자를 붙여주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백호’. 당시 다리 길이가 5cm밖에 되지 않았던 아기 강아지에게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백호’라는 센 이름이 붙게 된 이유다. 핑크 빛 발바닥 젤리로 내 손을 꼭 붙잡고 오물오물 물어대던 모습이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정말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반추해본다. 그 녀석이 오고 나서 새삼스럽지만 백호는 웰시코기다. 요새 언론매체에 숱하게 나오는 그 다리 짧고 엉덩이 통통한 식빵 같은 견종. 사람들은 다리 짧은 겉모습이 마냥 귀여워 쉽게 입양을 고려하지만 사실 웰시코기는 넓은 초원에서 양을 몰던 목양견으로 정말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자랑한다. 진즉 알고 데려오기야 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다른 법. 이제껏 술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을 세상 제일이라 꼽으며 한량같이 지내온 나의 일상은 백호가 오고 난 후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7년 넘게 살던 동네에 공원이 몇 개인지, 계절마다 어떤 꽃들이 피는지 조금의 관심조차 없던 내가 팔자에도 없던 산책을 매일 두 시간 이상 거르지 않고 칼같이 하게 된 거다. 지금 백호가 킁킁 향기를 맡고 있는 꽃의 이름이 뭘까? 유달리 좋아하는 꽃이 있는데, 어디에서 많이 필까? 나는 백호가 관심을 보인 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공원을 검색해서 주말마다 나들이에 나섰다. 봄에는 꽃밭을 구경하러, 여름에는 시원한 장소를 찾아서. 그리고 가을에는 낙엽에서 뒹구르기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단풍이 멋진 곳을 찾아 떠났다. 겨울에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등산도 했다. 신기하게도 백호랑 고작 몇 시간 걷고 뛰다 오는 것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충족해지는 귀한 경험을 했다. 네가 내 첫 번째야 자연스럽게 술자리는 몽땅 거절했다. “나 우리 강아지랑 소풍 가야 돼” 라며 술자리를 거절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를 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거냐며 놀라워 했다.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대차게 싸우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 ‘자기와 닮은 자식 낳아봐야 이 마음을 이해하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심정을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알 것 같다. 비가 와서 산책을 못 갔다고 삐져서 장난감을 온 방안에 어질러 놓고 월월월 짜증을 내는 백호를 보고서 말이다. 사춘기 자식 새끼를 기르는 마음을 개춘기의 개와 살며 공감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후 늦게까지 내리 잠만 자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여자에게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놀아달라고 보채는 개동생. 내 일상을 파괴하러 온 내 인생의 구원자. 주먹만 한 강아지 하나가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강아지랑 사는 게 뭐 특별하냐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유난 떨지 말라고들 한다. 그 말도 맞다. 이 세상엔 수많은 강아지들과 고양이,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백호가 TV에 나올 정도로 대단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강아지는 내 일상을, 나아가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수천, 수만, 수억 명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만의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듯, 내 인생에 있어 백호는 극의 흐름을 바꿔버린 특별출연자다. 백호와의 일상은 지금까지처럼 느긋하게 즐겁고 아쉬운 듯.