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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23 08: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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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17 0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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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16 1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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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14 09: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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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14 09: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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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07 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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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2021-09-02 18: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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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반려견과 함께, 첫 미술관 나들이
- 요즘 산책은 더 이상 단순한 의미의 ‘산책’이 아니게 됐다. 동네 골목길이나 공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거의 데이트 같은 느낌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책하다 출출해지면 강아지와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있는 식당도 있고, 가끔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커피숍도 있다. 반려동물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펫 프렌들리(Pet friendly) 공간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어, 반려견과 반려인이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치열한 예약 전쟁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멀티플렉스(multiplex) 공간이나 국립 공원. 밤바와 요다를 키우던 초반에 차마 갈 엄두도 내지 못했고 갈 생각도 못 했던 곳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뉴스 보도가 내 관심을 끌었다.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반려견과 함께 관람이 가능한 전시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예술 공간이 문을 닫고 있던 참이었고, 내가 점 찍어뒀던 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조금 완화되면서 전시가 재개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검색해 보니 반려견과 함께 관람 가능한 전시는 소수 인원으로 진행되며, 온라인 예약과 현장 안내에 따라 예약을 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특별한 전시라는 설명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온라인 예약 오픈 당일 컴퓨터 앞에서 대기했다. 신청이 시작되자 주말 날짜 예약은 순식간에 마감되기 시작했다. 휴, 침착하자. 떨리는 손으로 차근차근 요일을 선택한 후에 예약 완료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다행히도 성공! DRESS CODE? 「반려견 동반 전시회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핸드폰으로 도착하고 나서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예약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반려견과 함께 미술 전시회에 간다니! 기대감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밤바, 요다에게 무슨 옷을 입히지? 드레스 코드는 뭘로 정하지?’ 하며 행복한 고민도 하고 전시 내용도 미리 예습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예약한 당일이 됐다. 반려견과 함께 산이고 바다고 뛰어다니며 여행 다니는 걸 즐기는 나와 남편. 평소의 편한 옷차림에서 벗어나 멀끔히 차려입은 우리 부부,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장난꾸러기 같은 차림새의 밤바와 요다를 보니 마음이 흐뭇해져 웃음이 나왔다. 온몸으로 느끼는 전시 신나는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미술관으로 향했다. 경복궁 근처에 위치한 국립 현대 미술관은 주말이어서인지 꽤나 북적거렸다.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안내하시던 분이 우리가 반려견과 함께인 걸 보시곤 친절하게 주차 구역을 설명해 주셨다. 사실 반려견 동반 전시는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도 처음이라고 들어 행여 직원의 안내가 부족하지는 않을지, 덩치 큰 아이들이라고 퉁명스러운 대우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괜한 생각이었나 보다. 우리 부부와 밤바, 요다는 친절한 안내에 감동을 하며 전시관에 입장했다. 