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INFO이웃집 백호의 소식이 궁금하다면twitter @corcorgiBHinstagram @corgibh CREDIT 글·사진 강승연 편집 장수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3-15 10:04:58 남겨진 사람들 | 사랑만 남기고 떠난 … PET LOSS : 남겨진 사람들 사랑만 남기고 떠난 장미 장미야, 안녕 언니야. 그곳은 따뜻한지, 가끔씩은 가족 생각도 하는지, 서운한 일은 다 잊었는지, 너무나 궁금한 게 많네. 하얀 털을 나팔바지처럼 예쁘게 펼쳐놓고 대자로 뻗어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던 너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 애교도 별로 없고 시크했지만, 가족들 옆에 꼭 붙어서 체온을 느끼려고 하던 네 모습이 너무 많이 생각나고 그리워. 한 뼘 반도 채 안되던 작은 우리 장미가 처음으로 중성화 수술이란 것도 하고, 항문낭 수술도 하고… 잘 버텨 주고 회복해 줬을 때 언니는 너무 미안하고 또 감사했다. 그러던 네가 나이를 먹고, 털에 윤기도 조금씩 없어져 가고, 코끝이 조금씩 갈라지고… 심장이 약해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오래하지 못하게 됐지. 자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침대에 소변을 보더니 짧은 시간 동안 몸이 굳기도 했어. 하루에 두 번 먹기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먹이고, 혹여 심장 약으로 인해 신장에 무리가 갈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병원 원장님께서 장미는 항상 비상이니 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어.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걱정하는 걸 알았는지 갑자기 가족들이 주는 간식과 사료를 너무 맛있게 먹더라. 그게 우리 장미의 마지막 식사였다는 걸 언니는 왜 몰랐을까? 그날 저녁 장미를 줬던 언니 친구가 너의 혈통서를 보내 줬어. 그제서야 네 나이와 생일을 제대로 알게 되었지. 언니는 장미가 언니 동생이기에 그런 걸 몰라도 상관 없다 생각했거든.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장미가 언니한테 하늘 나라로 가기 전에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어. 언니는 요즘 인터넷으로 다른 강아지들 보며 장미를 잊기도 하고, 회상하기도 해. 장미가 있을 땐 몰랐는데 없고 나니 느끼는 것도 많아지고, 기부단체를 통해 못다 준 사랑을 베풀고 있어. 지금 넌 하늘나라에서 예쁜 천사가 되어 우리를 보고 있겠지? 장미야, 언니가 많이 많이 사랑했어. 지금도 너무 많이 사랑해. 언니가 항상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 기억나? 다음 생에는 꼭 엄마 아빠의 사람 딸로 태어나서 오빠랑 셋이 남부럽지 않은 남매가 되자. 먼 훗날. 따뜻한 하늘나라에서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 잘 지내고 있어. 사랑한다. 은경이 언니가 * 반려동물의 죽음에 관한 사연을 받고 있습니다. edit@petzzi.com로 보내 주세요.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REDIT글 사진 성은경 그림 지오니 편집 김기웅 STORY | 2017-03-14 09:54:24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① 스핀들 마켓 HOLIDAY이태원 경리단길에서① 스핀들 마켓 올 겨울은 따뜻했는데, 모처럼 외출을 하려니 찬바람이 칼 같이 불었다. 그래도 옷깃을 여미고 목도리를 두르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행스럽게도 미세먼지는 없고, 하늘은 깨끗한 쪽색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빛나고 있었다. 오늘은 한 살 된 허스키 어린이 ‘봉남이’와 이태원 데이트에 나서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으로 넘어가는 방향, 경리단길의 높은 언덕에서는 이태원의 주거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거지 너머로 굽이굽이 펼쳐진 서울의 남산은 푸르다. 그 위로 남산타워가 멀뚱히 솟아난 모양새로 있다. 봉남이와 함께 스핀들마켓에 앉아 보고 있자니, 빽빽한 빌딩 대신 뻥 뚫린 하늘 아래 전경이 몹시 새삼스럽다. 스핀들마켓은 루프톱(Rooftop)이 있는 푸드코트다. 핫플레이스라고 소문난 음식집들이 스핀들마켓에 입점해 있어서 니키타 버거나 소이연남등의 맛집을 한 장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빈티지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콜라 한 캔을 사서 자리를 잡아도 눈치 볼 일 없이 테이블에 몸을 뉘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반려견을 데리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 ‘SPINDLE MARKET LOVES ANIMAL’이라 적힌 종이가 기둥마다 붙여져 있었는데, 그 종이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가게 점원들이 봉남이를 보고 화색을 띄었다. “쓰다듬어도 되나요?” 생글생글 웃는 카페 알바생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 위로 쏟아진 봉남이의 은빛 털이 새삼 민망해 서둘러 훌훌 털어냈다. 곧 스핀들마켓에 반려견을 위한 가게가 들어선단다. 나중을 기약하며 봉남이의 목줄을 잡아끌었다. 스핀들마켓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66 경리단길을 더 걷고 싶다면 ② 남산 야외식물원③ 부티크 카페 CREDIT글 김나연사진 엄기태모델견 봉남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STORY | 2017-02-09 11:19:02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② 남산 야외식물원 HOLIDAY이태원 경리단길에서② 남산 야외식물원 스핀들마켓에서 도보 10분 거리. 남산야외식물원은 다양한 길을 가지고 있다. 길 자체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길을 둘러싼 나무들의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 봉남이는 돌담길에 엉겨 자라난 덩굴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봉남이가 냄새를 맡고 있는 동안에도 겨울바람은 계속 불어왔고, 바람이 불 때마다 봉남이의 털이 잔잔하게 섞여 날아갔다. 허스키의 털은 빗질을 하면 뚝뚝 끊겨서 이렇게 바람으로 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죽은 털을 솎아내게 되어 시원한 건지, 추운 땅에서 건너온 견종이라 그냥 찬바람이 좋은 건지, 그냥 겨울의 숲이 마음에 드는 건지- 봉남이의 꼬리는 쉴 틈이 없었다. 식물원에는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봉남이는 저보다 작은 몸집의 강아지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지 시종일관 고개를 푹 숙이고 풀, 나무 데크, 자갈, 키 작은 나무들의 향을 쫓았다. 어느 이름 모를 풀이 마음에 들었는지 뚝뚝 뽑아내 잘근잘근 먹기도 했다. 봉남이가 선택하는 대로 따라가는 갈래길 너머 서울의 풍경이 보였다. 봉남이는 발로 걷어찬 솔방울을 쫓으며 풀쩍풀쩍 뛰었다. 그런 봉남이가 너무 행복해 보여 마치 식물원이 봉남이를 위해 준비된 마법의 숲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 야외식물원서울 용산구 소월로 323Tel. 02-798-3771? 경리단길을 더 걷고 싶다면① 스핀들 마켓?③ 부티크 카페 CREDIT글 김나연사진 엄기태?모델견 봉남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STORY | 2017-02-09 11:11:48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③ 부티크 카페 HOLIDAY이태원 경리단길에서③ 부티크 카페 다시 경리단길로 돌아왔다. 언 몸을 녹이러 어디를 갈까 하다가 ‘반려동물 입장가능’이라 쓰인 반가운 입간판을 발견했다. 묵직한 가게 문을 잡아끌자 강아지를 위한 안전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려견이 튀어나갈 것을 염려한 세심한 배려와 가게 안의 온기에 몸과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목줄을 놓자 봉남이가 카운터 옆으로 달려가 비치된 물그릇에 코를 박았다. 봉남이는 신속하게 물을 다 마시고 부티크의 직원을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나에게 물을 주다니, 상냥해!’ 같은 얼굴. 부티크의 운영자인 승원 씨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티크의 소품과 분위기는 꽤 인상 깊다. 잔잔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 검은 인테리어에 푸르게 자라난 식물, 맥주병에 꽂혀있는 양초, 벽에 전시되어 있는 강아지들 사진. 그 풍경 위로 프랑스 가정식과 커피, 맥주, 칵테일, 강아지를 위한 메뉴가 준비된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려인의 맞은편에 반려견을 위한 접시를 놓는 건 카페 부티크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봉남이는 여기저기 얼쩡거리다가 이내 얌전히 옆으로 돌아와 테이블에 턱을 괸다. 다정함과 평화로움이 봉남이의 은색 털과 함께 조곤조곤 빛났다. 