야외와 실내, 두 부분으로 이뤄진 전시는 사물의 높이, 소재, 색채, 형태 등 많은 면에서 반려견을 배려하여 구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반려견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물 위주라, 전시회가 처음인 밤바, 요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는 “그냥 강아지랑 같이 미술관에 입장한 것뿐이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형견과 대형견이 아무런 차별 없이 보호자와 함께 의젓하게 미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부부에겐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부디 이 작은 전시를 시작으로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의 범위도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글·사진 최소희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23 08: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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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HAPPY BIRTHDAY, CHRIS
- 크리스, 생일 축하해. 네가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너를 처음 만난 날 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어. 너는 크리스마스를 4일 앞두고 우리와 만났어. 기억나? 너의 두 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잖아. 이름대로 이뤄졌네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 너를 찾기 위해 수십 장의 사진을 보고, 많은 상담을 하고, 자기소개서를 네 장이나 써야 했다니까. 참 많이 설렜어. 기대도 컸고 말이야.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앞으로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고만 싶었어. 너를 데리러 가기 전날 밤이 선명히 기억나. 봉사 센터 홈페이지에서 봉사자들이 올린 글을 샅샅이 뒤져봤었지. 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어. 봉사자들이 찾아가면 안아달라고 달려 나오는 개들과 달리 너는 텐트에만 콕 박혀있다면서, 너를 ‘텐트 사랑 크리스’라고 부르더라고. 그때 생각했었어.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아이겠구나. 그리고 그 짐작은 맞아떨어졌지. 때마침 우리 집도 당시 여섯 살이었던 딸아이를 위해 비슷한 텐트를 하나 준비해놓았던 참이어서,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한답시고 텐트를 펼쳤다가 접었다가 했던 밤 이 아직 생생해. 처음으로 함께 찍은 첫 가족사진을 받아본 센터의 봉사자분은 “크리스가 가족들과 잘 어울린다”라는 칭찬과 함께 ‘크리스’라는 네 이름의 뜻에 대해 설명해 줬어. 크리스마스 전에는 평생 함께할 가족을 만나서 꼭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는 뜻이라면서, “이름대로 이루어졌네요” 하고 덧붙이면서 말이야. 너는 내 꿈의 조각 어느덧 5번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네. 그동안 우리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지. 이제 우리 가족은 외출 후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반가워하며 달려드는 너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어. 가끔 네가 미용을 하러 병원에 가 있거나 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마저 든다니까. 그리고 생각해. 널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사실 내 어릴 적 꿈은 유기견 보호 센터를 짓는 거였어. 돈을 아주 많이 번 다음 유기견 센터를 지어서 수백 마리의 유기견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책임지는 보호 센터 소장이 되고 싶었지.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더라. 내 한 몸 사람 구실하기도 버거운데 보호 센터라니. 그런 비슷한 꿈도 꿀 수가 없구나 싶었어. 그런데 어린 딸아이를 몇 년째 돌보면서 자신감도 활력도 잃어가던 어느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꼭 100마리, 200마리여야 할까? 한 마리라도 행복하게 해주면, 백 분의 일, 이백 분의 일만큼의 꿈은 나도 이룰 수 있는 게 아닐까?’ 다행히 가족들은 모두 내 계획에 찬성해 줬고, 그렇게 나는 너를 만나 내 꿈의 작은 조각을 이뤘던 거야. 그뿐만이 아냐. 너를 만난 후 나는 작가가 되겠다던 꿈도 이룰 수 있었어. 너를 자랑하고 싶어서 썼던 글 몇 편이 시작이 되어 이렇게 잡지에 글을 연재할 수 있게 됐고, 그러다 자신감이 붙어 꾸준히 글을 쓰다가 올해는 책도 펴냈거든. 앞으로 쓰고 싶은 글들이 참 많은데 그 시작이 바로 너였다는 걸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거야. 행복해지고 싶어 너의 꿈은 뭘까? 말 못 하는 너를 두고 함부로 추측하는 건 아주 별로인 것 같지만 하나는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맞지 않을까 싶어. 바로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말이야. 처음 우리 집에 오고 나서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 어떤 할머니가 강아지가 몇 살이냐고 묻고선 “왜 이렇게 늙어 보여?”라고 툭 내뱉었던 때가 기억나. 그때 나는 너무 속상하고 분했었는데, 점점 너도 살이 붙고 눈물 자국 역시 사라지면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예쁘다는 칭찬을 듣게 됐잖아. 사람이나 개나 외모가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네가 우리 집에 온 뒤로 엄청나게 예뻐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조금씩 산책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네 모습도 생생해.