부티크카페서울 용산구 회나무로26길 24Tel. 02-790-4313 경리단길을 더 걷고 싶다면① 스핀들 마켓??② 남산 야외식물원 CREDIT글 김나연사진 엄기태?모델견 봉남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STORY | 2017-02-09 11:03:58 오늘과 내일을 선물한 도래 이야기 TRAVEL여행하며 만나다 : 오늘과 내일을 선물한도래 이야기 도래를 만나기 전 세상은 암흑이었다. 과거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이제 그만 아프라고, 행복해지라고 천사가 내려왔다. 도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고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2017년 정유년을 행복으로 물들일 해피 바이러스 도래를 만나러 제천으로 향했다. 이제는 행복해질 시간 저수지를 따라 솔숲과 잔디가 어우러져 있어 반려견과 산책하기 최고인 제천 의림지. 저 멀리 신나게 달려오는 도래와 리드줄에 끌려 날다시피 오는 수민 씨가 보였다. 뭐 그리 끌려 다니냐는 내 핀잔에 조용히 줄을 건넨다. 잡는 순간 도래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몸이 ‘C’자로 휘어지면서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는 경험을 했다. 수민 씨는 대형견 클래스에 놀란 나를 보고 깔깔댔다. 24살 청춘 특유의 생기 넘치는 웃음이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수민 씨는 2년 전까지 웃지 못했다. 여러 번 자살 기도를 할 만큼 우울증이 심각했다. 손목 위 상처가 아물기도 전 또 다시 생채기를 냈다. 거듭된 봉합으로 흉터가 뒤틀리고 더 이상 당겨서 꿰맬 살도 없었다. 반려동물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말을 듣고 동생이 도래를 데리고 왔다. 생후 8주 젖 냄새 폴폴 나는 꼬물이였다. “처음 보자마자 저한테 착 안기는 거예요. 앞발로 제 팔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어요. 그 동안 돌봐준 동생 친구는 아예 돌아보지도 않더라고요. 사는 방법을 안 걸까요?(웃음) 오래 살라는 뜻으로 도래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하얗고 푹신하니 애기 북극곰 같았는데 정말 이만큼 커질 줄 상상도 못했어요.” 빛으로 이끌어준 무한한 애정 도래는 생후 4주 만에 어미 개와 떨어진 탓에 애정결핍과 분리불안이 심했다. 혼자 있으면 가족의 체취가 남아있는 신발을 물어뜯었다. 특히 애착이 강한 수민 씨의 신발은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대형견일수록 서열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고 믿는 가족들이 혼낼 때마다 도래의 편에서 히어로가 되어 주었다. 도래 역시 그런 수민 씨를 가장 따랐다. 수민 씨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도래는 엄마 찾는 새끼 늑대처럼 하울링을 했다. 자신만 졸졸 따라다니는 사고뭉치를 돌보다 보니 심경과 태도에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이따금씩 불쑥불쑥 솟구쳐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우울감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도래의 울부짖음이 또렷하게 들렸다. “엄마가 자꾸 이러면 도래 데리고 온 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어요. 내가 한 선택인데 사람들이 도래 탓을 해버릴까 봐, 천덕꾸러기가 되버릴까봐 무서웠어요.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으려고 양 손목 흉터 위에 타투를 새겼어요. 가린다고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옅어는 지겠죠? 그렇게 마음먹자 오늘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내 우주는 도래를 중심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자신을 억지로 끌어내 도래와 산책을 다니고 애견 카페도 갔다. 만만치 않은 사료 값과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자신만의 공간을 얻어 독립도 했다. 물론 도래도 함께.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끈질기게 괴롭히던 과거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이다. 지금은 대형견을 위한 옷 쇼핑몰을 오픈하고 싶다는 꿈까지 생겼다는 수민 씨. “도래에게 맞는 옷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소형견 옷만큼 예쁘지도 않고.