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거리에서 만난 다른 개 친구의 냄새를 맡기도 했지.나는야 연예견 크리스 처음으로 차 타고 드라이브했던 것. 처음으로 같이 한강에 가서 텐트를 쳤던 것. 사실 나도 그때 다 처음으로 해봤던 거야. 평생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한강에서 텐트 치고 놀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는데, 아마도 너랑 함께여서 가능했던 게 아니었나 싶어. 네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집에 한창 크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참 자연을 많이 즐겼어. 저번 초가을 캠핑 때도 그래. 그땐 생각보다 너무 추웠잖아? 해가 떨어진 후에는 같이 별을 보고, 너무너무 추워서 그때 꼭 껴안고 잤었지. 아 맞다, 너는 이제 잡지에도 나오는 개야.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실 가끔 너를 ‘연예견’이라고 부르기도 하잖니. 네겐 발표되지 않은 주제곡도 있잖아. 노래 가사를 처음으로 공개해보면 이래. 「가족들이 모두 외출을 하고 나면 나는 거울을 본다네. 거울 속 내 몸은 온몸이 꿈틀꿈틀. 몸통은 좀 길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아. 왜냐면 난 유럽의 인기 견종 말티푸, 말티푸, 말티푸.」크리스. 앞으로는 더 많은 걸 함께 즐기자. 같이 여행도 많이 가고, 수영장도 함께 가자. 별 보러 캠핑장도 또 가고, 성대한 생일 파티도 열어줄게. 커다란 추억들을 만들 면서 우리, 무엇보다 평범한 서로의 하루하루에 늘 함께하자. 그리고 그게 무엇 보다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걸 언제나 기억하자. 너의 여섯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글·사진 이영주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17 0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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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안개 너머 빛을 찾아서
- 코로나 테스트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2주간 자가격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워낙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페이스타임을 통해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할 때 릴케의 모습을 보며 거의 울 뻔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서로를 그리워하다 오랜만에 도착한 한국 땅, 인천공항은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로 여느 때보다 무척 한산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릴케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처음이라 릴케에 대한 그리움은 하루하루 더해져만 간다. 어떤 때는 남편보다 릴케가 더 그리울 때가 있을 정도다. 독일에 있는 남편은 매일 릴케와 함께 출근해서 릴케와 함께 퇴근한다. 남편의 회사 앞마당에는 개들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큰 정원이 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떠난 뒤 릴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찾았는데 그토록 찾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한동안 어리둥절해 했다고 한다. 릴케가 영상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내 목소리, 그리고 작은 핸드폰에 비치는 내 모습을 ‘엄마’라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란 힘들 것이다. 릴케가 어떤 존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냄새가 그곳에 없으니 말이다.손꼽아 기다리던 박람회 8월쯤 독일의 코로나 상황은 다소 호전되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정도 역시 약간 완화되었다. 그 덕분에 약식이지만 소규모 반려견 박람회가 10월에 개최된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소규모이면 어떠랴, 우리 부부가 그토록 기다리던 박람회가 열린다니 정말 뛸 듯이 반가웠다. 이전 호에서도 설명했듯, 릴케가 훗날 아빠가 될 수 있 는 자격을 얻으려면 독일의 쿠이커혼제 협회로부터 심사를 거쳐 총 세 번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박람회가 계속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는 박람회를 대비하여 릴케와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필자가 서울에 오면서 부터 그 모든 준비는 남편이 혼자서 맡게 되었다. 릴케의 체격과 몸무게는 쿠이커혼제 협회가 지정하고 있는 쿠이커혼제 반려견의 이상적인 체격과 몸무게에 딱 맞아떨어진다. 털의 색깔과 모양, 그리고 쿠이커혼제의 가장 큰 외모적 특징 중 하나인 양쪽 귀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는 검은색 애교 털까지도 말이다. 다만 하네스를 오래 착용해서 생긴 등 쪽 털의 쏠림 현상과 가슴 부분 털이 살짝 눌린 것을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가능하면 박람회 전까지는 하네스 대신 일반 목줄을 사용하기로 하고, 무엇보다 릴케의 브리더인 마누엘라를 한 번 방문하여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릴케, 엄마 제타와 만나다 10월로 예정된 반려견 박람회를 앞두고 남편은 릴케를 데리고 네덜란드 국경 부근에 있는 마누엘라의 집으로 가서 박람회와 관련한 조언, 그리고 털 케어까지 받았다. 릴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털을 깎는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아울러 처음으로 아주 잠깐이지만 릴케의 엄마인 제타와 짧은 만남을 가졌다. 