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강아지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직접 만들고 싶어요. 도래를 모델로 해서 촬영 다니면서 추억도 많이 만들 거예요. 돈도 많이 벌어서 부족함 없이 다 해주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 일도 즐겁고 살아갈 힘이 나요.” 도래가 없었다면 지금의 조수민은 없었을 거라 말하며 도래를 쳐다보는 눈에는 꿀이 떨어졌다. 말 그대로 진득하고 달콤한 사랑이 뚝 뚝. CREDIT글·사진 박애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STORY | 2017-02-07 10:14:00 개와 늑대의 시간 | 목수 서진호 개와 늑대의 시간목수 서진호 남자와 반려견. 와일드하거나 오붓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무드로 맺어져 있을지 모른다. 캣타워 장인을 꿈꾸는 수수 아빠, 서진호 씨를 만나봤다. | 그랑그랑 나무공방 대표 서진호 & 수수 목수 일은 4년 정도 했어요. 작업 창고를 얻은 지는 2달 됐고요. 지금은 강아지 집, 강아지 옷장, 캣타워 등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를 제작하고 있어요. 일은 목조주택 목수로 시작했어요. ‘빌더’라는 직업이 있는데요. 건물 기초 설계부터 마감, 인테리어까지 알아서 하는 직업이에요. 콘크리트 작업부터 구조 계산에, 시공도 직접하며 집을 짓는 일을 총괄하는 역이죠. 일 끝나고 취미 삼아 틈틈이 가구를 만들어줬어요. 고양이를 되게 좋아하는데 와이프 알레르기 때문에 키울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캣타워를 만든 게 첫 작품이 됐어요. 화학물질 없는 100% 천연 원목으로 제작하고 있고요. 제품엔 자신 있는데 아직 홍보가 좀 안 돼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판매되고 있어요. 그래도 머지않아 한국의 캣타워 장인이 될 겁니다. 하하. 이 친구 이름은 수수예요, 옥수수의 수수. 아내 성이 옥 씨냐고요? 색깔이 누르스름한 게 꼭 옥수수 같잖아요. 지금은 감기에 걸려서 산책을 못 하고 있는데 괜찮을 때는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나가줘요. 집에는 카이라는 포메라니안이 있어요. 수수는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단체 ‘행동사’(행동하는 동물사랑)에서 입양한 아이예요. 와이프가 일 나가면 카이가 혼자 있게 디는데 너무 외로워 보여 둘째를 들였어요. 둘이 사이좋게 놀라니까 항상 자고 있거나 서로 물어뜯고 난리죠. 먼지 안 날리는 작업할 때는 자주 데리고 나와요.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산책시키기도 좋거든요. 정말 사람 아이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둘 다 기관 허탈이라는 선천적인 희귀 질환이 있어요. 폐에 기관이 눌려서 숨을 잘 못 쉬고 심장도 빨리 뛰어요. 한 달에 나가는 병원비가 어디 보자, 대충 20만원은 되네요. 근데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식 두 명 키운다고 생각하면 돈 쓴다는 개념도 아닌 거죠. 최근 ‘행동사’ 회원들이 애견 카페를 하나 차렸어요. 정확히는 유기견 카페고요. 입양에 관심 있는 분들 상담해주고 입양까지 도와주는 장소예요. 그런데 돈이 부족해 인테리어도 못하고 칙칙한 환경을 그냥 사용하려고 하더라고요. 오픈 전에 잽싸게 가서 페인트도 바르고 벤치도 나무로 깔아주고 도배도 해주고 그랬네요. 앞으로 가구 제작으로 얻는 수익금도 그런 일에 쓰고 싶어요. 당장 나는 수익금은 길고양이들 사료로 많이 나가고요. 수익의 일정 부분은 차곡차곡 모아서 유기견 센터도 운영하고 싶어요. 아시죠. 쉼터들 상황이 다 열악한 거요. 제가 목조 가구는 쉽게 지을 수 있으니 운영하기에도, 도움을 주기에도 좋지 않을까 해요. 그랑그랑 나무공방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NaverBlog | @grang0705? CREDIT글 김기웅사진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STORY | 2017-02-07 10:04:30 WITH MY DOG | 이웃집의 백호 남겨진 사람들 | 사랑만 남기고 떠난 …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① 스핀들 마켓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② 남산 야외식물원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③ 부티크 카페 오늘과 내일을 선물한 도래 이야기 개와 늑대의 시간 | 목수 서진호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