남편의 말로는 주어진 시간이 무척이나 짧아 서로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쿠이커혼제 전문 브리더인 마누엘라의 집에는 릴케의 엄마인 제타 외에 또 하나의 암컷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출산해서 안타깝게도 오래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산을 막 마친 암컷에게는 새끼들과 조용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릴케의 엄마인 제타는 두 차례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기에 독일의 동물보호법에 따라 앞으로 임신 및 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보호권을 가지고 있다. 릴케가 정말 자신의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제타와 릴케가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함께 했더라면 분명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빛이 찾아오기를 그토록 기다렸던 박람회이건만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10월, 독일의 확진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원인이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도 컸다. 릴케가 아빠가 될 수 있는 길이 점점 늦춰지고 있으니 우리 부부의 마음도 덩달아 바쁠 뿐이다. 주최 측에서는 박람회 장소를 급하게 다른 도시로 바꾸는 등의 아이디어까지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구 십만 명 기준으로 50명 이상의 확진자가 있는 도시에서는 큰 행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릴케에게 박람회 대신 동물원 구경이라는 선물을 마련했다.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부부가 그토록 바라는 박람회에 함께 참가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글·사진 이영남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16 1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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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너는 우리의 비타
- -다섯 번째 임시 보호, 비타를 떠나보내며- 비타를 보내고 왔다. 우리 자매에게는 다섯 번째 임시 보호이자, 가족이 된 건우와 함께한 첫 임시 보호이기도 했다. 1달 반가량을 함께 지냈지만 입양 문의가 없어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점차 ‘좀 더 함께 있을 수 있겠구나’하는 안심으로 바뀔 때쯤, 비타의 해외 입양이 확정되었다. 공항 문턱에서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지만 차마 안고 있던 비타를 켄넬에 넣을 수가 없었다. 켄넬 안으로 들여보내면 따끈따끈한 호떡을 닮은 누렁이 비타를 안아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없을 테니까. ‘앞으로 10시간 동안 켄넬에 갇혀있어야 할 텐데, 좀만 이따가 들어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행인에게 한 소리 듣는다. “개 좀 넣으세요.” 날 선 말들이야 평소 산책하다가도 많이 듣지만 오늘은 좀 더 서운하다. 이제 얘 간단 말이에요. 좀만 더 이따가 이별하면 안 될까요. 오늘은 좀 봐주세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강아지를 안거나 케이지에 넣으면 공항에 출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처음 온 공항.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순한 눈을 한 채 언니들을 바라보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네 눈동자는 낯선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쪽을 좇는데, 집에서는 엘리베이터만 소리만 들려도 멍멍 짖던 너이건만 공항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는지 그저 조용하다. 혹시 네가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켄넬 철망 안으로 내민 내 손가락을 앞발로 몇 번 긁을 뿐이다.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비타를 넣은 켄넬의 무게를 잰다. 여행 갈 때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화물을 맡기는 절차와 똑같다. 비타는 서류를 스스로 챙길 수 없으니까 켄넬 바깥쪽에 비타에 대한 서류를 테이프로 단단히 붙인다. 이 아이가 이제 우리를 떠나 먼 여행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이 난다. 비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처음 임시 보호한 시리 때와 똑같은 생각이 든다. 이 순하고 착한 아이가 혹시 자기가 잘못해서 또 우리에게 버려진다고 생각할까 봐 너무 미안하다. ‘앉아, 기다려, 빵야’따위는 하나도 못 해도 좋으니까, 강아지의 삶에 딱 한 번만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너는 지금 평생 가족을 만나러 가고 있다고. 우리는 네 견생에서 잠깐 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 임시 보호 가족이었다고. 너는 절대 버려진 게 아니라고. 우리는 너를 만난 순간 동안 네 덕에 정말 행복했다고. 고맙다고. 우리가 함께였다는 증거 해외 입양은 이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영문도 모른 채 화물칸에 실린 비타. 우리가 깔아준 담요 안에서 어제까지는 집에서 신나게 갖고 놀던 주황 돼지와 함께 달라진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며 꼬박 10시간 동안 웅크리고 있을 비타. 이제는 내가 지켜볼 수 없는 이 아이의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긴 시간을 버틸까. 자동차를 잘 타는 참을성이 많은 아이였으니까 비행기에서도 잘 참겠지. 국내 입양이라면 아무리 멀어도 비타를 새로운 가족의 품에 데려다주며 이별의 순간을 늦출 수 있을 텐데, 입양 가족의 얼굴을 보며 안심을 할 수 있을 텐데. 한 번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출 줄 모른다. 이별하던 날, 나는 검은 바지를 입고 갔었다. 평소 같으면 검은 바지에 비타의 흰 털이 잔뜩 묻은 게 싫었을 텐데, 오히려 그 흔적이 ‘비타가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었구나’라는 분명한 증거처럼 느껴져 새삼 다행이다 싶다.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비타야, 이별의 순간 ‘사랑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주었는데, 그중 단 하나라도 네게 전해졌을까? 네가 지난 두 달간 보여준 모든 몸짓에는 사랑이 온통 가득했는데, 내가 침대에 누우면 내 팔을 조용히 베고 따라 눕던 자그마한 네 머리가, ‘비타~’ 하고 부르면 가동되는 꼬리 헬리콥터가, 내가 손길을 멈추면 계속 만져달라며 나를 긁던 네 앞다리가 모두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의 몸짓이었는데. 우리가 받은 것에 비해 돌려준 게 없어서 미안해. 이제는 뉴요커가 된 우리의 다섯 번째 가족, 비타야. 언제나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를 밝혀주던 비타민, 비타야. 정말 고마웠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너를 사랑해. 많이 많이. (비타와의 이별 뒷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건우와 아이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최세연사진 최세연.최세화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14 09: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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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SEASONS OF LOVE
- 첫 번째 여름 두 손에 쏘옥 들어올 정도로 조그맣던 너. 언제면 자랄까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시절은 기억조차 희미해졌구나.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한참을 고민하다 정해진 이름, 제이. 이제는 네 이름을 부르면 자다가도 두 귀가 쫑긋, 고개는 갸우뚱,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지. 우리의 첫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지만 그때의 작은 빛은 더욱 커져 우리 집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고 있어. 만약 네가 없었더라면, 레이도, 써니도 만날 수 없었겠지? 그래서일까, 우리가 함께 보냈던 첫 여름은 내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과도 같아. 두 번째 여름 제주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곳에서의 생활 역시 너와의 인연 덕분이 아닌가 싶구나. 처음으로 제주도에 갔던 때를 기억하니? 네가 난생처음으로 자그만 종이상자에 한 시간을 갇혀 부산에서부터 제주까지 비행기를 탔던 그해 여름, 나는 캐리어 가득 널 위한 옷들을 가득 채웠었지.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오직 너만을 위한 화보도 찍고. 물론 목이 터져라 “간식!”을 외쳐대긴 했지만. (웃음) 그 뒤론 틈만 나면 주말마다 얼마나 부산과 제주도를 오갔었는지. 그땐 우리가 여기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말이야. 물론 ‘제주에 살면 참 좋겠다’고 잠깐 스쳐 가는 꿈을 꾸긴 했었지. 그리고 꿈이 이뤄진 지금, 이곳에서의 행복은 우리의 두 번째 여름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까 싶어. 계속되는 사랑의 계절 우리의 시간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 물론 나의 시간보다 너의 시간이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가끔은 걱정되고 두려울 때도 있지. 그렇지만, 그건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걸.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며 웅크리고만 있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까운 행복, 서로의 눈빛이 스칠 때마다 새어 나오는 미소와 기쁨, 내일은 또 어딜 가서 자연을 누릴까? 이런 소박한 고민거리들을 떠올리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자. 끝이 언제가 됐든 늘 건강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올 사계절을 언제 나 웃으며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 글 김윤정사진 이성훈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14 09: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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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우리가 행복할 권리
- 2015년 겨울. 평소처럼 아빠 회사에 놀러 갔던 나는 종이 상자 안에서 갈색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강아지는 해맑은 얼굴로 신기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너는 누구길래 여기 있니?’ 우리도 강아지는 처음이라 우리는 그렇게 같이 살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나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강아지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급한 대로 마트에서 사료를 사 왔고, 산책을 시켜야 한대서 나갔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예방접종도 해줘야 한대서 병원에 데려갔다. 뭐 남들도 대충 이렇게 개 키우겠지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껴주고 사랑을 준 것도 아닌데 초코는 매 순간 빛나는 구슬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름만 불러도 꼬리를 붕붕 돌리고 짧은 다리로 항상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기분이 묘했다. ‘얜 뭐야?’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초코에 대한 내 마음도 커졌다. 하지만 개를 잘 모르던 우리 가족. 답답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려견과 함께 사는지 알고 싶어 SNS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이들이 반려견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웠다. 나는 정말 무지한 보호자였구나.마음을 여니 보이는 것들 초코를 내 남동생으로 받아들이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초코의 배변과 운동을 위해 하루에 최소 3번 이상은 산책을 나가고 있다. 운동은 헬스장에서만 하느라 자연의 변화에는 둔감한 나였는데, 이른 새벽부터 하루에 몇 번이나 초코와 발맞춰 걷다 보니 사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레 피부로 와닿았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나는 어느 순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또 초코는 내게 책임감을 일깨워 줬다. 책임. 그 단어의 무게는 철없이 자랐던 내게 상상 그 이상으로 무거웠지만, 그것을 견뎌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난 조금 더 강인하고 성숙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개를 키워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아니, 진돗개를 실내에서 키워요? 사나울 텐데?” 1m 목줄에 묶여 산책 한 번 나가지 못하고, 사회화를 경험하지 못한 진돗개는 사나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진돗개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견종이든, 아니 그 누구라도 평생을 한 데 묶여 잔반만 먹으며 ‘집 지킴이’로 살면 다 똑같을 것이다. 강아지의 성격은 유전적 특성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 그리고 교육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한다. 그래서 견종을 불문하고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반려견을 교육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만 한다. 하지만 현재 진돗개를 포함한 우리나라 토종견이 처해 있는 현실은 이상과는 매우 다르다. 보호소에는 참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유기되어 들개로 살던 아이, 주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 아이, 혹은 개 농장에서 구조된 아이 등. 새끼 시절 적절한 사회화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때문에 좋은 마음으로 보호소에서 토종견을 입양했다 하더라도, 교육하지 않은 채 무작정 가족으로 들이면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토종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들 사실, 산책할 때마다 들려오는 도를 넘어선 시비조의 말투에 이미 내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이런 개는 보신탕용이라며 지팡이로 초코를 위협하는 할아버지, 얌전히 지나가는데 끈질기게 쫓아오며 입마개를 하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그래서 입마개를 하고 나가면 “이렇게 사나운 애를 왜 데리고 나오냐”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싸우거나 경찰을 부른 것도 수차례다. 난 늘 내가 초코에게 부족한 보호자라고 느낀다. 그래서 행여나 사람들에게 피해라도 줄까 싶어 전문가에게 산책 훈련도 받았고, 훈련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또 관련 서적과 논문을 읽으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반려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탓에, 나는 늘 산책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다녀야 한다. 언제 시비에 걸릴까 두려움에 떨며 늘 ‘을(乙)’ 의 입장으로 다녀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나와 초코의 ‘행복할 권리’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초코에 대한 사람들의 예쁜 시선도, 관심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자연을 느끼며 행복하게 산책하는 그 시간이 존중받길 바란다.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함부로 혐오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듯, 나와 초코에게도 그래 주길 바랄 뿐이다. 나도 안다. 누군가는 초코를 무서워할 수 있다는 걸. 그렇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이 지나갈 땐 목줄을 최대한 바짝 잡고, 초코를 몸으로 가려주고, 좁은 길에서는 구석으로 다닐 테니, 다른 이들도 우리의 입장을 조금씩만 이해해 주면 좋겠다. 비반려인도, 반려인도, 서로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간 우리 토종견들이 차별받지 않는 날도 오지 않을까? 세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많은 보호자가 진돗개와 함께 잠자리에 들고, 질 좋은 사료를 먹이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반려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초코에게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 초코와 내가 행복할 권리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배우고, 노력할 것이다. 글·사진 송수연에디터 이혜수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07 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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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AZINE P. I'll Cherish You
- 아무것도 모르던 20살, 자취를 시작하고 며칠 뒤 나는 까만 비닐봉지와 작은 에코백, 달랑 두 가지만 챙겨 무턱대고 대구로 향했다. 그토록 오래 바라고 바랐던 유기견을 입양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예뻐서 우리의 첫 만남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아이를 처음 마주한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아이의 몸집이 내 예상보다 조금(?)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나는 이내 그 아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엔 부모님의 반대로 키우지 못했는데, 드디어 내가 족이 된다니!’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콩깍지라도 씐 것처럼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짱이와 나는 가족이 되었다. 만약 그날 내가 단지 덩치가 조금 크다는 이유로 얼짱이를 포기했다면, 난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우연을 가장한 필연 얼짱이와 가족이 된 지 4년째 되던 날, 나는 SNS를 하던 중 한 유기견이 보호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얼짱이와 닮은 외모 때문에 눈길이 많이 갔던 아이, 바로 도담이였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도담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실제로 만난 도담이의 몸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고 앙상했다. 우리 집에 온 지 고작 일주일 만에 도담이는 네 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도담이와 강아지들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야 했다. 당시 나는 새끼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게 삶의 낙이었을 정도로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얼짱이는 그 상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원래 무심한 줄로만 알았던 얼짱이가 어느 순간부터 강아지들에게 으르렁 거리며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슨 영문인지 얼짱이가 어제까지는 쳐다보지도 않던 새끼들의 투정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3일 뒤에는 얼짱이와 도담이가 늘 서로 붙어있는 등, 나도 모르는 사이 둘은 애틋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아이들인데 말이다. 흐뭇함과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울컥 밀려왔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는 듯하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나는 운명처럼 도담이의 새끼와 꼭 닮은 막내 ‘초비’를 만났고 가족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한 가족이 된 건 모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단지 얼짱이를 만났을 뿐인데 나는 첫 째와 닮은 도담이를 만났고, 또 그 인연이 이어져 초비까지 만났으니 말이다. 셋 중에서도 유독 얼짱이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채울 수 없는 빈자리 어느덧 얼짱이가 내 곁을 떠난 지도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얼짱이를 떠나보낸 그 시간에 머무르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지금 내 곁에는 도담이와 초비가 남아 있지만, 앞으로도 얼짱이의 빈자리는 그 어떤 것도 채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개인 시간도 없이 오로지 내 삶을 강아지에게 맞추며 살아간다는 이유로 날 불쌍히 여기곤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지인에게 이런 위로도 들었다. ‘행복하려고 강아지를 키우면서 왜 우울해하느냐, 먼저 떠난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내게 동정을 건넨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매 순간 아이들과 함께할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또 그런 존재가 사라지면 얼마나 큰 공허함을 느끼는지를. 추억이 된 우리의 약속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서 다정히 눈을 맞춰주고, 발걸음을 맞추며 산책한 뒤 집에 와서 지쳐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나도 그 옆에서 스르르 잠들었던 일상. 얼짱이가 떠난 뒤 나는 함께했던 그 모든 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매일 깨닫는 중이다. 짱아, 엄마는 짱이 없이 살아가는 이 시간이 여전히 너무 힘들어. 우리가 한 약속들 그리고 짱이가 엄마한테 남겨놓고 간 추억들이 너무 많아. 강아지도 환생할 수 있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엄마는 종종 그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엄마는 얼짱이가 엄마 강아지라서 너무 좋았어. 내 보물, 내 전부, 내 첫째, 고마웠어.글·사진 최서연에디터 한소원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 STORY | 2021-09-02 18:27:47